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인을 만났다.

by Om asatoma

내가 좀 이렇다. 좀 그렇다.

선생님의 숲으로 들어가고 싶어서 제주의 숲들을 찾아갔으면서

집에서 십 분 거리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도

길을 헤매다 식순에 있는 선생님의 인사말씀을 듣지 못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이곳은 여러 번 찾은 적이 있고, 집에서도 가깝고, 직장에서도 가깝고, 집과 직장의 사이에 있는데, 물론 옛날 마을이어서 도로가 도시의 도로와 같지 않기는 하지만,

'티맵'이 알려주는 대로, 그대로 갔는데 나는 엉뚱한 골목길에 들어서 맞서 오는 차와 대치하다가 땀을 뻘뻘 흘리며 굽은 골목길에서 후진을 했다.


무언가, 정해진 시간에 늦는 경험, 이미 결정된_ 변경하기 힘든 시각의 앞에서 마음이 초조해지는 이 상황의 반복이 이제는 기시감이 들 정도로 익숙해져 버렸다. 지는 해를 잡으러 달리는 동안 느껴지는 그 다급함. 의지로 할 수 없는 일들, 의지와 관계없이 마무리되어버리는 이 느낌이 아마도 언제일지 모를 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다시 한번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다. 또는 지난 생의 끝이 이와 같음으로 끝맺어지지 않았을까. 아마 후자에 가까울 것 같다. 그러함의 극복, 한 발 앞서가서, 반 발 앞서가서 기다리는 여유로 이번 생을 맺으라는 숙제를 안고 태어난 게 아닐까.


그렇게 행사는 이미 시작되었고, 선생님의 뒷모습만 보면서 자리에 앉아 있다 1부가 끝나고 가방을 챙겨 일어나시는 선생님께서 아마도(?) 유명할 문인 분들과 인사 나누시는 동안 두 손 모으고 멀리서 보다가 보다가, 식장을 떠나시기 직전에 다가가 인사드렸다.


잡아주신 손이 참 따뜻했다.

잡아주신 손이 참 따뜻했다...


안아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꼭 안아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짧은 인사를 나누고, 주고받은 메일을 말씀드리며 기억해 내는 동안 오래 잡은 그 손이 참 따뜻했다.


차로 가시기 전에 한번만 더 손잡고 싶다 말씀드렸고, 나는 그만 눈물이 나버렸다. 눈물이 났다. 분명한 눈물이었다.


처음 선생님의 시를 선택했을 때부터, 시를 눈으로 읽고 소리 내어 읽는 많은 시간 동안, 선생님의 지금 연세를 알고부터, 지나오신 삶을 보고 나서부터, 지난 세월 쓰신 글을 보고부터 더더 선생님을 향한 마음이 깊어만 갔다. 한 자 한 자, 한 행과 다음 행 사이의 호흡까지도 마지막 순간의 마지막 호흡까지도 게을리, 가볍게 할 수 없음을 스스로 다짐하고 다짐했다.


6월 즈음에 시를 알고부터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있는 지금까지 시를 외는 모든 순간들에 몸에 푸른 공기가 차오르고 여름 아침 숲의 선선함과 텅 빈 가을 산에 울리는 모든 소리들이 나의 빈 곳을 가득 채워주신다. 살아야 함에 대한 의심을 둘 곳이 없을 만큼 꼭 안아 주신다. 내 목소리를 찾아주셨다. 시인의 목소리로 읽으려 했는데 시간이 더해질수록 나의 목소리가 나왔다. 시인님의 목소리를 상상하면서 읽었는데, 어느 순간 시인님의 목소리와 나의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을 만났다. 마치 내 목소리인 것처럼 살다 보니 시인님이 숲에서 느꼈을 그 감동과 그 위안과 그 황홀이 모두 내게로 왔다. 돌려드리고 싶다. 긴 시간 흘러 잊히셨다면, 또 다른 이유로 잠시 잊으셨다면 이번에는 내가 시인님께 안겨드리고 싶다.


나의 하루와 시인님의 하루가 다른 것 같은데, 어서 안정적으로 읊을 수만 있다면, 그날이 오기 전에 음성 파일로라도 들려드리고 싶은데, 더 멋진 자리 더 크고 좋은 자리면 더 좋겠지만 나의 능력에 그런 자리는 아직 맞지 않으므로 진심을 담아, 시인님에 대한 존경_그분의 삶에 대한, 전체의 삶에 대한, 그리고 그분의 문학 인생에 대한 존경을 담아 좋은 작품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드리고 싶다. 늦기 전에.


늦기 전에.


글에서 본 선생님의 느낌 그대로였다.

선생님의 이름에서 느껴지는 느낌 그대로였다.

선생님의 시에서 느껴진 온기, 그 온기가

선생님의 곁에서, 선생님의 눈빛에서, 선생님의 손에서 그대로 전해졌다.


한 번만 더 볼 수 있으면

한 번만 더 뵐 수 있으면


안아달라고 할 거다.

그리고는 꼭 안아드릴 거다.


늦기 전에.



선생님의 시 덕분에 요즘 살고 있는 내가

아주 꼭 안아드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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