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무비 패스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
*<누구나 아는 비밀>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보는 걸 추천합니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이란에서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가 이번엔 스페인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배우 페넬로페 크루즈, 하비에르 바르뎀과 함께 했다. 엔딩크레딧에서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같은 스페인 감독들의 작품에 참여했던 의상감독 소니아 그랜드, 음악감독 알베르또 이글레시아스, 촬영감독 호세 루이스 알카이네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아쉬가르 파라디는 좋은 이야기꾼이다. <누구나 아는 비밀>은 배경만 스페인으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그의 특징들이 그대로 묻어나는 작품이다. 겹겹이 쌓인 이야기를 한 겹씩 벗겨나가면서 진실에 도달한다. 하나의 질문을 넘으면 답이 나올 것 같지만, 다음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함부로 답을 내리지 않고 계속해서 질문한다. 그의 작품 끝에는 살면서 결국 던질 수밖에 없는 물음이 맺힌다. 좋은 영화는 좋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고, 아쉬가르 파라디는 늘 좋은 영화를 만들어 온 감독이다.
아르헨티나에 사는 라우라(페넬로페 크루즈)는 동생의 결혼식을 위해 오랜만에 고향 스페인에 돌아온다. 떠나기 전까지 평생을 산 동네이고, 워낙 작은 동네이기에 라우라가 왔다는 소식을 대부분 안다. 라우라를 반겨주는 이들 중에는 어릴 적 한집에서 함께 자란 파코(하비에르 바르뎀)가 있다. 결혼식 당일, 마을 전체의 축제인 듯 많은 이들이 즐거워한다. 좀처럼 열기가 식지 않는 가운데, 라우라는 딸이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된다.
<누구나 아는 비밀>의 줄거리는 낯설지 않다. 게다가 제목이 '누구나 아는 비밀'이다. 누구나 아는 비밀을 향해 차분히 전진하는 작품이다. 단순한 치정극으로 보기에는 곱씹을 거리가 많다. 아쉬가르 파라디의 영화는 등장하는 어떤 인물의 관점에서 사건을 보느냐에 따라 다른 작품이 되니까.
라우라의 딸이 사라지자 파코는 두 집단을 의심한다. 하나는 자신의 와인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또 하나는 아내가 일하는 학교의 학생들. 새벽에 전기가 끊겨서 발전기를 가지러 갈 때 도와주는 노동자들, 결혼식에서 드론으로 촬영을 도와준 학생들은 단숨에 용의자로 의심받는다. 파코의 아내가 일하는 학교는 전과가 있는 학생들을 위한 기관인데, 파코는 결혼식에 온 학생들의 전과 기록부터 살펴본다. 이들이 평소에 얼마나 성실하고 선했는지는 고려되지 않고, 이들이 사회에서 가진 위치가 평가의 최우선 요소가 된다.
'누구나 아는 비밀'의 대표적인 예가 무엇일지 생각해봤다. 그건 어쩌면 계급이 아닐까. 세상 모든 이들이 평등하자고 말하지만 암암리에 여전히 존재하는 계급 말이다. 마치 파코가 노동자와 전과가 있는 학생들을 의심했듯, 다들 모른 척하는 계급이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자신의 계급을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일은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한다. 과연 나는 이러한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쉬가르 파라디는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