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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May 10. 2019

'나'로부터 자유로운 글이 가능할까?

브런치 무비 패스 영화 <논-픽션>


종이책과 E북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신작 <논-픽션>의 주요 인물들은 출판 관련 일을 한다. 그들의 주요 화두 중 하나는 종이책과 E북의 경쟁이다. 종이책은 가장 오래된 매체 중 하나이고, E북은 빠르게 성장 중이다. 종이책의 매력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E북은 편리함과 저렴함으로 점점 많은 독자를 모으고 있다. 게다가 종이책 보다 디지털 기기와 친한 콘텐츠 소비자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종이책의 미래를 무조건 낙관하기도 힘들다. 종이책이 사라지는 게 불가능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엔,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 


편집자, 작가, 배우 등 콘텐츠를 업으로 삼는 이들이 토론한다. 종이책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 논쟁은 결국 신의 삶으로 연결된다. 사람의 환경은 계속해서 바뀌고, 그 안에서 나는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여기서의 '변화'에는 관계의 변화도 있다. <논-픽션> 속 인물들 대부분은 배우자가 있지만 불륜을 저지르고 있고, 부부관계와 불륜관계 모두 변화를 겪는다.



픽션과 논픽션


영화의 두 번째 화두는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다. 자신의 과거 연인과의 추억을 픽션으로 풀어낸 작가는 주변 이들과 독자로부터 비판받는다. 작가가 아무리 픽션이라고 해명해도, 특히 그의 실생활을 아는 이들은 그를 비판한다. 독자가 보기에도 실제 모델이 떠오를 정도인데, 책의 모델인 된 사람이 느낄 불쾌함이란 상상 이상일 거고. 발행되는 순간 사랑스럽다고 느꼈던 추억은 팔리기 위한 콘텐츠로 바뀐다. 둘만의 기억이 활자 위에서 만인을 위한 콘텐츠가 되고 더 이상의 낭만은 없다. 


종이책과 E북에 대한 이야기는 산업에 대한 이야기라면, 픽션과 논픽션에 대한 이야기는 창작하는 이들에게는 늘 품고 있을 수 박에 없는 화두다. 작가와 작품이 완전히 분리되는 건 가능할까. 작가가 아무리 부정해도 독자가 그렇게 느낀다면, 작품으로만 말해야 하는 작가는 과연 자신을 방어할 수 있을까.



작가와 작품의 분리


작년에 읽은 책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이기호 작가의 소설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다. 이기호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책 마지막에 적힌 작가의 말이 마음에 깊게 들어왔다. 소설집에 수록된 모든 단편소설은 제목에 특정인의 이름을 사용한다. 이기호 작가 자신으로 보이는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기호 작가는 자신이 작품과 완전히 독립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결국 분리가 힘들 거라고 적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기호 작가가 작가의 말을 정확히 어떻게 마무리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나 혼자 저렇게 결론을 내고 싶어서 저렇게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펼쳐봤는데 나랑 다른 생각이면 섭섭할 것 같으니 내용 확인은 안 해보겠다.



진짜 마음


난 E북을 사용할 생각이 없다. 아날로그로 읽는 책의 매력이 좋으니까. 책에 대한 소유욕이 많은 내게, 실물로 보이는 책은 그 자체로 큰 만족감을 주니까. 존재 자체가 행복이다. 읽지 않아도, 그저 책장 어딘가에 있으면 내 것이 된 것만 같은 기분. 


그러나 책장이 무너질 만큼 책이 쌓이고, 독서량은 그만큼 따라가지 못하는 요즘은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다. 독서를 주로 지하철에서 하는데, 특히나 두꺼운 몇 백 페이지짜리 책을 읽어야 할 일이 있으면 팔목도 시큰하다. 


어쩌면 E북이 더 편할 걸 뻔히 아는데, 그동안 모은 종이책이 아깝고 내 생활양식을 바꾸는 게 두려워서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작은 변화들도 다 두려우니까. 



진짜 마음 2


학교에서 창작 수업을 들을 때면, 내 작품에 대한 평을 요약해보자면 '괴랄하다'였다. 당연히도 칭찬보단 욕먹기 바빴다. 작품에 대한 평은 어느새 작가에 대한 평으로 바뀐다. 네가 이상해서 이상한 거 쓰는 거 아니냐. 그럴 때면 서러웠다. 예쁘게 쓴다고 예뻐해 줄 거도 아니면서!


<논-픽션>이 걸작인지에 대한 고민은 뒷전이 된다. 내가 요즘 하는 고민에 파동을 일으켰으니, 좋은 영화일지는 미지수여도 내게 맞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나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내가 아무리 아닌 척 이야기해도 결국 모든 이야기는 나의 영향력 안에 있을 거다. 난 앞으로도 이상한 이야기를 많이 쓸 텐데, 그때마다 미친 사람 소리를 들어야 하나. 


그냥 이상한 사람 할 테니, 이상한 사람이 쓴 이상한 글을 계속 읽어주세요. 그게 좀 더 내게 필요한 선언 같다. E북이 뜨고, 픽션에 대한 어떤 논쟁이 있어도 결국 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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