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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Jan 13. 2020

문학 전공자가 읽은, 이야기로서의 재테크 책

박혜정 저 <빅스텝>을 읽고

*본 포스팅은 포레스트북스로부터 소정의 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주관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금융에 발 디딘 문학 전공자


내 전공은 문학이다. 정확히 말하면 문예창작으로, 소설과 시 등 문학작품을 읽고 썼다.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기에 내게 이런 전공 선택은 당연한 일로 느껴진다. 고등학교 때 문학반 동아리 활동을 하고, 대학에서도 문학을 전공했기에 내 주변에는 늘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았다. 문학을 누구나 좋아할 거라는 제법 편협한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에도 시나 소설 같은 걸 읽는 사람이 있어?"


교양 수업 시간에 팀플을 하며 가까워진 경제학과 형은 어떤 악의도 없이 이런 질문을 했다. 문학에 뜻을 품은 내 입장에서는 그 질문이 씁쓸했다. 그러나 나도 경제학에 딱히 관심이 없었으므로 반론하지 않았다. 그저 각자의 세계에 살 뿐이라고 여겼다. 팀플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팀플에서 만난 인연이 대부분 그렇듯 그 형과는 이후로 딱히 왕래가 없었다. 다만 취업을 준비할 때쯤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문학을 전공했고, 그 형은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서로 같은 분야에서 마주치면 신기할 것 같다고.


그리고 나는 금융회사에서 일하게 됐다.


'금융'이라고 하면 굉장히 거창해 보이지만 내가 다니는 회사는 이제 막 자리 잡기 시작한 스타트업이었다. 지금은 'P2P 금융'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핀테크 분야의 스타트업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4학년을 앞두고 기자 인턴을 하고 있었는데, 대외활동을 하며 올린 스피치 영상을 본 스타트업 대표로부터 SNS 메시지를 받았다. 취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도 못하고 있던 와중에, 먼저 제안을 준 것도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의 나는 은행도 잘 안 갔기에 핀테크는커녕 금융 쪽에서 일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교과서 수록작 외에 처음으로 읽은 단편소설이 김영하의 '보물선'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금융업 종사자들이 등장한다



내게는 너무 먼 재테크


남들은 잘 읽지도 않는 시나 소설 대신 경제, 경영 관련 서적을 읽었다면 좀 더 많은 도움이 됐을까. 이런 상상조차 사치일 만큼, 적응을 위해서는 뛰어다녀야 했다. 금융 관련 컨퍼런스를 쫓아다니면서 녹취록을 만들어서 계속 읽었다. 이런 에피소드 뒤에는 성공적으로 회사에 적응하는 이야기가 나와야겠지만, 퇴사할 때까지 난 내가 금융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아니, 금융을 정복하는 일이 가능이나 할까.


투자상품을 팔기 위해서는 투자상품에 대한 공부가 필요했다. 공부하면서 느낀 내 나름의 결론은, 재테크는 결국 시간을 써서 돈을 버는 작업이라는 거다. 대표적인 재테크 목표인, 건물을 사서 월세를 받는 등의 불로소득을 만들기 위해서는 목돈도 만들어야 하고 관련된 지식도 쌓아야 하는 등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불로소득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노동하듯 시간을 쓰는 작업이 필요하다.


"대출은 시간을 사는 일이죠"


같이 일하는 개발자는 대출에 대해 이와 같이 정의했다. 유리한 조건의 대출을 할 수 있는 이들은 결국 시간을 버는 셈이다. 대출받은 돈을 투자해서 소득을 만들 수도 있다. 학자금 대출 이자에도 허덕이고 있는 내겐 다른 대출은 꿈도 못 꾸는 일이었기에, 큰돈을 대출해서 투자하는 등의 재테크는 아주 먼 미래로 느껴졌다.


