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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Apr 30. 2018

불꽃놀이와 장례식 사이의 멋진 하루

심야영화로 '멋진 하루'를 본 날

여의도에서 처음으로 불꽃놀이를 봤다


스물한 살 때 처음으로 여의도에서 불꽃놀이를 봤다. 나이의 앞자리가 2로 바뀌고 어른 흉내를 내기 바쁜 때였다.  여의나루역에 도착해서 먼저 도착한 선배 둘을 찾았다. 여기서의 둘은 허당 기질이 다분하지만 선한 남자선배와 강한 추진력과 리더십으로 동아리일을 잘 챙기던 여자선배를 말한다. 그 많은 인파 사이에서 생명줄 찾듯 그들을 찾으니, 돗자리를 깔고 자리를 잡아둔 둘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미아가 될까봐 걱정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올 때마다 여전히 나는 십대 소년에 가깝다고 느꼈다.


돗자리 위에서 이것저것 먹었는데 무엇을 먹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다만 그 자리는 명당이었다. 온갖 종류의 불꽃이 선명하게 잘 보였다. 중학교 때 강원도로 가족여행 가서 터뜨렸던 불꽃보다 훨씬 컸다. 좋아하는 이들과 같은 것을 보고 비슷한 감흥을 공유하는 즐거움은 눈앞에 터지는 불꽃만큼 컸다. 함께 불꽃을 보며 터뜨리는 감탄이 친밀의 신호 같아서 좀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불꽃놀이가 끝나고 모르는 이들과의 이인삼각


불꽃놀이가 끝나고 그렇게 많은 인파와 걷게 될 줄은 몰랐다. 이인삼각 하듯 많은 이들과 붙어서 걸었다. 영화 '부산행' 속 좀비들을 보고 제일 먼저 떠올린 장면이 여의도 불꽃놀이가 끝난 뒤 모습일 만큼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려있었다. 일행들과 두세 정거장 정도를 걷고 나서야 좀 여유가 생겼다. 붙어서 걷느라 유대감이 생겼으면 좋겠지만, 불쾌한 열기가 몸을 감싸고 있어서 중간에 불어오는 선선함 바람이 아니었다면 다들 좀비처럼 괴상한 소리를 냈을지도 모른다. 


모르는 이들과 강제 결속된 이인삼각을 마치고 여유롭게 걷기 시작하니 대중교통은 이미 끊긴 새벽이었다. 택시를 타고 이전에 함께 갔던 술집을 기억해내고 신촌으로 갔다. 어두운 가게 안에 핀라이트 같은 불빛이 각각의 테이블을 비추는 곳이다. 망망대해 같은 가게에서 자신의 테이블을 등대 삼아서 찾아가다 보면 어느새 같은 테이블의 이들과 친밀해지는 기분이 드는 곳이라, 술보다 분위기에 먼저 취할 수 있었다. 



멋진 하루의 마무리는 영화 '멋진 하루'


불꽃놀이의 여운 때문인지 다들 좀처럼 취하지 않았다. 몇 시간 마셨음에도 아직 첫차까지 시간이 꽤 남았고, 술집도 곧 마감이라 우리는 다음 행선지를 고르기로 했다. 여러 옵션 중 우리가 택한 건 심야영화다. 단숨에 극장으로 가서 여러 영화 중에 고른 건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다. 이미 졸린 상태라 신나는 영화를 고를까 하다가, 하정우와 전도연이 나온 포스터의 분위기가 오늘 하루와 잘 어울려서 보기로 했다. 우리의 멋진 하루의 마무리를 '멋진 하루'로 끝내고 싶기도 했고.


영화 앞부분 3분의 1 정도를 보고 기절했다가 이후로는 간헐적으로 장면 장면을 봤다. 여자가 전남친에게 빌려준 돈을 받으러 가고, 전남친은 돈을 갚으려고 주변 여자들에게 돈을 빌린다는 게 영화의 줄거리다. 잠들지 않고 봤다면 더 흥미로웠을 영화다. 


