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독서모임 5년 차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다.
나의 독서모임에 대한 애정은 꽤나 유별나다.
2년 정도 독서모임을 하다가 영국으로 해외 근무를 가게 됐는데, 온라인으로 계속 모임에 참여했다.
심지어 시차 때문에 새벽 1-2시에 접속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공백기 1달 이상 거른 적 없이 참여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영국에서 내가 북클럽을 직접 열어서 20개월 정도 운영했다.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는 당연히 기존 독서모임에 계속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런던에 두고 온(?) 나의 북클럽이 눈에 밟혀서 런던 멤버들과는 온라인으로 모임을 이어가려고 구상 중이다. (지난달에 한 번 시험 삼아 온라인 모임을 했다.)
이게 뭐라고, 나는 독서모임에 이렇게 집착(?)하는 걸까?
우선 독서를 시작한 이유부터 말해볼까.
입사 3년 차가 되어서, 성장의 정체기를 맞았다.
별 중요성도, 주목도도 없는 업무와 포지션을 맡고 있었고,
당시 한 팀이었던 두 명의 상사는 ‘반면교사’, 즉,
‘아, 저런 사람은 진짜 별로구나.. 조직에 진짜 민폐구나’ ‘나는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겠다’ 외에는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당시 그곳에서의 근무 기간은 2년으로 고정되어 있었고, 입사 3년 차의 열정 넘치던 나는 분노하다가 내 시간을 여기서 이렇게 썩게 할 수 없다며,
회사에서 성장할 수 없다면 회사 밖에서라도 스스로 성장할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독서를 시작했다.
책을 읽고 나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떤 답을 찾았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자기 변화, 자기 확장의 경험
그렇게 처음 나가게 된 독서모임은 정말 즐거웠다.
나와는 다른 지식과 경험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재밌었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혼자서라면 하지 못했을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같은 걸 보고도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 깨닫는 건 언제나 신선한 경험이었으며, 때로는 누군가의 생각이 나에게 닿아서 나의 일부가 되고, 나의 사고와 행동이 되기도 했다.
기록학자 김익한 교수의 <거인의 노트>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계속해서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인간은 기쁨을 얻을 뿐만 아니라 존재(being)를 넘어 생성(becoming)으로 나아가는 자기 변화를 끊임없이 경험한다."
나에게 독서모임은 바로 이 자기 변화, 자기 확장을 경험케 하는 곳이다.
사실 매일 출퇴근을 반복하고, 회사에서도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다면 매일 보는 팀장님, 팀원, 업무 파트너와 정해진 업무만 하고 새로운 지적 자극을 느낄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독서모임은 나를 확장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사실상 거의 유일한 곳이다. 이것이 내가 독서모임을 5년 동안 지속해 온 이유였다.
단순 친목 모임에서는 서로의 인사이트나 경험, 생각을 그렇게까지 깊이 이야기할 일이 잘 없다. 독서모임에서는 이와 달리 나와 다른 배경, 관점,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과 상당히 오랜 시간 제법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게 가능했다. 이런 밀도 있는 대화에서는 언제나 반드시, 배울 것이 있었다.
나는 고이게 되는 것이 무엇보다 두려운 사람인데, 독서모임은
1. 책을 읽고 (심지어 가끔은 안 읽거나 덜 읽고)
2. 가기만 하면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가장 즉각적이고 쉬운 방법이기에 끊지 못하고(?) 계속하는 것 같다.
일정 기간 독서모임을 하지 않으면 불안한 금단 증상(?)마저 있다.
이쯤 되면 나는 독서모임 중독자다.
존재로서의 나를 만나는 시간
“내 인생을 한 단어로 표현해서 이름을 붙인다면 뭐라고 하겠어요?” - 다섯 번째 산, 파울로 코엘료
“나의 올해의 키워드는 무엇이었고, 내년의 키워드는 무엇으로 할지?” - 심플 라이프, 제시카 로즈 윌리엄스
“내가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나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 심플 라이프, 제시카 로즈 윌리엄스
평소에 살아가면서 이런 질문을 받는 일이 있을까? 아마 잘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하루하루 이렇게 열심히 사는 것도 다 잘 살자고, 내가 원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 누리려고 하는 것인데, 정작 나의 인생에 대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돌아보는 시간은 놓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 또한 그렇다.
분명 매일매일은 바쁘고, 나에게 주어지는 일과 의무에 최선을 다한 것 같은데,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허무하고, 진짜 나는 없는 것 같고, 무언가 진짜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독서모임은 이처럼 바쁜 일상과 일과 ‘해야 하는’ 의무에 매몰되어 있는 나를 리프레시하는 시간이다. 모임에서 나누는 이야기가 보통 나의 경험,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지,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모임이 아니었다면 평소에 거의 생각해 본 적 없는 것들이었다.
모임 때 이야기하기 위해 답변을 떠올리면서 자연스럽게 ‘요즘 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니’, 멈춰서 물어보는 기회가 생겼다.
모임에 가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 생각이 한 번 더 정리되었다.
나와 다른 의견을 들으면서 역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선명하게 알게 되기도 했다.
나에게 관심을 갖고 나를 들여다보면서 몰랐던 내 마음이나 성향을 발견했다.
여러모로 나를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었다.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동안 내가 누군가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나’로서 온전히 존재하는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
독서모임 하는 시간만큼은 나 자신을 누군가의 쓸모를 위해 바치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나만 생각하고 위하며, 존재로서의 나에게 집중한다.
이게 좋다더라, 이게 유망하다더라, 이걸 해야 한다더라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흘러가는 대로 살기가 너무 쉬운 세상. 독서모임은 그 노이즈 속에서 내가 진짜 원하는 대로 살고 있는지, 한 번씩 각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존재로서의 나’로 존재하는 시간을 위해 독서모임에 간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이야기가 궁금해서 시작한 독서모임. 이제는 나 자신을 잘 알게 되고,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게 좋아서 독서모임을 계속하고 있다.
이 이유가 여전히 유효하고, 나에게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독서모임을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