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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Apr 30. 2020

나는 마음이 힘들 때 몸에게 도움을 구한다

안블루 저  <이제야 어디에 힘을 빼야 하는지 알았습니다>를 읽고

*본 포스팅은 포레스트북스로부터 소정의 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주관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쉴 틈을 주지 않고 살기


독립출판 에세이를 쓴 뒤에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프리랜서 생활은 무척이나 지쳤다. 요즘은 입버릇처럼 '내 인생에 이제 퇴사는 없어'라고 말할 만큼 프리랜서 생활은 경제적으로, 심적으로 힘들었다. 월급쟁이의 일상은 지리멸렬할 때가 많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주는 안도감을 무시할 수 없다. 여유가 없으면 무엇 하나 손에 잡히지 않는다. 


출근한 지 며칠 지난 뒤 생각해보니 에세이 배송 작업이 남았다. 점심시간에 택배사와 통화를 한다. 퇴근 후에는 박스부터 비닐까지 책과 엽서를 포장할 재료를 산다. 몇 백개의 택배를 챙기느라 밤을 새우고 출근한 날이 있다. 회사에서 늘 긴장 상태로 있다. 일할 때 긴장하는 습관은 지난 1년 반의 프리랜서 기간 동안 숨어있었을 뿐, 몸이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회사에 빨리 적응하고 싶은 조급함까지 더해져서 졸지 않고 업무를 할 수 있었다. 


잠을 못 자도 회사에서의 일과 퇴근 후 개인적으로 하는 일을 모두 해냈다는 것에 뿌듯했다. 에세이 관련해서 거의 모든 작업이 마무리되었을 때 외주 제안이 몇 개 들어와서 모두 받았다. 


덕분에 일상이 심플해졌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외주 작업하고. 회사와 외주, 두 가지로 삶을 채웠다. 


그리고 무기력해졌다.


걱정을 잊으려고 목표를 만들었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쉬지 않고 움직였다.

비바람이 불 때 키를 키우고 잎을 키우는 나무는 없다. 흔들리는 나무는 비바람이 잠잠해질 때까지 가만히 있다. 비가 그치고 바람이 잦아들고 해가 뜨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나는 슬픔의 비바람 속에서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에 눌려 무언가 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꽤 오랫동안 잘 버텨냈다. 

- <이제야 어디에 힘을 빼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24p




 매일 힘을 주고 있으면 지치니까


"번아웃이다"


요즘 내 상태를 말하자 친구가 답했다. 프리랜서로 지내는 동안 불안해서 제대로 쉰 적이 없다. 여행도 몇 번 갔는데 여행 때마다 어떤 감흥을 느끼다가도 결론은 불안이었다. 내가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되나, 내가 지금 여기서 돈을 쓰고 있을 상황인가. 불안은 부지런히 마음을 삼킨다. 


코로나 19 이후로 출퇴근 이외에는 밖에 거의 나가지 않는다. 건강에 대한 걱정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기력 자체가 거의 없음을 느낀다. 운동이라도 해야 하는 걸 알지만, 당장 마감해야 할 원고가 있다. 회사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잠도 자야 한다. 하루 중에 직접적으로 나를 위한 시간은 없지만, 이 모든 게 날 위한 거라고 믿었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면 좋을 텐데, 둘 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회사에서 겨우겨우 집중해서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면 뭐 하나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하루 중에 긴장이 풀리는 시간이 없다. 침대에 누우면 바로 기절하는 사람이었으나, 최근에는 뒤척이며 새벽에 깨곤 한다. 주어진 일을 해결할 뿐, 진취적으로 무엇을 하는 게 쉽지 않다. 


누군가는 내가 보낸 프리랜서로서 1년 반을 '휴식하고 놀았던 기간'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사실 정말 열심히 '걱정하는 기간'이었다. 걱정에는 기력이 많이 든다. 늘 살이 찔까 봐 걱정하는 편인데 걱정 덕분에 살이 별로 안 쪘다. 그러나 걱정으로 하는 다이어트는 다시 하고 싶지 않다. 마음만은 중량이 많이 나갔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주짓수로 마음을 회복하기



지친 하루를 마치고 오는 길에 <이제야 어디에 힘을 빼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책 표지를 봤다. 나의 에세이 표지를 작업해준 전유니 작가님이 일러스트를 맡았다. 작년에 인스타그램에서 작가님 일러스트를 보고 너무 좋아서 무작정 연락을 해서 함께 작업을 했었는데, 작업하는 내내 배려가 느껴졌고 결과적으로 마음에 드는 표지가 탄생했다. <이제야 어디에 힘을 빼야 하는지 알았습니다>도 표지에서부터 매력을 느껴서 읽기 시작했다.


