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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Nov 29. 2018

거짓말! 지하철에서 TV를 본다고?

너네 나라에서?

이 말을 수업시간 중 직접 들었던

내 어린 아들을 추억하며  




엄마, 우리나라에서, 지하철에서,

텔레비전 봐? 안 봐? 볼 수 있어? 없어?

얼른 집에 가서 엄마 아빠한테 물어봐야지.  2007년




전 학년, 전교생을 다 통틀어도 아시안이라고는 10명도 안되고 백인이 대다수였던

이 동네 중학교 1학년 교실 어느 수업시간에 '코리아'라는 나라에서 온 어떤 남자애가

우리나라에서는 각자 셀폰을 사용하고 달리는 지하철에서도 뉴스나 쇼 프로그램을 볼 수 있습니다


라고 발표했더니 대번에 미국애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친 말.

거짓말하지 마

어, 나 거짓말하는 거 아냐. 진짜야

거짓말하지 마. 선생님 얘 자꾸 거짓말해요


선생님은 우리 애한테 거짓말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애 말을 100% 믿는 것 같지도 않았다고 한다. 아무리 어려도 느낌이라는 게 있지 않나.

저 사람이 내 말을 믿는가 안 믿는가. 혹은 저 사람이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답을 알고 있는가 모르는가 같은.


집에 와서 신발을 벗자마자, 학교 가방을 어깨에서 내리자마자 이 해프닝을 설명하는 아이는 두 볼이 빨갰다.

아마 학교에서부터 내내 빨갛게 된 채 하루를 지냈던 것 같다.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오른손 주먹을 꼭 쥐고 위아래로 흔들면서 분개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도 자기편을 들어주지 않았을 테니까.

분명 아이는 몇 달 전까지 서울에서 익숙하게 수없이 많이 보던 광경을 말했을 뿐인데

(그 당시 DMB 핸드폰으로 옆에 붙은 안테나 쭉 욱 뽑아 가지고 지하철에서 혼자 비실비실 빙긋빙긋 웃으며 사람들이 티브이를 보고 그랬잖나. 기억을 더듬어 보시라)

순식간에 다수의 동급생으로부터 거짓말을 하는 '공상과학만화에 푹 빠진 미치광이' 비슷한 취급을 당했으니 그 울분이 하늘을 찌를만했다.


그날 저녁 남편이 학교에서 돌아온 뒤,

우리는 저녁을 먹으면서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몇 달 안 되는 미국 살이 경험상, 그리고 당시 우리가 살고 있던 이곳의 성향상우리가 상기하고 알아둬야 할 몇 가지가 있었다.


1. 여기는 '주도'(Capital city of State)이긴 하지만 한국의 대도시에 비해 낙후된 시골이라는 점

인천, 부산, 광주, 대전, 대구, 춘천, 전주..... 이렇게 발달된 도시가 아니야


2. 지하철을 타 본 사람, 혹은 실제로 본 적이 있는 사람이 드물다는 점(너네 반 아이들은 실제로 지하철이 뭔지도 몰랐을 거야. 네가 이해해)

지하철, 기차, 비행기, 버스(스쿨버스 말고), 옐로 택시 등을 타본 적 없는 사람들이 많아


3.'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같이 빠른 인터넷 광케이블 같은 건 뉴욕에도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점(2007년) 인터넷과 티브이 서비스를 신청한 지 열흘만에 정말로 긴~ 케이블을 어깨에 맨 설치기사님 등장

co,kr 웹페이지 열리는데만 몇 십분 걸리잖아.


4.'코리아'가 지구 어디쯤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점

이건 이해하자. 우리나라가 작아서 잘 안 보이나 봐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 사람들은 미국보다 잘살고 발전된 나라는 지구 상에 없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는 점(이것은 2018년 현재를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임) 미국 만만세 주의


6. 생각 안 나? 우리한테 이런 질문을 했던 이웃 사람도 있었잖아.'미국에 와서 배불리 먹으니까 너네 참 좋지?'라고. 기억나지? 여기가 이런데야. 그러니 불쌍하게 생각하자.

어쩌면 우리가 North Korea에서 왔다고 착각했을 수도 있어



남편은 아이의 선생님에게 간결한 이메일을 하나 보내는 것으로 이날의 해프닝을 마감했다.

오늘 우리 애가 클래스에서 한 말은 모두 다 사실이에요.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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