제대로 알고 읽은 첫 번째 재테크 책 <빅스텝>



제대로 알고 읽은 첫 번째 재테크 책


최근까지 에세이 작업을 하느라 주로 서정적인 글을 써왔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어려운 금융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쓴 이유는 최근에 읽은 책 때문이다. <빅스텝>이라는 재테크 책을 읽었고, 이는 내가 태어나서 두 번째로 읽는 재테크 책이다. 첫 번째는 06년도에 교복을 입은 채로 봤던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다. 당시에는 사회탐구로 경제를 선택하지도 않았기에(선택했다고 많이 달라졌을까 싶지만) 읽으면서 이해가 안 됐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2020년을 맞이해서 재테크 책을 읽었다. 주워들은 게 있어서인지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제대로 알아들으면서 읽은 첫 재테크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테크에 대한 정보는 넘친다. 재테크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의 정보가 넘치는 시대다. 그 안에 양질의 정보가 많은지 묻는다면, 일단 양질의 정보를 가려볼 수 있는 안목이 있는지부터 물을 것 같다. 정보가 넘치지만 정작 진짜 전문가란 무엇인지, 그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관련 분야의 책을 500권 읽는다고, 그 분야의 경력을 10년 쌓는다고 무조건 전문가라고 할 수 없는 시대다. 요약과 큐레이션이 발달해서 전문가인 척하기도 쉽다. 아니, 누구나 전문가가 되어서 '진짜 전문가'의 기준점이 높아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성공담은 늘 결과론적이고, 노력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한다는 말보다 운칠기삼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전에 회의적인 소리를 잔뜩 적었다. 어쩌면 이런 내 성향 때문에, 자신이 전문가라고 말하는 이들의 성공담 혹은 방법론에 대한 책을 잘 읽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빅스텝>은 끝까지 읽을 수 있었고, 그 이유는 책에 나온 어떤 문장들 때문이다.


"왜 스스로에게 묻지 않고 제게 묻나요? 언제까지 삶의 중요한 선택과 삶에 대한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며 살아갈 것인가요?" - <빅스텝> 100p


저자는 전문가라고 말하는 이들의 의견에 크게 흔들리지 말라고 말한다. 저자의 이야기를 들은 이가 '그럼 당신 말도 믿지 말아야겠네요?'라고 물으면 '네, 저도 믿지 마세요'라고 답할 정도로 확고하다. 결국 선택은 자신이 하고 책임도 자신이 져야 하는 거니까. 


내겐 '이야기로서의 재테크 책'으로 기억될 <빅스텝>


이야기로서의 재테크 책


<빅스텝>에서 인상 깊었던 포인트는 오히려 재테크 관련 지식보다도 '이야기'였다. 이렇게 읽은 걸 알면 저자가 무슨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 독서습관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독서에서도 편식이 심해서 읽는 책의 팔 할은 문학이고, 거의 대부분이 한국 현대소설이다. 인문, 사회과학 등 다른 분야의 책도 읽지만, 이야기 전개에 집중하는 게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어떤 책이든 이야기를 중심으로 읽는다.


<빅스텝>의 저자는 은행원 출신이다.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니 저자도 '주인공'이라고 표기해야 할 것 같다. 은행원이기에 투자와 대출을 비롯한 금융과 관련된 지식을 쌓을 수 있었고, 다양한 고객을 만날 수 있었다. 이런 배경을 거쳐서 저자가 주로 수익을 창출한 부분은 '경매'다. 경매 관련 프로세스와 저자의 경험담이 적혀있는데, 재테크 수단을 떠나서 아예 낯선 분야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벌더라도 경매로 재테크를 해서 버는 게 아니라, 경매를 에세이나 소설의 재료로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걸 보면 역시 나는 돈 벌기는 글렀다. 


