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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Jul 15. 2024

밤 9:30 런던에서 재미있으려면

King 챨스의 Keys



단도직입적으로. 결론부터 쓰자.

누구라도 런던에 방문할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밤 9:30분에 런던 타워에 꼭 가라고 권하고 싶다.

좀 더 정확히 말해 Tower of London에서 매일 밤마다 이루어지는 Ceremony of the keys에 꼭 가보라고 말하고 싶다. (하늘색 글자를 누르세요. 링크가 열립니다)

그러나 여기서 잠깐만,

무턱대고 밤 9:30분에 거기로 직진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100% 예약제이기 때문이다.

보통 예약 사이트는 두 달치가 오픈되는데 이 사이트 예약 경험자(아들 녀석)의 말에 의하면 '전광석화'처럼 예매가 마감된다고 했다.

이 열쇠 세레모니를 보기 위해 들여야 하는 돈은 크지 않다. 5유로. 오늘 환율기준으로 7천5백 원 정도 되겠다.

물가 높기로 유명한 런던에서 5유로면... 식당에서 물을 한 병 시켜도 5유로 정도 받고 튜브(지하철)를 한번 타도 거의 3유로 정도 내야 하니 비싼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름답지만 추웠다


템즈강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을 맞으며 1월 중순 겨울밤 9:20분. 런던탑 앞으로 갔다.

낮에야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복잡한 곳이지 어둑해지는 밤에는 괴괴하고 적막하다. 그도 그럴 것이 밤 유흥을 위해서라면 런던의 다른 지역으로 가지 왜 런던탑 앞에서 서성이겠는가.

열 명쯤 되는 사람들이 벌써부터 줄을 만들고 있었다. 목도리를 여미고 조용히 뒤에 가서 줄을 섰다.

너무너무 추웠다. 5유로*3인=15유로. 2만 2천530원을 날렸다치고 그냥 숙소로 돌아갈까 생각도 들었다.

우리 일행 뒤로도 차츰 사람들이 더 길게 줄을 만들기 시작했다.

줄을 서는 우리를 멀찍이서 지켜보던 한 다른 무리가 다가왔다. 나에게(Why me).

이거 무슨 줄이야? 왜 여기에 줄 서 있는 거야?

설명해 줬다. 그들은 설명을 듣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어디서 표를 살 수 있냐고 물었다.

안 됐지만 3월 표까지 다 팔렸을 거라고 대답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온라인 체크를 해보라 했다. 셀폰을 도도독 두들겨보더니 그들은 실망을 한 채 깜깜한 런던의 뒷골목으로 사라졌다.




Ceremony of the Kyes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스포일러가 아니다.

9:30이 되어 줄 선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진행요원이 미리 모두에게 말해준다.

사진 찍지 말기. 동영상 찍지 말기. 전화받지 말기. 옆사람이랑 떠들지 말기.

비교적 사람들은 그 지시에 잘 따랐다.

매너를 지키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눈치 없이 주접떨기엔 너무 추웠고 너무 깜깜했고 너무 적막한 런던타워 경내 안쪽이었다. 관광객이 빠져나간 런던타워 경내는 으스스했다. 함께 줄을 서고 있던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자박자박 밟는 돌바닥에서 나는 소리만 크게 들렸다.


거기, 거기 서 있는 여자분, 머리 위를 조심해요!

앞 서 걸어가며 이런저런 설명을 하던 진행자가 내가 서 있는 쪽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저렇게 말했다.

깜짝 놀란 나와 나의 주변에 있던 여자들은 어머머 꺄아악 오마이 등등 저마다 작게 소리 지르며 작은 호들갑을 떨었다. 진행자는 설명을 이어갔다. 내가 서 있던 자리에서 위를 쳐다보면 (성문 입구) 꽤 큰 구멍들이 여러 개 있는데 옛날에 전쟁을 할 때 성문이 뚫리고 침입자들이 성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성문 벽 위에서 펄펄 끓는 기름을 그 구멍으로 들이부어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기 위한 첨단 장치였다고 한다.

내 정수리 위쪽 난간 구멍에서 떨어지는 펄펄 끓는 기름을 맞고 죽었거나 다쳤거나 대머리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수많은 바이킹족, 켈트, 섹슨족 등등의 용사들의 애환이 느껴졌다.

농사짓다가, 사냥하다가, 영문도 모르고 전쟁에 끌려 나왔었을 텐데. 에구궁.



이벤트가 끝나고 나면 사진 찍을 시간을 따로 줌.


긴 말이 필요 없다.

5유로는 전혀 아깝지 않다. 돈 값을 한다. (런던 식당에서 파는 물 한 병 값이잖나)

런던 방문 계획이 있다면 꼭 두 달 전에 온라인 예매에 성공하여 밤 9:30분부터 한 시간 정도 이어지는 저 세리머니에 참여하기를 강력하게 권한다.

재미도 있고 배우는 것도 있고 관광객 빠져나간 런던 타워 안을 깜깜한 밤에 둘러보는 맛도 있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오늘날 2024년 현재 영국의 왕은 Queen 이 아니라 King이고 영원히 황태자일 것 같은 챨스는 더 이상 황태자가 아니라 어였한 '왕'이 되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된다는 점이다.

덧붙여 '킹 챨스 3세'라는 것도 알게 된다.


꼭 가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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