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근데 오늘 어디서 자?
돌아다니다가 이젠 집에 가야겠다 싶을 때 오자
우리들 중 그 아무도 몰랐다. 며칠이나 밖에 있다 돌아올지. 당장 오늘 밤엔 어디에서 잘 건 지.
우선 한 가지 정했던 것은 지금까지 안 가본 주(state)로 가보자 였다. 그때 우리 부부에겐 긴긴 여름방학이라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고 집안에 있던 음식을 담을 아이스쿨러가 있었고 마일리지가 좀 된, 연식도 좀 된 봉고차 비슷하게 생긴 차가 한 대 있었다.
그리고 별 것 아닌 말에도 전심을 다해 서러워하는 15살짜리 아들이 있었다.
다 잘 챙겼는지 100번 확인하고 잔소리하고 또 잔소리하는 일은 엄마인 내 담당. 야심차게 출발했다.
집에서 5분쯤 떨어진 주유소로 갔다. 일단 기름을 꽉 채우는게 제일 중요하지. 그럼, 그렇고 말고 라며 주유기를 조작하던 남편에게 살며시 이렇게 말했다. 화낼까봐 살며시 말했다.
근데, 나 좀 다시 집에 가봐야겠어
'에어컨을 켜놓고 온 것 같아. 아무래도 끈 기억이 안 나.'
집에 가보니 에어컨은 잘 꺼 있었다. 이런 경우엔 에어컨이 켜 있던 편이 나을까 아니면 이렇게 꺼져 있는 편이 좋을까 생각해봤지만 둘 다 좋지 않다. 가던 길을 멈추고 차를 돌려 다시 출발했던 제자리에 와 있다는 자체가 이미 안 좋은 거다. "주유 한번 자알~ 했네 자 다들 들어가자" 라며 남편이 운전석에서 내리기 전에
얼른 내가 다시 원래 내자리로 껑충 뛰어 앉았다.
그리고 다시 15분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출발.
데쟈뷰.
진짜 출발이야. 다시 돌아오는 건 이제 없어
미국 동남부 놀스캐롤라이나에서 시작한 무모한 방랑(캠핑이나 여행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음)은
22일 후 로스앤젤리스 코리안 타운에 있는 중국집 '연경' 에서 탕수육을 영접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우리가 얼마나 집으로부터 멀리에 와 있는지를 깨닫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