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Om asatoma Jun 19. 2020
타이핑 소리가 별처럼 쏟아져내린다. 악보 따라 연주되는 교향곡처럼 빈틈없이 공간을 채운다. 몰아치는 타이핑 중에 쉼표와 마침표의 자리 또는 그가 줄을 바꾸는 지점에서 엔터 키를 힘주어 칠 때에는 나도 따라서 숨을 멈춘다.
출입문의 반대쪽에는 투명한 유리로 된 전면 창이 있다. 그 너머로 초록 나무들이 비바람에 세차게 흔들린다. 벽면이 모두 새하얀 실내는 창백하게 고요하고, 타이핑 소리는 기묘하게도 안정되게 들린다. 마치 우리의 밤은 없었던 것처럼.
그의 입에서는 바람 부는 소리가 난다. 작업에 몰두해있다는 증거다. 정제되지 않은 내면의 소리가 낮은 진동을 이루며 전달된다. 흡사 동굴의 저 안쪽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처럼 서늘하다. 그럼에도 나는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다.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단어의 조합을 응시하는 눈빛에 흔들림이 없다. 모니터 밖의 세계는 그에게 없는 듯하다. 모든 문장이 그의 의도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날도 그랬다. 그의 눈과 손은 하나의 신체가 아닌 것처럼 별개의 개체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듯 움직였다. 느리고 조심스러운 터치였지만 주저함이 없었다. 나를 숨 막히게 한 것은 절대 틈을 주지 않는 시선이었다. 단 한순간도 허용하지 않았다. 오직 그의 시선 안에서만 머물러야 했다. 눈을 맞춘 채 그의 터치를 받아들이는 일은 견디기 힘들었다. 옷을 입고 있어도 발개 벗겨진 기분이 들게 했다. 그는 내 눈빛의 변화와 미묘한 표정의 변화들과 얼굴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는 완전한 응시. 그의 단호함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뜨거운 커피를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런 노력 없이도 그의 입술에 닿을 수 있는 커피잔의 하루를 생각한다. 그의 가장 민감한 부분이 받아들인 한 모금의 커피는 금세 달콤해졌겠지. 잠시 멈췄던 타이핑이 다시 시작되었다.
창밖 비는 그치고, 바람은 여전히 불고 있다. 나뭇잎에 앉았던 빗물은 곧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 밤이 흔적 없이 사라진 것처럼. 백열등 환한 사무실 옆자리에 앉아 처음 만난 사람들처럼 일을 하고 있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