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by Om asatoma

버스는 도청 앞 길을 달리다가 용지공원 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버스 내부의 공기는 건조했지만 창밖에서는 장대비가 퍼붓고 있었다. 예보에 없던 소나기였다. 길가의 메타세쿼이아 잎들이 제법 진한 초록인 한여름이어서 유리창 가득 초록비가 퍼붓는 것 같았다. 도립미술관으로 오르는 길을 뒤로하고 용지공원 쪽으로 좌회전을 할 때 구름이 빠르게 걷히며 빗줄기가 약해졌다. 은행나무 가로수길이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간간히 은행잎 위로 햇빛이 반짝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비가 완전히 그친 것은 아니었다.


드문드문 앉아있던 버스 안의 사람들은 신기한 듯이 두리번거리기도 했지만 창밖의 풍광과 관계없는 사람이 둘 있었다. 그 여자와 나.


어깨를 충분히 덮는 긴 웨이브 머리에 랑거리는 실크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투명한 수채화 같은 꽃들이 가득 피어있는 원피스였다. 그 꽃들에게선 향기도 났다. 사람의 살결이 저렇게 투명할 수 있을까 싶은 지점에 있던 그녀의 발목은 매우 가녀렸으며 굽 높은 힐 샌들을 신고 있었다. 발등에는 주얼리 장식이 반짝였다.


호수 옆길을 천천히 지나고 있었고 버스는 성산아트홀에 다다랐다. 부저를 누르고 내릴 준비를 하던 여자가 멈춰 선 곳은 문 앞이 아니라 내 자리 앞이었다. 실크가 너무 얇아 낭창이는 허리와 뒤태가 고스란히 드러나있었다. 얼마나 착하게 살면 저리 빛이 나는 모습일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그녀는 들고 있던 장우산을 내게 건넸다. 비는 아직 개지 않은 상태였다. 쏟아붓지는 않았지만 제법 굵은 빗줄기가 햇살 사이로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내게 우산이 없기는 했어도 비를 맞아서는 안 될 것 같은 쪽은 이쪽보다는 오히려 저쪽이었다. 제삼의 인물이 우산을 건넨다고 해도 이쪽보다는 그쪽에게 건넸을 것이다. 나는 비를 좀 맞아도 될 것 같은 사람이었고, 그녀는 비를 조금이라도 맞으면 안 될 사람처럼 보였다. 누가 봐도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여자에게는 아직 친해지지는 않은, 그러나 친해지고 싶은 남자와의 데이트가 있었을까 그렇지 않으면 떠나려는 남자를 붙잡으러 가는 길이었을까. 그 여름 소낙비 속에서 우산도 없이 어쩌자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이쪽이 슬퍼 보을까. 안아줄 수 없으니 비라도 막아주고 싶었던 걸까. 하염없이 창밖만 보며 울고 있던 나를 보기라도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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