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33 Days

근데 여기가 어디야? 응, 테네시 어느 산

Day 1

by 푸른밤


근데 우리 어디로 가?

응, 여기로 가보자. 테네시는 안 가봤으니까
안가봤다는 이유로 가게된 테네시


테네시로 가자.라는 남편의 결정이 아주 반가웠다. 왜냐하면 '주유소 회군' 사건 이후 나는 심적으로 무척 수세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뭐라고 내 의견을 당당! 하게 외칠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렇게 내 마음이 쫄아있을때남자답게 가장답게 '자, 이쪽이야. 나를 따르라~'는 듯한 남편의 방향 제시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남편은 나름대로의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시간표에 맞춰 딱딱 여기서 뭘 하고 저기선 뭘 하고를 정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동서남북 어디로 갈 것인지는 마음속에 정했을 거라 믿었다.

점심은 집을 떠나기 바로 직전 밥솥에 있던 밥을 싹싹 긁고 김가루와 깨소금을 섞어 만든 주먹밥과 오늘까지 먹지 않으면 버려야 할지도 모르는 바나나를 각자 앉은자리에서 냠냠 먹었다. 운전을 하고 있는 남편의 입에 음식물 공급을 하는 일은 옆에 앉은 내가 맡았다.

중간에 아이가 화장실에 간다고 해서 rest area에 한번 멈췄었다. (대도시 근처 몇몇 휴게소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미국 고속도로 rest area는 남녀 화장실과 음료수/스낵 자판기뿐이다)


도착. 오늘 밤 잘 곳. Cumberland Mountain State Park in TN

텐트나 캠퍼를 갖고 나오긴 했는데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싶을 땐 그냥 State Park(주에서 운영하는 공원. 풍광이 좋은 산이나 호수 주변에 위치해 있음)으로 가는 것이 비교적 안전한 선택이다.

그랬다. 남편은 저 새 텐트를 펼쳐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하물며 설명서를 하나 하나 읽어가면서. 어이쿠야~
7월의 테네시 어드메 오후는 끈적끈적

남편과 아들 둘이서 무언가 '남자다운 일'을 할 땐 끼어들지 않는다. 이건 뭐랄까 내 철칙? 같은 건데 우리 세 식구 중 유일한 '여자'인 나는 '남자다운 일'에는 훈수 두거나 잔소리하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해왔다. 어차피 저들이 저런 '남자다운 일'을 할 땐 나도 내가 할 일들이 있으니까. 게다가 남편과 아이가 둘이 해결해야 하는 '남자다운 일'들의 대부분은 나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그러니 그냥 끼어들지 말고 둘이 알아서 하도록 놔둔다. 만약, 둘이서 텐트를 치느라 저리 끙끙대고 있을 때 내가 나서서

아, 다 비켜봐. 내가 할게

라고 했는데 어쩐 일인지 휘리릭 척척척 딱딱딱 너무 일이 잘 풀리기라도 하는 날엔

"오~ 잘하네. 이제부턴 당신이/엄마가 해."

그럴지도 모르잖나. 이건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다. 텐트도 치고 밥도 하고 장작도 패고 고기도 굽고 쓰레기 처리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깜깜한 숲 길을 걸어 아이랑 화장실도 다녀와야 하는 일을 내가 다 할 수는 없다.


텐트를 치고 불을 피우고 저녁을 먹고 화장실에 가서 할 일들(뜨거운 물이 나오는 샤워실이 있었다. 기대 안 했는데)을 다 마치고 잠을 자려 누우니 밤 10시가 넘어 있었다.

그제야 내가 물었다.

근데 여기가 어디야?

"응, 테네시 어느 산"

우리가 테네시에 와 있구나. 여긴 뭐가 유명하지? 컨츄리송? 네쉬빌로 좀 더 들어가 봐야 할까? 여름이라도 산속이라 그런가 좀 추워지네. 다들 이 잘 닦았지? 침낭 지퍼를 꼼꼼히 닫는 게 좋겠어. 등 쪽이 좀 배기네. 바닥에 좀 큰 돌멩이가 있었나 봐. 들었어? 이상한 새가 방금 울었어. 새가 아니었을까? 짐승인가?..............

내일은 어디로 가나 우리?

응? 응?

몇 번이나 물어봐도 아무 대답이 없어서 옆을 보니 남편도 아이도 고른 숨소리를 내며 이미 잠이 들어 있었다.

내일 당장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뭘 먹을지 계획된 것 전혀 없이 이렇게 잠을 자도 되나 싶기도 하고 철들고 나이 먹은 뒤 '내일 계획 없음 상태'로 살아본 적이 있나 없나 생각하다가 나도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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