전유니 작가님이 작업해준 표지


표지에 주짓수 도복으로 보이는 옷을 입은 이들이 그려져 있는데, 실제로 이 책에서 핵심은 '주짓수'다. 작가가 삶에서 힘든 순간에 주짓수를 접하고 그를 통해 마음을 회복해가는 게 책의 메인 테마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상담전문가로 활동 중이라는 작가 이력을 보고 상담 관련 내용이 주를 이룰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주짓수, 즉 '몸'이다.


노력 대비 만족할 만한 성과가 있는 것만 선택했다. 투자 대비 성취가 적겠다 싶은 것을 붙잡고 있는 것은 미련한 일이라 믿었다. 

그렇게 살아온 나를 가슴 뛰게 하는 유일한 것이 무술이라니. 운동신경 둔하기로는 전국구 탑이 되고도 남을 만한 나다. 한 만큼 얻지 못하면 견디지 못하는 나다. 이래서 뭐가 될까 싶으면 그만두고 말 텐데.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왔지만, 할 수 있다는 말이 간절히 필요했다. 

- <이제야 어디에 힘을 빼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78p




몸의 힘은 강하다


최근에 계속 모니터만 바라보고 마우스만 열심히 누르느라 손목부터 목과 허리까지 몸이 안 좋아지는 걸 느낀다. 시력도 뚝뚝 떨어지는 걸 실감한다. 운동량은 제로다. 회사에서나 퇴근 후에는 눈앞에 있는 파워포인트와 워드 문서 위를 깜빡거리는 마우스 커서가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마우스 커서는 계속해서 깜빡거리고, 나의 불안도 그에 맞춰 계속 빠르게 뛴다.


책을 읽고 나서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출퇴근을 제외하고 밖에 나온 게 오랜만이다. 날씨가 이렇게 좋았다는 걸 체감 못하고 있었다. 지하철로 목적지보다 좀 먼저 내린 뒤에 걷는다. 한 발씩 내딛는다. 부지런히 전진한다. 걷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미션을 몸으로 해낸다.


뻔한 이야기이지만 작은 성공의 경험이 버틸 힘을 준다.  그런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는 몸으로 그 기회를 만드는 게 가장 빠르다. 몸은 정직하고 명확하니까. 오늘 걸어서 저만큼 간다. 달성 가능한 목표이고 뻔할 수 있다. 그러나 뭐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이런 행동에 집중하면 숨통이 트인다. 내가 무엇인가 해낼 수 있다는 걸 가장 절절하게 체험할 수 있는 건 결국 몸이니까. 이렇게 차근차근하다 보면 더 큰 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좀 더 열심히 몸을 써야겠다고 느꼈다. 마우스 커서 대신 걸을 수 있는 길을 보는 게 내 마음에도 더 좋을 것 같으니까.


조립식 카메라 삼각대를 산 적이 있다. 가운데 커다란 나사를 중심으로 세 개의 다리를 하나씩 연결하자 삼각대가 완성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삼각대를 반듯하게 세우려면 삼각대 다리가 삼각형이 되도록 만든다. 균형점이 잘 맞춰진 삼각대는 무거운 카메라를 받힐 수 있다. 균형점이 잘 맞춰진 몸은 쉽게 밀리지 않는다. 

"초등학생이어도 밀어낼 수 없을 거예요. 균형을 잘 맞추면 버틸 수 있어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주짓수의 힘은 구조에서 나와요." 

- <이제야 어디에 힘을 빼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122p




나의 호흡은 다시 돌아올 테니까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도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고 나면 호흡이 제 박자를 찾았다. 호흡을 유지하라는 것은 흔들리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다. 살아 있으면 놀라고 화나고 겁나고 슬퍼진다. 아플 수밖에 없고 흔들릴 수밖에 없다. 호흡을 유지하라는 것은 흔들릴 때 알아차리고 다시 돌아오라는 것이다. 빨리 알아차릴수록 빨리 돌아올 수 있다.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면 많이 흔들렸다는 거다. 필요한 만큼 호흡하면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 <이제야 어디에 힘을 빼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122p


왜 열심히 사는데 보람을 못 느낄까. 요즘 들어 자주 했던 생각이다. 앞으로는 몸을 좀 더 쓸 생각이다. 나를 위한 일이라고 합리화했던 그럴듯한 일 대신, 진짜 내가 하고 싶었던 걸 할 생각이다. 늘 하고 싶었지만 미뤘던 운동이 몇 가지 있는데,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겠다고 느꼈다. 앞으로는 남들에게 자랑할 수 없고 나만 볼 수 있을지라도, 내 몸이 무엇인가 해내는 걸 목격하고 싶다. 


다음에 올리는 글이, 늘 하고 싶지만 미뤄왔던 발레나 현대무용에 대한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창피해서, 다른 일이 더 생산적으로 보여서 미뤘으나 이젠 나의 호흡으로 하고 싶은 걸 해보려고 한다. 엉망이고 우스꽝스러울지라도 결국 나의 호흡은 다시 돌아올 테니까.




*본 포스팅은 포레스트북스로부터 소정의 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주관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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