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FI 패스워드 물어봤더니
때는 바야흐로 8년 전, 여름. 미국 어느 시골길 옆에 우뚝! 서있던 맥도널드.
끝도 없이 펼쳐진 옥수수밭 한가운데를 3시간도 넘게 정처 없이 달리던 중 '신기루'처럼 뙇! 등장한 맥도널드.
들어가자마자 치즈버거 3개를 주문하고 주문 끝에 내가 물어봤었다.
저기, 여기 매장 와이파이 패스워드가 뭐예요?
왓? (익스큐즈미라고도 안 하더라. 나를 좀 무시하나? 싶은 자격지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러니까 내 말은. 와이파이 사용하고 싶은데 암호 좀 알려 달라고
왓? 무슨 파이?
와이파이! 인터넷! 인터넷 서비스 말이야
당최 니가 뭐라는지 모르겠어 (옆 직원 쳐다보며) 얘가 지금 뭘 달라는 거냐?(아, 귀찮은 중국 여자!)
나는 급 쭈굴, 초라해졌다. 내 영어가 이상해서 이 사람이 못 알아듣는구나. 망할 놈의 영어. 내 발음은 왜 이렇게 후진 거야.(그런데 말입니다. 내가 치즈버거 3개 달라는 건 어떻게 알아 들었을까)
우리 세 식구 중 가장 믿을만한 영어를 구사하는 열다섯 살짜리 아들 녀석을 다시 투입시켰다. 우린 절박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가 쓰던 이동통신사는 AT&T 였는데 벌써 몇 시간째 전화통화 시그널도 잃었고 인터넷 같은 건 언감생심. 적어도 우리가 지금 지구 상의 어디에 있는 건지는 알아야만 했다.
가라, 아들아. 가서 패스워드를 물어 오렴
익스큐즈미, 웹서치를 할 거라 인터넷 연결이 필요해요. 패스워드를 알아야 접속을 하는데. 그나저나 WIFI 있지요?
아 글쎄. 우린 그런 파이는 안 판다니까
엄마, 그런 파이는 안 판대. 이거 한 종류밖에 없다는데? 그냥 햄버거나 빨리 먹고 나가요. 뭘 바라겠어.
8년 전 미국 옥수수밭 한복판 어드메 맥도널드에서 일하던 직원은 '와이파이 wifi ' 자체를 몰랐던 것이다.
나는 이곳이 아이오와 IOWA 어디쯤이었다 기억하고 남편은 와이오밍 WYOMING 어디쯤이라고 우기고 있다 나중에 아이에게 물어보고 결판을 내야겠다
주말에 한국에서 일어난 'KT 건물 화재' 뉴스를 며칠 동안 유심히 지켜보았다.
사용자들의 불편이 크겠네... 공감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카드 결제 시스템이 망가져서 현금 결제만 받는다고 하니 손님들이 발걸음을 돌려 매출이 엄청나게 줄고 있다는 어떤 가게 사장님의 인터뷰를 보고
현금 인출기에서 5만 원만 뽑으면 안 되나
라는 바보 똥 멍청이 같은 말을 해버렸다. 같이 저녁을 먹던 남편 앞에서. 남편이 입에 반찬을 넣으려다가 순간 1초 얼어붙은 모습으로 나를 쳐다봤다.
'다급해진 시민들은 인근 현금 인출기를 찾았지만 역시 기계는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어쩌고 저쩌고.....' 현장 기자의 멘트가 울려 퍼졌다.
내가 여기서 너무 오래 살았군.
갑자기 내가 그때 '그런 파이는 안 팔아'라고 하던 와이오밍인가 아이오와인가에 있던 맥도널드 직원처럼 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