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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Apr 11. 2019

사랑이 없으면 죽어요, 이 말은 비유가 아닙니다.

브런치 무비 패스 영화 <러브리스>


러시아가 아니어도 세상은 춥다


'리바이어던' 이후로 오랜만에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작품을 봤다. 두 작품의 공통점이라면, 정적인 분위기의 작품임에도 내내 긴장하게 된다는 거다.


'러브리스'는 한없이 차갑고 건조하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눈으로 덮인 러시아를 보여준다. '러시아'라는 말만 들어도 추위를 느끼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러닝타임이 지날수록 관객이 느끼는 스산함의 출처는 러시아의 날씨가 아니라 '러브리스'의 연출 때문임을 느낀다.


'러브리스'에는 온기가 없다.



온기가 없는 영화


영화는 이혼을 앞둔 부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두 사람의 하나뿐인 아들은 그 어떤 사랑도 받지 못하고, 아들은 부모가 자신을 맡기 싫어서 서로에게 떠미는 상황을 몰래 듣고 눈물을 흘린다. 부부는 각각 외도 중이고, 서로의 외도 대상에게 집중할 동안 아들은 소외된다. 그리고 어느 날 아들이 사라진다.


'러브리스'는 제목에 충실한 작품이다. 작품 안에서 그 어떤 사랑과 온기를 느낄 수 없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집요하게 육체에 집중한다. 외도 중인 부부는 각각의 외도 대상과 섹스를 한다. 카메라는 이들의 벗은 몸을, 섹스 중인 몸을 보여준다. 서로에게 뜨겁게 달아오른 몸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몸에서는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 후반부에 부부는 아들로 유추되는 아이의 시체를 보기 위해 영안실로 간다. 카메라는 시체를 보여준다. 훼손이 심하고 썩기 시작한 시체. 부부의 말에 따르면 이 시체는 자신의 아들이 아닌 다른 아이다. 영화는 끝까지 아들의 행방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 계속해서 뭉뚱그려서 말한다. 아들의 실종에 대해 조사하는 경찰과 수색대에게 아들의 취미 등에 대해 뭉뚱그려 말했던 부모의 태도처럼.



사랑이 없으면 죽는다


앞에서 언급한 섹스와 시체는 비슷한 온기를 가진다. 차갑게 식어있고, 썩어있다. 사랑받지 못한 몸은 썩어서 시체가 되고, 사랑 없는 섹스는 금세 온기를 잃는다. 아이의 엄마가 외도 대상과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을 동안, 뒷자리에 앉은 여성들은 '사랑과 셀카를 위해 건배'라고 말한 뒤에 셀카를 찍는다. 사랑은 휘발하지만 셀카는 남는다. 셀카를 시발점으로 사랑이 시작되기도 하지만, 영원히 남을 사진과 달리 사랑은 금세 날아간다.


영화 중간과 마지막에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나온다. 각각 종말론과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대해 말한다. '리버이어던'과 마찬가지로 '러브리스'는 러시아의 상황에 대한 우화로도 볼 수 있다. 모든 것이 죽어가는, 사랑이 없는 국가에 대한 이야기. 그러나 굳이 정치적인 의미부여는 하지 않기로 한다. 제목대로 '사랑'에 대한 영화로 느끼기로 한다.



영화가 끝날 때쯤, 카메라는 영화의 초반처럼 러시아의 풍경을 보여준다. 러시아는 여전히 눈이 덮여있고 차가워 보인다. 아이가 사라졌다는 걸 알기에 더욱 춥게 느껴진다. 아니, 사랑이 없기에 춥다.


아이의 과거에 대한 전사가 딱히 나오지 않아도 관객들은 부부의 행동을 보며 단숨에 느낀다. 저 아이의 몸에는 온기가 없고, 사랑이 없구나. 부부가 외도하며 섹스를 할 동안 아이는 죽어간다. 사랑을 다른 대상에게 쏟는 동안, 사랑 없이 자라날 수 없는 나약한 소년은 죽어간다.


라스 폰 트리에의 '안티크라이스트'의 첫 장면이 떠오른다. 부부의 과격한 섹스가 이어질 동안 창문에서 떨어져 죽은 그들의 아들. 섹스는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 탄생의 시작점일 수 있지만, 감독은 지독하게도 그 옆에 바로 죽음을 배치한다. '러브리스'는 러닝타임 내내 이러한 방식을 유지한다. 관객들은 섹스를 목격하는 동안 소외된 아들에게 갔어야 할 사랑을 떠올린다.



사랑이 없으면 죽는다. 이 말은 비유가 아니다. 영화가 아이의 행방 대신 부부의 외도에 집중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들이 사랑을 다른 대상에게 쏟는 동안 아이는 사라져 간다. 사랑받지 못하면 사라져 간다. 사랑으로 성장하는 아이에게 사랑이 가지 못했으므로 아이는 사라진다.


모른 척하지 말자. 사랑이 없어서 죽어가는 것들을 우린 너무나도 많이 봐왔으니까. 국가의 문제에서도, 가정의 문제에서도, 수많은 문제의 해결은 아주 단순하게 사랑일 때가 많다. 사랑은 찰나이고 대부분의 시간은 사랑을 쫓느라 사랑이 없는, 사랑이 없는 시대에 대한 지독한 우화, 그래서 제목은 '러브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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