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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Jan 17. 2020

책을 만들었다, 내 손으로 뭐 하나라도 만들어보려고

에세이 <삶이 무너져요, 그런데 왜 아름답죠?>를 준비하며

나의 2019년은 아름답지 않았다. 하는 선택들마다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고, 어디에 기댈 구석도 없었다. 2019년 만의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사는 동안 아름답지 못한 기억이 훨씬 많았다. 애초에 '아름답다'는 표현은 아름답지 못한 것들이 가득한 세상이기에 성립하는 말이다. 


드라마 '연애시대'의 은호(손예진)는 열리지 않는 피클병을 던지며 오열한다. 이것저것 자신을 괴롭히는 세상에서 적어도 피클병의 뚜껑 정도는 내 마음대로 열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과 함께. 그 장면이 유난히 자주 떠오르는 한 해였다. 


2019년이 끝나기 직전, 12월 30일에 텀블벅 펀딩을 열었다. 지긋지긋한 한 해였지만, 부디 이거라도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이 펀딩이 은호의 열리지 않는 피클병이 될지, 회복의 순간이 될지는 알 수 없었다. 펀딩 이후로는 몇 분 단위로 계속 새로고침을 했다.


새해가 되었고 꽤 소원했던 이들에게도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예상보다 대화가 자연스럽게 흘러간 이들에게는 책 홍보를 했고, 그렇지 않은 이들과는 짧은 새해 메시지만 주고받고 다시 어색한 인연으로 돌아갔다. 


"책을 만들었어."


근황을 묻는 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책에 대한 것뿐이었다. 출판사에서 내는 것도 아니고, 혼자 독립출판으로 내는 작은 규모의 일이라서 멋진 근황이라는 생각도 안 들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고. 


내가 한 일의 가치를 스스로 낮출 때가 많다. 이런 식으로 낮추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어쩌면 내가 한 일을 말했을 때 무시당할까 봐, 상처 받을까 봐 시작도 전에 방어적으로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응원하지 않아도, 적어도 나는 내 편이 되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가 있다. 


"근데 결국 너는 그걸 해낸 거잖아."


스스로에게 가혹하게 굴어도 버틸 수 있는 건 결국 주변 사람들 덕분이다. 주변 지인부터 얼굴도 모르는 이들까지, 펀딩에 참여하거나 관심을 가져준 이들로부터 많은 응원을 받았다. 덕분에 2019년의 마지막과 2020년의 시작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아름다움의 이유는 내가 책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응원해주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걸 책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손에 잡히는 결과물이 있기를 바랐다. 뭐 하나라도 해낸 2019년이었으면 싶었으니까. 다른 생산적인 작업들 대신 책을 만드는 게 맞나 고민한 적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을 볼 때마다 위로받았다.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작업이었다. 


내가 손을 뻗었을 때, 누군가 손을 내민다는 걸 확인했다. 내가 쓰는 글보다 글을 읽고 반응해주는 이들의 말이 훨씬 더 많은 온기를 가졌다는 걸 느꼈다. 나는 그 온기를 잊지 못할 거다. 이번 책의 제목처럼, 삶이 무너지는 것 같아도 이런 아름다운 순간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다. 무너지는 않은 건 어딘가에서 응답해준 이들 덕분이다. 




*에세이 <삶이 무너져요, 그런데 왜 아름답죠?>는 현재 텀블벅에서 펀딩 중입니다.

*텀블벅 펀딩 : https://bit.ly/388C9W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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