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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Jul 08. 2021

네가 카페를 차렸다고 해서 무작정 가봤어, 10년 만에

미아역 카페 '포너드커피'

누군가의 근황을 잘 알고 있다는 게 꼭 그 사람과 연락을 잘하고 있다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 요즘에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근황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어도 딱히 연락을 안 한다면 그 사람의 근황을 알 수 없고, 전화번호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인스타그램을 통해 근황을 빠삭하게 알게 되기도 한다. 인스타그램을 안 하는 사람의 근황을 알기 위해서는 연락을 하는 용기가 필요하기도 하다. 물론 '잘 지내냐'에 대한 답이 인스타그램 피드가 되기에는, 인스타그램에는 포장된 모습이 대부분이지만.


친구 C가 카페를 오픈했다는 소식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들었다. C는 한때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였다. 중고등학생 때만 하더라도 누군가 가장 친한 친구를 물으면 C라고 답했다. 그러나 C를 마지막으로 본 때를 계산해보니 10년쯤 되었다. 20대가 된 후로 우리 둘은 조금 소원해졌다. 딱히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게 아니었지만, 각자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긴 성장통이 서로를 예민하게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나 혼자 멋대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우리는 예전만큼 가깝지 못하다는 것.



C를 떠올리며 함께 걷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우리는 같은 반이 된 적이 없지만, 야자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만나서 동네를 걸었다. 딱히 특별한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다. 좋아하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부터 진로에 대한 이야기까지, 지금은 별거 아닐 수 있지만 당시에는 중요했던 이야기들. 동네 슈퍼 앞 평상에 앉아있는 어르신들은 우리를 보며 이상하게 생각했을 거다. 교복 입은 두 놈이 열 바퀴도 넘게 동네를 도는 모습이 의아할 만하니까. 


C와 함께한 것들이 꽤 많다. 중학생 때는 함께 바둑반을 했다. 나는 심각할 정도로 산만한 사람이라 예나 지금이나 바둑의 룰도 모른다. 그러나 C는 바둑반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담당 선생님과 겨룰 만한 실력이 되었다. C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집중력이 좋은 친구였다. 내가 산만했기에 집중력이 좋았던 C와 친해진 걸까.


산책 말고도 많은 것을 함께 했다. 둘 다 삼국지를 좋아해서, 온라인 삼국지 동호회 활동도 했다. C는 힙합을 좋아했는데, C를 따라서 간 힙합 공연이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간 공연이다. 하필이면 그때 간 공연이 마일드비츠 1집 쇼케이스였는데, 당시 참여진이 사이먼 도미닉, 딥플로우, 팔로알토, 이센스, 더콰이엇 등 지금의 힙합씬을 이끄는 이들이었다. 신인이었던 이들의 무대를 보고 지금까지도 힙합을 좋아한다. 삼국지와 힙합에 좋아하는 내 취향에는 C의 지분이 크다.



아주 가끔 C와 연락을 하고 했다. 짧게 나누는 카톡에서도 어색함이 묻어났다. 생일 때 축하를 해주고, 한 해가 끝나면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연락을 하는 그런 사이. 둘이 나누는 카톡을 보면서, 우리가 멀어졌음을 실감한다. 이런 거리감을 느끼고 있기에, 인스타그램을 통해 카페를 오픈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도 막연하게 한 번쯤 가자고 생각만 할 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내 삶은 불안한 날의 비중이 훨씬 컸고, 불안에 시달리는 날 중에는 연인에게서 이별을 통보받은 날도 있다.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혼자 품는다면 감정은 더 악화될 테니까. 털어놓는다면 거대해 보였던 불행도 별거 아닌 일이 될지도 모르니까. 마침 강북 쪽에 있던 나는 C가 미아에서 카페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서 무작정 친구의 카페를 갔다.


카페에 도착했고, 그렇게 우리는 거의 10년 만에 다시 만났다. 카페에는 C의 어머니가 계셨다. 학생 때는 C의 집에 갔다가 어머니를 뵙기도 했는데, 이렇게 오랜만에 재회를 하다니. 이별을 직감하고 깔끔하게 차려입고 간 날이었는데, 그렇게 입길 잘했다고 느꼈다. 어머니와도 안부를 나누고, 메뉴 중에 가장 달콤해 보이는 달고나 커피와 크로플을 주문했다. 영수증을 받아서 네이버 지도에 영수증 리뷰를 남길 거니까, 돈 안 받을 생각 말고 꼭 받으라고 했다. 다행히 마감을 앞둔 시간이라 손님이 거의 없어서 C와 이야기할 여유가 있었다.


C의 어머니는 먹고 나서 냉정한 리뷰를 해줘야 도움이 된다고 했는데, 친구인 것을 떠나서도 맛있었다. 그 어떤 불행도 단숨에 그 부피를 줄여줄 만큼 달콤했다. 



C가 오랜만에 연락을 해왔을 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면서 그게 커피라고 했다. 바리스타를 시작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C가 커피로 끝을 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좋아하는 일에 가장 몰두하는 사람이니까. 바둑도, 삼국지도, 힙합도 사랑하는 동안 무섭게 몰두했다는 걸 내가 제일 잘 아니까. 


“별생각 없이 와. 이런저런 생각 말고. 생각이 많으면 우리 그동안 못 본 것처럼 자주 못 볼 테니까.”


C가 만든 커피와 디저트만큼이나, 그 말이 좋았다. 오랜만에 재회를 하고 가장 좋았던 건, 언제든 C가 카페에 머물고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주변에 편하게 갑자기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드는 걸 체감한다. 이제는 무너질 것 같은 날에도, C의 카페에 가서 잠깐이라도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큰 위로가 된다. 물론 징징거리기보다 짧게 머물고 매출을 올려주는 좋은 손님이 될 거다. 


덩치만 컸지 여전히 초딩입맛인 내게 아메리카노는 쓰기만 할 뿐이라 커피 맛을 모르지만, 만약 커피 맛을 알게 된다면 그건 C 덕분일 거다. C를 닮아갔던 취향처럼, 카페에 가다 보면 어느새 나의 취향에 커피가 추가되지 않을까.


독립을 하고 나서 오히려 C의 카페와는 거리가 더 멀어졌다. 그러나 한번 카페를 방문한 이후로는 마음은 좀 더 가까워진 기분이다. '포너드(for nerd)'라는 카페 이름조차도 너드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 내게는 환영의 말처럼 느껴진다. 무슨 일이 있다고 해서 억지로 가는 게 아니라, 이유 없이 동네를 돌던 그때처럼, 별일 없이 한 번씩 미아역에 있는 C의 카페 '포너드커피'를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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