영화 후반부에 옥탑에서 파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비몽사몽 봐서 함께 함께 영화를 본 우리가 그 공간에 있었던 것만 같다. 시간이 지나서 물은 적이 있다. 우리 그때 같이 옥탑방에서 고기 구워 먹지 않았나?


영화 '멋진 하루' 포스터


멋진 하루 뒤로 우리는 멀어졌다


우리 셋은 그 이후로도 학교강의실이나 동아리방에서 마주쳤다. 엠티와 농활을 함께 가기도 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고 나는 학교를 그만뒀다. 수능을 다시 보고 새로운 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몇 년간 소원하게 지내다가 함께 동아리를 했던 동기로부터 연락이 왔다. 불꽃놀이를 함께 봤던 여자선배가 아프다는 게 연락의 주요 내용이었다. 오랜만에 얼굴 보는 데 병문안이라는 게 안타까웠다. 동아리사람들이 다 함께 갈 거라고 해서, 오랜만에 얼굴 볼 생각에 기대도 됐다. 뭘 입고 나갈지 고민하다가 디자인이 따로 없는 검은 옷이 무난하겠다 싶어서 남방, 바지, 가디건 모두 검은색으로 챙겨 입었다. 불꽃놀이 볼 때 선배가 잘 어울린다고 했던 가디건이다.



병문안 혹은 장례식


지하철역에서 동아리사람들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병문안이라 분위기는 무거웠다. 선배들 중에는 정장을 입은 사람도 있다. 근황을 모르기에 한 선배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 아픈 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오랜만에 만나는데 얼굴 보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내 말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이 제각각 일그러진다. 쟤 모르는 거야? 한 선배가 내 동기에게 눈치를 준다. 동기가 내게 와서 밀담하듯 말한다.


"우리 지금 장례식장 가는 거야"



장례식 말고 멋진 하루


누군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그 뒤에 죽음을 배치해 본 적 없다. 나아질 거고, 좋아질 거라는 회복을 배치하는 게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아픔 앞에서 내가 할 일은 긍정과 위로니까. 긍정과 위로를 품고 장례식을 가는 길은 꼭 경계선만 따라 걷는 느낌이다. 


도착한 장례식장은 우리가 함께 있던 동아리방보다 작다. 상주인 선배의 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린다. 우리 딸이 이제 다 나으면 영어 공부할 거라고 말한 게 마지막이었어. 아버지가 전해준 선배의 마지막 말이다. 선배가 마지막으로 꿈꾼 장면은 토익책 같은 거였을까.


육개장과 편육을 씹을 때마다 동아리방에서 함께 시켜먹었던 음식들이 떠올랐다. 오징어와 불고기가 섞인 섞어덮밥과 피자탕수육이 생각났다. 씹으면서도 병문안을 오려고 나왔는데 왜 장례식에 있어야 하는지 납득이 안 됐다. 손을 흔들면서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왜 절을 해야 하고, 같이 사진도 찍으려고 했는데 왜 영정사진을 봐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선배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는데, 선배가 아닌 이들의 목소리만 떠돈다. 선배와 함께 처음으로 한 일이 많다. 생애 첫 동아리였고, 여의도에서 본 불놀이도 심야영화도 처음이었다. 가까운 지인의 죽음도 처음이었다.


"마지막으로 병문안 갔을 때 기아처럼 야위어있었어"


옆에서 육개장을 먹는 선배가 말했다. 병명을 물어보려다가 말았다. 선배를 둘러싼 많은 단어들이 오간다. 내가 기억하는 선배와 다른 단어들이 등장한다. 나는 내가 본 것만 믿기로 한다.


나는 오늘 내가 듣고, 본 것을 기억하지 않을 거다. 추억하려고 납골당에 가지도 않을 거다. 우리의 마지막은 영화 '멋진 하루'를 봤던 그 날이다. 추억이 필요할 때 여의도에 가고, 불꽃놀이를 보고, 극장에 갈 거다. 



회상


'선배, 멋진 하루였죠?'


선배가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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