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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Nov 23. 2018

아들이 엿본 중년 엄마의 구직

인터뷰에서 자꾸 떨어지는 엄마에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나라에서 돈을 벌 수 없는 조건으로 살고 있었다.

그땐 그 어떤 종류의 회사에서도 나를 받아줄 수 없었을 거다. 나는 여기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이 불법인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회사에 다니지 못하거나 일을 할 수 없는 것은 내 책임, 내 잘못이 아니라고. 원천적으로 안된다잖아.

이렇게라도 나 스스로를 위로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상황들이 많았다.




그러다가 작년 초부터 합법적으로 일을 해도 되는 조건으로 바뀌었다. 이때다!! 봉인 해제로구나!! 싶어서 여기저기 마구잡이로 일할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골라잡아 한글/영문 이력서를 담당자들에게 보내고 두근두근하면서 그들의 연락을 기다렸다.

주말이 껴서 메일 확인이 느린가?
아... 연휴가 길어서 담당자가 휴가를 갔는지도...
여름에는 일도 좀 느리겠지. 게을러지잖아.
내 메일이 분실된 건가?

기다려도 오지 않는 답장에 혼자서 온갖 시추에이션을 만들어 상상하고 공상하는 나날들을 보내다가 번뜩 깨달았다. 내 이력서 자체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나에겐 이들이 원하는 이력 같은 게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그래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검색 엔진들의 도움을 받아 변변치 않은 내 이력들을 조금이라도 더 변변해 보이도록 고쳤다. 또 다른 사람들(요즘 젊은이들)의 이력서를 찬찬히 들여다봤다. 그들의 이력서과 비교하고 난 뒤  '봉인해제/흥분상태'에서 썼던 내 처음 이력서들은 몽땅 다 휴지통에 넣었다. 그러고 나서 고치고 다듬고 어쩌고 저쩌고 해서 처음 것보다는 좀 나은 이력서를 만들 수 있었다.

고친 것을 가지고 다시 지원했고 더러는 답장도 받고 더러는 전화 인터뷰까지도 하고 그중 몇몇 군데는 '온사이트 인터뷰- onsite interview' 까지도 갔는데.


악수를 하자고 할 때부터 이미 불편.                                                      사진속 두 여자 중 누가 구직을 하려는 여자일까

그런데. 그랬는데.


나는 아직도 일할 곳을 못 찾았다.

며칠 전 아들 녀석은 1월부터 출근할 곳찾았다.




엄마, 인터뷰 가면 제일 처음 질문이 보통은 뭐였어?


음........ 너는 누구냐고. 너에 대해서 말해봐- Tell me about yourself. 이런 거였어.

맞아, 엄마 나도 그런 거였어. 대개는 처음에 다 그런 것부터 시작하더라. 그런데 그 질문에 대한 대답에 '이렇게는 절대 말하지 말라'라는 게 있어. 그게 뭔 줄 알아 엄마?

몰러. 아! 그런 거 아닐까? 나는 일천구백몇십몇 년에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역경을 헤치고 구구절절.. 이런 거.

여기도 그런 거 구구절절 말하는 거 싫어한대. 그런데 절대 하지 말라는 말은 이거라는 군.

What do you want to know about me?- 뭐가 알고 싶으신데요?


얼마나 강심장이어야 저 질문에 저런 대답을 하냐. 재수 없어 보이게.

많이들 저렇게 말하곤 한대. 갑자기 정신이 멍~해져서 저런 말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아니면 다른 사람이랑 좀 달라 보이려고, 튀어 보이려고 '하! 난 겁먹지 않는다구!' 이런 객기에서 저렇게 말하기도 하고 그런대.

면접 볼 때 엄마가 어떤 대답을 했었는지 한번 잘 생각해봐요. 일단 첫 번째 질문에서 잘 넘어가야 두 번째, 세 번째로 진행이 될 테니까요. 그리고 엄마,

뽑아주면 오래 다닐 것 같다

라는 믿음을 줘야해요. 시간들여 공들여 면접하고 뽑았는데 왠지 좀 다니다가 관둘 것 같아. 그런 느낌을 주면 안된다고요.

에헴헴. (취직된 자의 여유로운 헛기침소리)


'맘마' '짝짜꿍' '도리도리' 걸음마, 수저 사용법, 가나다라, 더하기 빼기, 자전거 타기 등 나는 아이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쳤고 아이는 하나하나 얌전히 배웠다. 이럴 땐 이렇게 저럴 땐 저렇게 말하고 행동하렴. 이런 것도 얌전히 잘 배웠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아이와 마주 앉아 그 입에서 나오는 조언을 얌전~히 듣게 되었다.

아이로부터 점점 배울 것이 많아진다는 것, 그건 내가 행복한 여자로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살짝 울렁~해 졌다.




돌아보면 내 인터뷰가 별로였던 건 맞는 것 같다.

한국말로 했던 인터뷰도 그다지 그저 그렇고 영어로 했던 인터뷰는 어이쿠야~ 아무 말 대잔치 같았을 거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아이가 절대로 인터뷰에서 하면 안 된다는 말 같은 건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 하나랄까. 아이가 하지 말라고 한 대답은 한국에서 나고 자라 교육받고 결혼한 나 같은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올 법한 대꾸는 아니다.


앞으로 내 구직활동은 얼마나 더 계속될지 어디서 멈추게 될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어딘가 취직이 되던가 아니면 내가 구직을 포기하던가 둘 중 하나가 이뤄지면 그땐 '활동'을 멈추게 되겠지.

아들녀석의 조언을 정리해보자.

당신은 누군가요? 첫번째 질문에 잘 대답하도록 준비할 것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지 않는 한 제발로 나갈 것 같은 느낌을 주지 말 것

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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