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무비 패스 <바이스>
소재에게 지지 않는 연출
<바이스>를 기대한 이유는 아담 맥케이 감독의 전작 <빅쇼트>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이들도 극영화로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었고, 이는 <빅쇼트>뿐만 아니라 <바이스>에도 해당한다. 다큐멘터리인지 극영화인지 헷갈리는 구성(긍정적인 의미로), 예측불허의 편집과 음악은 매혹적이다.
수많은 장점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재미라면 배우들의 앙상블일 거다. <빅쇼트>에 등장했던 크리스천 베일, 스티븐 카렐이 <바이스>에도 등장하고, 에이미 아담스, 샘 록웰도 등장한다. <바이스>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분장상을 받았는데, 탁월한 분장과 연기가 더해져서 배우들과 실존인물의 싱크로율이 높다.
<빅쇼트>는 부동산 사태를 다뤘고, <바이스>는 딕 체니의 악행을 다뤘다. 소재 자체가 강해서 연출의 강약 조절을 잘못하면 설득력이 없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아담 맥케이는 해냈다. 소재에게 지지 않고 흥미로운 연출에 성공했다.
흐름을 읽는 눈, 영화 혹은 정치에서
<바이스>는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작품은 아니다. 인물에 대해 미쳐 설명 안 된 부분이 있고,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실제 사연을 알았을 때 완성되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영화의 큰 줄기는 납득 가능하다. 딕 체니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러닝타임 내내 확연하게 느낄 수 있으니까.
<바이스>는 딕 체니의 삶에서 어떤 부분을 강조할지, 그 흐름을 명확히 정하고 뚝심 있게 밀고 나간 작품이다. 딕 체니는 세상의 흐름을 읽는데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 선택이 도덕적이지 못하고 이기적이어서 <바이스>가 탄생했다.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과 연결되는 부분도 있는데, 이라크전과 관련된 대목만 봐도 그의 선택으로 인해 죽은 이들의 숫자는 어마어마하다.
<바이스>의 허무함
<바이스>의 가장 허무한 점은, 딕 체니의 악행에 대해 러닝타임 내내 보고 나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은 딕 체니가 무탈하게 잘 살 거라는 사실이다. 자신과 관련된 기록을 모두 지웠고, 자신이 뒤를 봐준 회사의 주식은 올랐다. 그의 악행이 벌 받을 일은 없고, 그의 자산은 증식할 일만 남았다.
정치인에 대한 응징은 투표뿐이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투표를 하는 것. 그러나 이 유일한 방법도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고, 영화의 쿠키영상은 말한다. <바이스>가 흥미로웠어도, 영화 상영이 끝나면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고 별 관심 없이 살 거라고. 영화의 시작을 다시 생각해보자. 백악관에서 부통령이 무슨 결정을 해도 사람들은 별 관심 없을 거라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처음을.
그는 아주 잘 살 거다
딕 체니는 앞으로도 잘 살 거다. 악인이 더 잘 사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정의로운 이들이 피해를 본다고 말한다. 그렇게 악인이 되기를 자처한다. 딕 체니도 그런 사회가 만들어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나마 인간미 있게 보였던 딸과 관련된 대목조차도 영화 후반부에서 결국 무너진다.
이렇게까지 이기적이어서 남는 게 뭘까? 아, 엄청나게 많이 남는다. 부와 권력이 남는다. 시대를 보는 눈까지 갖춘, 이기적인 이 남자는 결국 모든 걸 가진다. <바이스>를 보고 나서 딕 체니에 대한 비판보다 그의 삶을 부러워하는 이들이 있을 것만 같아서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