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멀리 왔군
북쪽으로 북쪽으로 달리던 우리는
북쪽 국경(몬타나)을 만나자 방향을 틀어 서쪽 서쪽으로! 를 외치며
서쪽 해안(워싱턴)에 닿을 때까지 달렸다.
그러다 보니 다시 남쪽(캘리포니아)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고.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엘에이'는 가봐야겠지?' 하며 달리다 보니 이런 엉뚱한 간판이 보였다.
집 떠난 지 22일 만에.
우리는 우리 집에서 가장 먼 곳에 와 있다는 것을 로스앤젤리스에 와서야 깨달았다.
미국의 동쪽에서 시작한 우리의 무모한 여행은 우리를 미국의 서쪽에 데려다 놓았다.
우리는 여기서 결정해야만 했다.
우리 어떻게 하지? 이제?
이렇게까지 오래, 멀리까지 돌아다니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그저 며칠 집 주변 몇 도시 거리에서 깨작깨작거리다가 '아휴 도저히 힘들어 못해먹겠다!'라고 하는 사람이 우리들 중 누구라도 한 사람 생기면 못 이기는 척하고 집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랬다.
분명히 남편이나 아이가 저렇게 말해줄 거라고 믿었다.
아이스쿨러에 닥치는 대로 챙겨 나온 먹을 것도 며칠이면 다 떨어질 테고 끈끈하고 더운 7월의 여름 날씨에
텐트를 설치했다 접었다를 서너 번만 반복하면 남편이나 아들-두 사람 중 한 사람의 입에서
'이젠 집에 가자'라는 말이 나올 줄 알았다.
3시간을 안 쉬고 달려도 계속 밀림처럼 울창한 옥수수밭의 끝이 보이지 않고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곤 좀 굳은 즉석밥과 도시락용 구운 김 그리고 맥도널에서 산 치킨너겟 몇 조각이 전부인 날을 연달아 이틀만 경험하면 우린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아이고 이젠 집에 가자'라고 할 줄 알았는데 아무도 그런 말을 22일 동안 하지 않았다.
오히려 22일 동안 조금씩 조금씩 더 집으로부터 먼 곳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서쪽 끝에 다다랐고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해야만 했다.
결정을 하고 말고 할 것은 사실 없었다. 이젠 돌아가야지 어쩌겠는가.
정확히 '집'으로 간다 말하기 싫다 하더라도 '집이 있는 방향'으로는 떠나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