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33 Days

여긴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아

이 세상 아니면 저 세상

by 푸른밤

사우스 다코타 어느 옥수수밭 옆 캠핑장

폭풍 같은 밤을 보냈다. 엄밀히 말하면 폭풍 속에서 밤을 보냈다.

캔자스 외딴 시골집에서 어느 날 잠을 자고 있을 때 무서운 회오리바람 타고서

모험이 시작되었다던 '도로띠'처럼 우리 셋이 몽땅 그렇게 오즈의 나라로 날아갈지도 모르는 판이었다.




그냥 안 가본 '주'- State로 가자. 그냥 일단 무조건 서북쪽으로 가자라며 출발했던 우리의 여행은

내일 묵을 숙소를 오늘 저녁에 정하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을 땐 당일치기로 그때그때 잡거나

그나마도 안될 경우엔 노숙을 했다. 차에서. 요즘은 뭐라더라... 그걸 부르는 말이 있던데.

일단 지금은 그 단어가 생각이 안 난다.

그날, 폭풍 속에서 밤을 지낸 그 장소는 남편이 전날 맥도널드에서 간신히 와이파이를 잡아 예약을 했던 캠핑사이트였다. 오늘 밤 잘 수 있는 예약된 내 자리가 지구 상 어딘가에 있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었다.

수백 마일 떨어진, 평생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 있는 어떤 장소를 고작 클릭 하나로 예약을 하고

이랬거나 저랬거나 '주'에서 운영하는 캠핑 사이트라는데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어 같은 믿음을 가지고

도착했던 그곳.


우리의 알량한 텐트를 펼 자리는 기찻길에서 바로 한 10미터 정도 떨어진 그냥 평평한 흙바닥이었다.

이 잘난 흙바닥을 잡으려고 맥도널드에 바친 햄버거 값이 아까워지는 순간이었다.

흙바닥도 흙바닥이지만 나는 바로 곁에, 10미터 옆에 끝도 보이지 않게 쭉 뻗은 기차선로가 더 거슬렸다.

아.... 아마도 이건 옛날 옛날에 사용하다가 지금은 선로만 남아 있는 그런 기찻길이겠지. 설마 캠핑장을 가로질러 기차가 빼액 빼액 지나가진 않을 거야.라고 내 우려와 의심을 다독였다.

!!!

기차는 30분마다 길고 긴 꼬리를 달고 칙칙폭폭, 챠가 챠가 츄츄 지나갔다. 두 번 중 한 번은 꼭 우리 텐트 옆에서 혼이 빠져나갈 정도로 큰 기적소리를 울렸다.

저주받은 자리였다. 그래도 너무 피곤해서 잠이 들었다.




하지 마. 00아 하지 마. 엄마 피곤해. 하지 마

누군가 자꾸 내 등을 흔들고 미는 느낌이 들어서 나는 애가 자다가 나에게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눈을 떠보니 아들 녀석과 남편은 쿨쿨 잠을 자고 있는데 우리 텐트는 밖에서 여러 사람이 일부러 쭈그려 뜨리려는 것처럼 천정도 흐물흐물 옆면도 쭈글쭈글 일렁이고 있었다.

폭풍이 텐트를 흔들고 그 텐트가 나를 흔들고 있는 중이었다.

혼비백산 아이와 남편을 깨우고 핸드폰과 각자의 안경을 양손에 쥔 후 텐트 밖으로 나왔다.

동전만 한 빗방울이 후두두둑 쏟아지고 있었다. 일단 아이를 차에 태운 뒤 남편과 나는 미친 듯이 텐트를 둘둘 감아 트렁크에 쑤셔 넣었다. 텐트 안에 있던 침낭과 옷가지들은 그냥 텐트와 함께 김밥처럼

둘둘 말렸다.



어떡하지? 여기 가만히 있어? 아니면 여길 피해?

여기 가만히 있다가 바람에 홀랑 날아가는 거 아니야?

달리다가 날아가면 어떡해

이런 대화를 100번쯤 서로 주고받은 뒤. 우리는 결정했다. 이 자리는 피하기로. 이때가 새벽 2시경.

남편이 폭풍을 뚫고 한 시간을 운전해서 서쪽으로 달렸다. 빗방울이 약간 작아지는 지역으로 왔을 때

나와 운전을 교대했다. 남편은 넋이 살짝 나간 상태였다. 눈을 붙이고 쉬어야만 했다.

인터넷도 안되고 셀폰도 터지지 않는 완벽한 No where.

두어 시간 동안 뒤에서 오는 차도 없고 앞에서 오는 차도 없던 아무 곳, 그냥 어떤 곳.

불행 중 다행인 것 한가지는 어제 캠핑장에 들어오기전에 기름을 꽉 채운 차를 내가 지금 운전하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2시간을 달렸다. 앞으로 앞으로. 차에 달린 나침반을 따라 서쪽으로 두시간.

그러다가 보게 된 이 광경.


이 세상 아닌 저 세상.

폭풍-> 새벽-> 불벼락-> 종말? 이역만리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금세 이렇게 되다가


차를 길 옆에 세웠다. 어차피 아무도 길에 지나가지 않는다.

자고 있는 아이와 남편을 깨웠다. 잘 때가 아냐. 이것 좀 봐봐.

부시시 눈을 뜬 두 사람은 잠시 눈을 껌뻑이더니만

꿈인지 생신지 여기가 어딘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한 사람은 카메라, 한 사람은 캠코더를 들고서.

밝은 빛 안쪽엔 천국 문이 있을지도


황홀한 순간을 눈에 담고 사진에 담아 돌아온 부자가 말했다


여긴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아

그렇다. 셋이 눈을 똑바로 뜬 채, 말짱한 정신인 채,

이 세상에서 저세상을 경험했던 적이 있었다. 바로 이 날 새벽.





Photo by- Park's

나는 이곳이 사우스 다코타 Badland 주변 어딘가라고 우기고 있고

남편은 와이오밍 어딘가였다고 우기고 있다. 10년째.

하지만 여기는 사우스 다코타 Badland 근처다.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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