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33 Days

떠나자 세인트루이스로

Day 2

by 푸른밤

아침부터 온갖 새들이 너무 시끄럽게 우는 소리에 잠이 깼다.

에구구.. 에그그 그.. 하면서 각자의 침낭에서 빠져나와 잘 안 열리는 텐트의 지퍼를 열고 다 같이 화장실에 한번 갔다가 다시 텐트로 돌아와서 남편과 아이는 침낭과 텐트 정리를 하고 나는 아침거리를 준비했다.

남편이 텐트를 걷는 것으로 보아하니 여기에서 또 하룻밤을 잘 건 아닌 듯싶었다. 어디론가 가기로 결심을 했다는 증거였다. 어디로 갈 거냐고 물어보진 않았다.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에 3인용 전기밥솥에 밥을 했다. 도시락용 구운 김과 집에서 먹던 멸치볶음 남은 걸 싸온 것으로 아침을 먹었다.

다 먹었으면 챙겨서 떠나자

'떠나자'라고 말한 걸 보면 집으로 가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집으로 가려했다면 그냥 짧게 '가자'라고 했을 것 같았다. 어디로 떠나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떠나기 전에 이 캠핑장에 둘러봐야 할 곳은 없는지 캠핑장 지도를 보고 조금 연구했다. 이 Cumberland 주립 공원은 '뉴 딜' 정책의 일환으로 가난에 시달리는 250 가족들을 이 고원에 있는 농장으로 이주/정착시키면서 그들을 위한 레크리에이션 공간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왜 산 꼭대기에 이렇게 큰 호수가


높은 산이지만 그래도 이곳에 정착하면 내 땅이 생기겠지. 굶어 죽느니 땅이라도 있으면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거야 라고 이주를 결심했을 옛날(그래 봐야 약 80년 전) 사람들의 어려운 마음을 잠시 상상해 봤다.




남편은 세인트루이스(St. Louis)로 가려한다고 말했다. 테네시에서 미주리로. 나도 대충 그럴 거라고 짐작을 했기에 남편에게 어디로 갈 거냐 묻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맨 처음 이 여행을 시작했을 때 이 여행의 목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안 가본 주(State)'로 가보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켄터키는 예전에 시카고에 가느라 지나가 본 적이 있었다.

오늘도 기본 7시간 운전이구나


그래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달리다 보니 어디서 본 것 같은 저것.

세인트루이스 다 왔나 봐
Gateway Arch


음. 그런가 봐. 저거 유명한 거. 세인트루이스 하면 저게 상징이지. 다 왔나 봐.

공부를 꼼꼼히 하고 계획을 철저히 세운 뒤 떠난 여행이 아니라 볼 것, 먹을 것, 할 것 등을 잘 챙기지 못했다. 그래서 일단 저 반짝이는 아치 근처로 가보기로 했다. 저 꼭대기에 전망대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다지 올라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요금 때문이었다. 그게 얼마였든. (갑자기 궁금해서 지금 찾아봤더니 $10 이랜다)

최대한 가까이 차를 댈 수 있는 곳을 찾아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나와 아치를 향해 조금 걸었다. 주변을 둘러보고 오~ 우리가 미주리까지 왔네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데 그때, 우리 세 식구 옆을 아주 위협적으로 쌔앵~~ 운전해서 지나가는 허름한 차에 앉은 서너 명의 사람들이 우리에게 험한 욕(F word)을 하는 것을 아주 생생히 들었다. 분명히 우리에게 하는 욕이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래. 여긴 위험해 살인율이 높기로 유명한 도시라고.

어쩐지 도시에서 살짝 '망해가는 도시의 냄새' 가 나더라니

아이손을 꼭 잡고 호다 다닥 뛰어서 차로 얼른 돌아왔다.

밤이되면 더 무서운 다운타운. 꼭 여길 와봐야겠냐

야구를 좋아하는 남편과 아이는 카디날스 구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다 했고 나는 게이트웨이 아치에서 졸지에 당한 봉변도 있으니 다운타운으로는 들어가지 말자고 했는데 잠깐만 들러 사진만 찍겠다고 기어이 저길 갔다. 지금 같으면 안 갔을 거다.


이날도 날씨는 끈적이고 더웠다. 텐트를 쳤다.


내일부턴 어디로 갈 건지, 계획은 있는지 남편에게 좀 물어보면서 다녀야겠다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내일 뭐할건지 모름이 주는 두려움이 집 떠난 지 이틀만에 다시 솟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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