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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Nov 25. 2018

에미야 오늘 교회 갔었냐?

애들은? 아범은?



이것은 전화 통화에 관련된 이야기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도 3, 40년 전 아주 옛날이야기. 우리 외할머니 이야기.


일요일 오후 3시쯤엔 '에미야 오늘 교회 갔었냐? 애들은?'이라고 하셨고

그 전날 토요일 저녁 9시쯤엔 '에미야 내일은 교회 꼭 가라. 애들도 데리고'라고 말씀하셨다.

35-40년 전 우리 외할머니께서 당신의 며느리들에게. 이 전화기로.


어쩜. 옛날 우리집에 있던 전화랑 똑!같네

할머니의 토요/일요 '독촉 전화'는 어떤 '의식' 과도 같은 거였다



토요일 전화는 저녁 진지를 다 잡수시고 상을 물리신 뒤 

서랍에서 꺼낸 손바닥만 한 치부책을 들고 전화기가 놓여 있는 마루로 가신다. 

전화기 앞에 가부좌를 트신 후 수화기를 들기에 앞 서 먼저 목소리를 흠흠 가다듬는 것으로 시작하셨다. 

아까 가지고 나오신 수첩을 펼쳐 수첩 맨 앞 장에 쓰여 있는 아들네의 전화번호를 

입으로 중얼거리시며 동시에 오른쪽 검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다이얼을 꼼꼼히 돌리고 

마지막 다이얼이 끝나면 다시 한번 더 목소리를 흠흠흠 가다듬으시는 것으로 통화전 채비를 마치셨다.

토요일 전화는 주중에 있었던 이런저런 안부들을 묻고 답하시는 것으로 시작하다가 통화 마지막 부분에 

그건 그렇고 에미야 내일 꼭 교회 가라

비교적 온화하게 마무리되곤 했다. 살짝쿵 온화하게, 살짝쿵 권유형으로. 살짝쿵 어린 자식 살살 달래듯이.



일요일 전화는 토요일 것과 약간 다른 양상을 보이곤 했는데

오후 3시라는 시간은 이미 할머니 당신께서 11시 낮 예배를 다녀오신 후이기도 하고 오늘 교회에 갔었는지

안 갔었는지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적절한 시간이라 노인은 토요일 저녁 시간보다 마음이 좀 다급한 듯 보였다. 통화에 앞 선 '사전 의식' 이 좀 단촐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에미야 오늘 교회 갔었냐?

응, 나다. 점심은 먹었냐? 애들은, 응..... 아범은? 응... 그건 그렇고.. 오늘 교회는 갔었냐?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훅~ 본론으로 들어가실 때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는 중이었던 나는 열 살 정도밖에 안먹은 꼬꼬마 였는데도 움찔했다. 우리 할머니지만.... 참...과해. 과해.

일요일 통화가 어떻게 마무리되는지는 숙모들의 대답에 따라 달라졌다. 만일 그들이 그날 아침 11시에 교회에 갔다 왔으면 통화 내내 정겹고 살가운 이야기들이 오고 가다가 훈훈하게 마무리되지만 

애가 갑자기 열나고 기침해서 아범이 갑자기 회사에 가야 해서 알람시계가 안 울려서 다들 늦잠 자서 몸살이 나서 갑자기 보일러가 터져서 눈 다래끼가 나서 발목을 삐끗해서 콧물이 줄줄 나서 

같은 이유를 앞에 붙이고 '그래서, 교회 못 갔어요'라는 대답이 나오면 통화 분위기가 급 냉랭해지면서

그래, 알겠다. 그래. 들어가라. 뚝.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전화가 훈훈하게 끝나면 나는 거실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티브이를 조금 더 볼 수 있었지만

그래, 알았다. 뚝. 이렇게 전화가 끝나면 "아휴~ 나는 내일 학교 갈 책가방 싸야겠네"라고 

혼잣말하면서 내 방으로 피신을 하는 편이 좋았다.

여기서 잠. 깐. 만~ 전화기가 놓여있는 마루라니 그게 무슨 뜻이냐. 전화기가 왜 마루에 놓여있냐. 전화기는 각자 자기 손에 들려있지 라는 의문을 가질 사람들이 세상에는 이제 많이 존재할 거다. 그랬다. 예전에는 온 집안 식구들이 거실에 딱 하나 있는 전화기를 돌려가며 사용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에게 할머니는 그냥 내 할머니였으니까. 

숙모들에게 좋은 시어머니였는지 나쁜 시어머니였는지 그런 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나이를 먹고 돌아보니 그 당시 20대였을 젊은 숙모들이 받았을 '심적 부담감' 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잘 이해가 된다.

35년 전의 해프닝을 그대로 복사해서 2018년에 갖다 붙이기를 하려 해도 일단은 저렇게 생긴 전화가 없어서 불가능하고- 아마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카카오톡을 보내겠지- 저런 내용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매주 받는 며느리들이 우리 할머니같은 시어머니를 참아줄 것 같지도 않다 (게다가 요즘 20대 며느리들은 참 찾기 힘든 며느리들이 아닌가 말이다.하!)


동시에 할머니의 의도와 심정이 무엇이었을지도 약간 이해가 된다. 하지만 10살 꼬꼬마때도 느꼈다시피 할머니는 과하셨다. 노인네 너무 과했다. 만약 내가 할머니였다면. 내가 할머니 입장에서 똑같은 의도와 심정으로 '관철'(아.. 왜 이렇게 쎄고 투쟁적인 단어만 생각 날까) 시키고 싶은 무엇이 있었다면. 

나라면. 저렇게 안 했을 것 같다.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이런 나를, 이렇게 살고 있는 나를 굽어보고 계실. 할무이~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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