저자가 은행원 출신이라는 것과 경매를 선호한다는 게 흥미로웠던 이유는 재테크 측면이 아니라, 저자의 성장배경과 닿아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부모님이 산 건물이 IMF 때 넘어가면서 집안 전체가 고생을 한다. 저자는 은행원이 된 이후로 은행에 오는 고객들을 보면서 그들의 사정을 생각하고, 때로는 자신의 과거를 투영하기도 한다. 경매의 경우에도 그렇다. 경매를 하면서도 과거에 넘어간 집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이 말하는 재테크 방법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함부로 평할 지식이 없다. 당장 실행할 여건도 안 된다. 이 글을 쓰기 며칠 전에 올린 글의 제목이 '30만 원짜리 에디터'다. 제목부터 가난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난 이 책의 실전 재테크 방법보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좀 더 눈에 들어온다. 저자는 어떤 삶을 살고 지금 이렇게 지내는 걸까. 누군가의 삶을 관찰하는 일은 흥미롭고, 직접적으로 목격 가능한 삶의 수는 한정되어 있기에 책을 본다. 고맙게도 책의 톤 자체가 재테크 지식의 나열이라기보다 이야기 형식이라 에세이처럼 읽을 수 있었다.


며칠 전에 이런 글을 올렸는데, 재테크가 가능할까.



요행은 없다


하지만 운이 너무 좋았던 극히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고 재테크에 성공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기대하는 특별한 노하우 같은 것은 없다.  - <빅스텝> 121p


첫 회사에서 금융상품을 공부할 때나, 오랜만에 재테크 책을 읽는 지금이나 답은 같다. 요행은 없다. 재테크는 결국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아니, 재테크가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삶에서 요행은 없다. 그저 묵묵하게 나아갈 뿐이다.


저자는 재테크의 보폭을 네 종류로 분류했다. 미래에 대한 준비는커녕 수입을 탕진하기 바쁜 '제자리걸음', 노력에 비해 돈이 안 모이는 '종종걸음', 꽤 앞서 가지만 페이스 조절 등의 이슈로 피니시 라인을 통과 못하는 '달리기', 리스크 관리부터 은행과의 금리 협상까지 빠르고 안정적인 보폭으로 목적을 향해 가는 '빅스텝'. 


이러한 분류법은 재테크가 아니어도, 삶의 다른 부분에서도 적용 가능하다. 재테크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빅스텝을 밟아본 이들이라면 재테크를 시작했을 때 빅스텝을 밟을 확률이 높다. 어떤 분야에서든 성공의 경험이 있는 게 중요하다는 건 이러한 맥락이 아닐까. 그러므로 당장 재테크 분야에서 무엇인가 실행하기 힘들다면, 무슨 분야에서든 일단 발을 내딛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빅스텝을 위한 시작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요행은 없다. 그러므로 빅스텝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당장 한 발 내딛는 일이다. 재테크의 빅스텝을 위해 지금 내가 할 일은 뭐가 있을까. <빅스텝>의 사이사이에는 책의 내용을 적용해볼 수 있는 질문과 함께, 독자가 답을 적을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당신은 왜 부자가 되고 싶은가요? - <빅스텝> 92p


부자가 되길 원하지 않는 이가 있을까. 당연해 보이는 질문이지만 2020년에 마주한 이 질문은 묘하게 느껴졌다. 내가 생각하는 '부자'란 무엇이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지극히 속물적으로 보이는 이 질문은, 답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철학적인 물음이 됐다. 자포자기의 심정인 연말이 아니라 최대한 큰 희망을 품고 싶은 새해라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새해에는 경매를 공부할 거다. 경매에 대해 글로 풀어쓰면 흥미로울 것 같으니까. <빅스텝>이 어떤 책인지 묻는다면 책에 나온 재테크 방법보다 저자가 살아온 삶에 대해 말해줄 거다. 새해에는 좀 더 현실적이고 싶어서 읽은 책인데 또다시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 이야기는 돈이 될까, 이야기도 재테크 수단이 될까. 훗날 내가 재테크에 대한 글을 쓸 날이 오면, 이야기는 돈이 된다고 말하고 싶다. 


이런 다짐이 빅스텝을 위한 첫걸음이 되기를. 재테크를 위한 보폭이 아니더라도, 이왕이면 삶 전체에 쓸 수 있는 큰 보폭으로 다음 걸음도 나아갈 수 있기를.



<빅스텝> 북 트레일러


*본 포스팅은 포레스트북스로부터 소정의 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주관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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