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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Jun 24. 2024

 허름한 뷔페식당에서 만난  한국전 미군 참전용사

하루 종일 굶은 날이었다.

돈이 없어서도 아니고 온천지 널린 게 식당이고 가게인데도 어쩌다 보니 쫄쫄 굶은, 그런 날이었다.

심지어 땡스기빙 전 날이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지나던 동네 그저 그런 뷔페식당이었다.

미국내에서도 빈곤하기로 손에 꼽히는 중부 어느 주(State)에 있는 허름한 식당이었다.


지금 당장 뒤돌아보진 말고. 당신 바로 뒤에 앉은 할아버지가 한국전 참전용사 같은데?

자리에 앉자마자 테이블 반대편에 앉았던 남편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돌아보지 않은 채-자연스러운 목소리와 태토도- 남편에게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남편도 나지막이 평범한 어조로 설명했다. 내 뒤에 앉은 할아버지는 굉장히 할아버지이시고 모자를 쓰고 계시는데 그 모자에 코리아 베테랑이라고 자수가 놓여있다고. 그리고 여러 가지 군대 관련 배지들이 모자에 줄줄이 달려있다고.

나는 너무 배가 고팠기 때문에 우선 접시 하나를 채워서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급선무였다.

음식을 담고 다시 테이블로 돌아오면서 남편이 설명해 준 할아버지를 나도 자세히 살펴봐야겠다 생각했다.

남편의 설명은 정확하고 간결했다. 설명 그대로의 할아버지가 보였다.

어림잡아 할아버지는 연세가 90은 훌쩍 넘긴 것 같았다. 그리고 남편이 설명한 그 모자를 단정히 쓰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테이블에 혼자 앉아 식사를 하고 계셨는데 테이블 맞은편에 접시나 컵이 없는 것으로 보아 동행한 사람이 없이 혼자이신 것 같았다.




배고팠다가 음식이 눈앞에 보이니 엄청 허겁지겁 입에 음식을 쑤셔 넣었다. 그러다가 두 가지를 알아차렸다.

첫 째, 이 식당 안에는 지금 나와 남편만이 '아시안'이라는 것을. 우리 두 사람을 빼고 식당에 앉아 있는 사람들 모두가 옆눈으로 앞눈으로 뒷눈으로 우리를 안 쳐다보는 것처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둘째,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 손님들이 거의 노인들이라는 것을.

아니, 오늘 무슨 동네 노인들 잔치라도 여기서 열렸나? 게다가 자세히 살펴보니 나와 등을 마주한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다른 테이블에서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하는 다른 노인들도 베트남 전쟁용사 이런 모자를 쓰고 있는 분들이 몇 분 더 계셨다. (이민 생활로 발달된 앞 눈, 옆 눈, 뒷 눈으로 스캔하였다)

식당 안의 많은 노인들이 지금 우리 부부를 궁금해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와 등을 마주한 할아버지께 말을 먼저 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녕하세요? 아름다운 저녁이네요. 당신의 모자가 멋져요. 우린 ###에서 온 한국인들이에요. 혹시 할아버지는 한국전 참전용사이신가요?

할아버지는 2023년 11월 땡스기빙 전 날 기준으로 94세. 한국전 참전 용사이시고 7년 전 아내분이 돌아가신 이후 70살 아들과 둘이 근처에서 살고 계신다고 했다.

한국전에 참전을 했다기엔 좀 부끄러운 경력이라고도 말씀하셨다. 왜냐고 물으니 자신은 1953년 여름부터 겨울이 되기 전까지만 있었기 때문에 진짜로 전투에 참전했던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셨다.

1953년 한국 어디에 계셨었느냐고 여쭈어보니 '미안, 내가 몇 년 전까지는 그 도시 이름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지금 대답하려니 생각이 안 나네. 그런데 무척 시골이었어. 밤이면 아무 불빛이 없었어. 기찻길이 있었고 사람들은 다 마르고 배가 고파보였어. 이게 내가 기억하는 전부야.'라고 말씀하셨다.


당신이 그때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아마도 우리 부부의 친척이었거나 조상이었거나 어쩌면 우리의 부모였을지도 모르지요. 고맙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허기가 사라졌고 두 번째, 세 번째 접시를 채우러 갈 타이밍도 잡지 못했다.


남편이 나에게 눈을 깜빡깜빡했다. 나는 그의 눈짓이 무엇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우리는 계산대로 가서 이 식당에서 발행하는 기프트카드를 한 장 고르고 세 번쯤 식사할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을 충전했다.

'젊은 날 당신이 우리나라에 와서 하신 서비스에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땡스기빙 보내세요 - #씨 가족 일동'

간단한 메모를 써서 할아버지께 드렸다.

할아버지는 깜짝 놀라셨고 너희가 나에게 이런걸 줄 이유가 없다며 만류하시다가 이내 눈물을 글썽이셨고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친구 할아버지들에게 가서 우리 부부와의 해프닝을 아이처럼 설명하기 시작하셨다.


남편이 또 나를 보고 눈을 꿈쩍꿈쩍했다. 이번에도 금방 알아차렸다.

꾸역꾸역 밥을 더 먹기도 뭣하고 상황이 뻘쭘해진 우리 부부는 서둘러 식당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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