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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Feb 28. 2020

불행한 이들은 저마다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게일 브레너 저 <삶이 괴롭냐고 심리학이 물었다>를 읽고

*본 포스팅은 포레스트북스로부터 소정의 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주관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관심은 많지만 사랑하는 법은 모르는


"나는 나한테 관심이 많아"


주변에 자주 하는 말이고, 실제로도 그렇다. 나는 나에게 관심이 많다. 다만 이 말 뒤에 붙여서 함께 하는 말이 있다.


"그런데 사랑하는 법은 모르겠어"


쓸데없이 덧붙이는 말이었으면 좋겠는데 사실이다. 나는 나에게 관심이 많지만, 나를 사랑하는 법을 아직 모르겠다. 타인과의 관계가 실패할 때마다 그런 생각은 확신에 가깝게 변한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데도 서툰 사람이 어떻게 타인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겠는가. 



타인의, 타인에 의한, 타인을 위한 


내가 나에게 관심이 많은 만큼 타인에게도 관심이 많다. 아니, 사실 스스로의 자존감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크게 작용하는 건 타인이다. 타인에게 사랑받을 때는 충만함을 느끼고, 타인에게 상처 받을 때는 내 세계의 한 축이 무너진 것만 같다. 타인의 반응을 기준으로 스스로를 평가한다. 늘 타인의 작은 말에도 취약한 상태다. 


"타인의 말에 너무 흔들리지 마"


상식적인 말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나는 스스로에게 관심이 많은데, 내가 나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서 늘 타인을 필요로 한다. '나'라는 세계는 타인의, 타인에 의한, 타인을 위한 세계인 것만 같다. '인정투쟁'이 품은 심오한 뜻은 모르지만,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난 늘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투쟁한다. 타인의 인정만이 내 자존감의 답이라는 믿음을 가진 채.



심리학 책을 읽으면 달라질까


심리학 관련한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일단 사람의 심리가 어떤 체계로 움직인다고 정리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스스로가 특별하다고 믿다가, 특별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삶을 마감한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평범하다는 걸 알지만, 특별한 지점이 있다고 믿으려고 애쓴다. 심리학 같은 학문 안에서 큰 카테고리 속에 일반화될 때는 썩 유쾌하지 않다. 살면서 무수히 많은 지표 속에서 나는 늘 뻔한 존재니까.


여기까지 쓴 글만 봐도 느끼겠지만, 나는 염세적인 편이다. 부정적, 염세적, 시니컬, 이런 류의 단어로 스스로를 설명하고, 주변 이들로부터도 이런 평을 받는다. 타인을 볼 때는 어떻게든 장점을 찾아서 칭찬을 하고 예쁜 말을 하려고 하지만 스스로에게는 가혹하다. 타인에게 있는 힘껏 잘하려고 하다가도, 상대에게서 부정적인 반응이 오면 위축된다. 악순환이자 무간지옥이다.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심리학 책을 읽으면 좀 달라질까?



부정적인 사고패턴에서 벗어나는 방법


게일 브레너가 쓴 <삶이 괴롭냐고 심리학이 물었다>의 부제는 '부정적인 사고패턴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나 같은 사람은 뜨끔하게 되는 제목이다. 그런데 '부정적인 사고패턴'을 가진 사람은 애초에 이런 제목만 보고도 온갖 의심으로 투덜대지 않을까. 이 책을 읽는다고 설마 그런 사고패턴에서 단숨에 벗어나겠어. 그럼에도 마음에 한 줌의 희망이 있다. 언젠가는 이런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속는 셈 치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으면 해당 페이지를 접어두는데, 처음으로 접어둔 페이지에는 아래와 같은 말이 나온다.


사실 고통스럽다는 느낌 자체가 일종의 신호입니다. 고통은 자신을 솔직하게 성찰할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 <삶이 괴롭냐고 심리학이 물었다> 29p


어떤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병원에 온 사람들은 그래도 자신이 아픈 걸 알아서 오니까 다행인데, 자신이 아픈 줄도 모르고 병원에 안 오는 사람이 제일 심각한 거라고. 적어도 자신이 나쁜 상태이고 고통스럽다는 걸 인지하면 그것만으로도 한 발을 디딘 거 아닐까. 그런데 책에 나온 표현대로 고통을 발견한 뒤에 성찰로 이어지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일까.


인생은 실망스러운 일로 가득합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겪은 사소한 일들만 봐도 알 수 있지요. 그런데 자신의 마음이 왜 아픈지 정확히 이해하고 적절히 보듬지 않으면 슬픔과 고통이 내면화되고,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제한하는 비관적인 신념이 형성됩니다. - <삶이 괴롭냐고 심리학이 물었다> 59p


책에 나온 말처럼 내 안에 있는 슬픔과 고통은 어떤 경로를 통해 내면화된 걸까. 그걸 반추하기 위한 시간은 이 책을 읽는데 걸린 시간의 몇 배는 더 걸릴 듯하다. 아주 오랜 작업이 될 것 같다.



행복한 이들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불행한 이들은 저마다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떠오른 문장이다. <삶이 괴롭냐고 심리학이 물었다>에는 부정적인 사고패턴에서 벗어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제시되어 있다. 그것을 따르고 결론적으로 부정적인 사고패턴에서 벗어났다는 후기로 이 글을 마무리하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일단 책에서 제시한 방법들을 체화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도 긴 시간이 필요하고, 거의 평생을 익힌 생각 패턴을 단숨에 무너뜨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까.


자기만의 감옥에서 빠져나오면 모든 사람이 고통당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도 기쁨과 행복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나 자신을 개별 존재로서 경험할 때 다른 사람들은 나의 적이자 위협이 됩니다. 하지만 나와 만물이 하나라는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 개별 자아로서 겪는 고통은 흩어져버립니다. 


오히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크게 와 닿았던 부분들은 내담자들의 사연이다. 나뿐만 아니라 누군가도 고통스러워한다는 것. 나만 아프지 않다는 것에 위로받는 건 얼마나 이기적인 속성인가. 스스로가 못났다고 다시 한번 생각한다. 


여전히 심리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나의 심리도 타인의 심리도 모르겠다. 심리학에 대해 공부한다고 이게 나아질 수는 있을까. 한권만 읽고 모든 걸 판단하는 게 제일 편협한 방식이라고 생각하기에, 좀 더 읽어보겠다. 나는 나에 대해 관심이 많지만, 나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으니까. 마치 공부하는 마음으로 나와 가까워져 보고 싶다.



*본 포스팅은 포레스트북스로부터 소정의 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주관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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