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무비 패스 <우상>
<우상>을 보고 떠올린 몇 편의 한국영화들
나는 영화평론가도 아니고 평범한 관객이다. 평소에 정말 듣고 싶지 않은 말이 있는데, '한국영화는 볼 게 없다'는 말이다. 자막 없이 한국어로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몇몇 영화의 스크린 독점으로 인해 좋은 독립영화가 배급에 애를 먹고, 연출자보다 투자자들의 선호도에 따라 영화가 만들어짐에 따라 개성 없이 안전한 선택만 하는 영화가 많아지면서, 관객의 선택지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좋은 한국영화들이 탄생하고 있고, 한 명의 관객으로서 늘 한국영화를 지지하고 있다.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영화 <우상>을 봤다. 이수진 감독의 <한공주>는 울림이 있는 작품이었고, 그의 차기작인 만큼 기대와 함께 관람했다. 결론적으로 여러모로 만족스럽지 못한 작품이었다. 영화를 곱씹으면서 얼마 전에 본 <사바하>와 몇 년 전에 본 <여교사>가 떠올랐다. 세 작품을 묶어서 생각하게 된 이유는 몇 가지 공통점 때문이다. 한국영화에 대한 기대를 올려줄 작품으로 데뷔했지만, 차기작이 실망스러웠던 감독들이라는 것.
어떤 소포모어 징크스
<우상>, <사바하>, <여교사>는 각 감독들(이수진, 장재현, 김태용)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세 감독 모두 단편영화로 이름을 알린 뒤에 장편영화 데뷔작으로 평단과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우상>의 이수진 감독은 단편 <적의 사과>으로 이름을 알린 뒤 장편 데뷔작 <한공주>를 연출했다. 마찬가지로 <사바하>의 장재현 감독은 단편 <12번째 보조 사제>로 주목받은 뒤, 자신의 단편을 원작으로 삼은 <검은 사제들>로 장편영화 데뷔를 했다. <여교사>의 김태용 감독은 단편 <얼어붙은 땅>, <복무태만>을 국내외 영화제에 상영한 뒤에 <거인>으로 첫 장편영화를 찍었다.
좋은 단편영화로 제작자들의 주목을 받고 장편영화 데뷔를 하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데뷔 경로인데, 그럼에도 이 셋을 함께 언급하는 이유는 이들이 장편 데뷔작에서 보여준 개성 때문이다. <한공주>는 성폭행 피해자에게 사려 깊은 응원을 보내는 작품이고, <검은 사제들>은 관객들에게 신선하게 다가 온 한국형 오컬트 영화이고, <거인>은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소년의 삶을 잔인할 만큼 현실적으로 그렸다.
데뷔작에서 좋은 인상을 줬으므로 이들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상태로 관객들은 이들의 차기작을 만났다. 그리고 이들의 차기작은 하나 같이 전작에서 보여준 감독 특유의 매력을 아주 조금만 보여준 채 뻔한 영화가 됐다. 이수진 감독의 <우상>은 <한공주>에서 보여준 절제의 미덕이 사라졌고, 장재현 감독의 <사바하>는 <검은 사제들>에 비하면 오컬트보단 많이 봐온 스릴러에 가깝고, 김태용 감독의 <여교사>는 <거인>에서 보여준 섬세한 감정선이 부재한 치정극이다.
제작비는 상승했으나 개성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예를 들어 이수진 감독의 <한공주>의 제작비는 2억이고, 차기작 <우상>의 제작비는 100억으로 50배다. 많은 자본이 들어간 만큼 투자자의 입김으로 인해 전작에서 보여준 개성이 사라진 걸까.
우상이 되지 못한 우상
<한공주>는 절제를 미덕으로 삼은 작품이라면, <우상>은 과잉의 지점이 많다. 영화의 전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면이 아님에도, 불편한 자극 외에는 그 어떤 감흥도 못 주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머리 잘리 시체 사진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어떤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까.
분명 좋은 지점들이 존재하는 작품이다. 다만 장점들은 조각조각 흩어져 있어서, 그걸 연결해줄 개연성과 디테일이 부족하다. 대사 전달이 잘 안 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 중 하나다. 대사가 잘 안 들려서 관람이 힘들다는 시사회 후기들을 꽤 본 상태에서 가서 내내 집중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대사들이 많았다. 제작진도 모니터링을 했을 텐데 이 부분은 여러모로 아쉽다.
<우상>을 위한 변론으로 이 본문을 가득 채울 수도 있다. 영화 초반에 치킨을 먹는 국회의원의 클로즈업과 양계장에서 닭을 손질하는 노동자를 연결시키는 걸 비롯해서 계급의 논리로 볼 수 있는 장면들을 연결시킬 수도 있다. 감독이 의도적으로 구명회(한석규)를 제외한 인물들의 소리가 잘 안 들리도록 음향 설정을 해서 '말'을 믿지 않는 구명회의 태도를 관객에게 체험하게 만든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영화를 위한 그 어떤 방어도 해주고 싶지 않다는 거다. 같이 영화를 보러 간 이에게, 무적에 가까운 전투력을 가진 최련화(천우희)를 주인공으로 히어로물을 만드는 게 이 영화 예산에 어울릴 것 같다는 농담을 했다.
<한공주>의 선택을 지지했으나, <우상>의 선택을 지지할 수 없다. <우상>이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가 투자자의 입김 때문인지, 영화계를 유령처럼 떠도는 소포모어 징크스 때문인지, 감독의 과욕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수진 감독이 단편 때부터 지금까지 공통적으로 가진 관심이 계급 문제에 있다는 건 알 수 있다. 부디 그의 차기작은 그 어떤 계급에 속한 이들도 지지할 수 있는 영화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