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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Mar 28. 2020

빛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추악해지지 않기 위해 읽는 철학

시라토리 하루히코,지지엔즈 저 <죽은 철학자의 살아있는 인생수업>을 읽고

*본 포스팅은 포레스트북스로부터 소정의 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주관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윤리 교과서, 철학의 시작


"사회탐구 영역 뭐 선택했었어?"


이젠 수능과는 거리가 먼 나이가 되었지만, 동시대를 살아간 이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서로 수능을 봤을 당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한다. 같은 문과생이라면 사회탐구 영역을 묻곤 한다. 


"난 윤리."


내가 좋아했던 과목은 '윤리'다. 특히 철학자들의 이름이 잔뜩 나오는 부분이 재밌었다. 지적 허영을 뽐내고 싶어서 안달 났던 사춘기에, 윤리 교과서 속 철학자들의 이름은 어디 가서 아는 척하기도 좋았다. 얕게 배우고 아는 척하기 좋다는 면에서 윤리는 고효율 과목이었다.


교과서 속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아리스토텔레스다. 윤리 교과서를 외우던 때나 지금이나 부러운 사람이다. 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못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수학부터 윤리까지 각종 교과서에 이름이 등장한다. 심지어 대학에 와서 듣게 된 희곡 창작 수업 때는 그가 쓴 '시학'을 공부했다. 여러 영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보면, 부러움을 넘어서 나와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내게 있어서 '철학'의 시작은 윤리 교과서였다. 대학에 와서도 교양 수업으로 가장 많이 들은 건 철학 관련 수업이다. 이유는 윤리를 공부하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어디 가서 아는 척하기 좋았기 때문이다. 다만 시험기간에만 벼락치기하느라, 배웠던 철학자들 이름도 잘 기억이 안 난다. 


철학은 늘 어렵게 느껴지는데, 철학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하는 날이 오긴 할까.




철학도 시작은 쉽게


이번에 읽은 책의 제목은 <죽은 철학자의 살아있는 인생수업>이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을 때마다 뿌듯했다. 남들 눈에는 내가 철학에 대한 책을 읽는 것으로 보일 테니까. 허세 부리고 싶은 욕망은 좀처럼 식지 않는다. 책에 등장하는 철학자들이 말하는 이야기들과 별개로, 괜히 있어 보이는 척하며 책을 읽어 나간다. 남들은 신경 쓰지도 않는데 혼자서 이런 자기만족이나 하면서 하루를 버틴다. 


"시작부터 어려우면 하기 싫잖아."


주변에 독서나 글쓰기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처음이라면 무조건 쉬운 것부터 시작해서 흥미를 붙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에 질 들뢰즈가 쓴 <천 개의 고원>을 읽었는데 철학서 중에서도 어렵기로 소문난 책이고, 분량까지 많아서 철학 전체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다. 스터디도 했었는데, 책이 이해가 안 되어서 위키백과에서 본 내용을 가지고 읽은 척하는 날이 많았다. 


어떤 분야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는 건 삶에서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호기심이 장기적인 관심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처음에 얼마나 좋은 경험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동안 흥미만 가지고 포기했던 수많은 과정에서 몸으로 배웠다.


<죽은 철학자의 살아있는 인생수업>은 그런 면에서 철학에 이제 막 관심을 가지 이들이 읽기 좋은 책이다. 나 또한 윤리 교과서에서 몇 줄 읽은 게 다인 사람이라 아는 게 없지만, 이 책은 빠르게 읽었다. 윤리 교과서에서 본 플라톤, 데카르트 등의 이름을 다시 보니 반가웠다. 


읽고 나서야 작가의 이력을 보았는데 시라토리 하루히코는 일본의 철학자이고 지지엔즈는 대만의 철학자이다. 서로 다른 국적의 두 철학자가 서양철학에 대해, 그것도 아주 쉽게 설명해준다는 게 흥미로웠다. 처음으로 소크라테스가 누군지 알려준 윤리 과목 선생님이나 교양 수업 때 칸트에 대해 설명하던 교수님처럼, 이들은 내게 철학에 대한 흥미를 던져줬다. 




빛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추악해지지 않기 위해 읽는 철학


윤리 교과서는 수능이 끝나자마자 버렸고, 한동안 철학서를 읽겠다고 500페이지가 넘는 철학서를 10권도 넘게 샀다. 책들 대부분은 모니터 받침대로 쓰이거나 인테리어 소품처럼 방 한쪽에 쌓여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겉핥기식으로 본 수많은 페이지 중 몇 단어 정도는 머리에 남았고, 가끔씩 삶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거다. 칸트가 말하는 '선의지' 같은 개념이 어떤 행동을 하거나 글을 쓸 때 떠오른다. 


<죽은 철학자의 살아있는 인생수업>은 철학에 대해 깊게 알려주는 책은 아니지만, 대표적인 서양철학자들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읽고 나니 좀 더 알고 싶은 철학자가 생겼고, 마치 지도를 그려나가듯 흥미로운 철학자에 대해 입문서부터 시작해서 좀 더 읽어나갈 생각이다. 나만을 위한 철학의 지도를 그린다면 이 책도 이제 그 일부가 된 거다. 윤리 교과서에서 굉장히 짧게 등장했던 흄의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철학을 전공한 친구에게 흄에 대해 입문서로 적절한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죽은 철학자의 살아있는 인생수업>을 다 읽고 나서 마음에 남은 말은 철학자들이 주장한 철학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지엔즈가 플라톤에 대한 설명을 마무리하며 한 말이다. 


정말로 이성과 욕망을 적절히 컨트롤하며 살 수만 있다면 미학에 더욱 부합하는 인생의 형태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어쩌면 진정 인생을 즐기며 사는 사람은 역사에 등장하지 않는 이름 없는 거리의 은자이며,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홀로 조용히 아름다운 삶을 향유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 <죽은 철학자의 살아있는 인생수업> 49p


죽은 철학자의 말은 여전히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나 영향력과 별개로 그들이 삶이 행복했을지는 알 수 없다. 철학을 전파하는 것과 체화하는 건 다른 일이니까. 완벽하게 철학을 체화하고 사는 이가 몇이나 될까. 아마 철학자들조차 그렇게 살기는 쉽지 않을 거다.


지적 허영을 위해서 알고 싶었던 철학이지만, 요즘은 '덜 추악해지기 위해' 어떻게든 철학에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 여러 철학을 접하고 체화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내 삶이 빛나는 건 아니어도 추악해지는 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도덕적으로 무던해지는 나 자신을 보는 건 끔찍한 일이고, 가장 무서운 건 내가 추악해졌다는 인지조차 못하는 삶일 테니까.


나 자신에게 떳떳해지기 위해서라도, 아직 겉핥기라고 하기도 민망할 수준이지만 철학에 관심을 가져본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부끄럽다는 생각으로 눈을 감고 싶지는 않으니까.



*본 포스팅은 포레스트북스로부터 소정의 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주관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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