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도 않고 돌아온 1일 1 글
8월의 마지막 토요일
오늘은 8월의 마지막 토요일이다. 자정을 넘긴 채 글을 쓰고 있으므로, 이제 8월의 마지막 일요일이다. 8월의 막바지라기에는 아직 더위가 한가득 남은 날씨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더위가 남았을까.
평일보다도 일찍 일어난 토요일이다. 아침부터 병원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평소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를 꽉 무는 편이고, 동생의 증언에 따르면 이갈이를 할 때도 있다고 해서 구강내과에 다녀왔다. 스케일링받으러 간 치과에서 구강내과에 가보라고 추천을 해줬다. 구강내과라는 말도 생소하지만 예약도 쉽지 않아서 여러 군데 전화를 돌리고 겨우 예약이 되는 곳에 다녀왔다.
지하철을 타고 세 번을 갈아타야 했지만, 오랜만에 외출이라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정말 필요한 외출이 아니면 외출 자체를 못 하는 상황이 되니, 명분 있는 외출조차도 낯선 이벤트가 된 기분이다. 건강을 위해 외출을 하지 않다가, 건강을 위해 병원으로 외출을 하는 날.
나도 모르는 내 습관에 병들 때
"턱 디스크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턱에도 디스크가 있다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의사의 설명 앞에 무지한 환자로서 고개를 끄덕인다. 구강내과에 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몇 주 전부터 턱이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햄버거도 예전처럼 입에 욱여넣을 수 없어서 여러 조각으로 잘라서 먹다 보니 병원에 가야겠다 싶었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 아니냐, 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기에, 먹을 때 불편함을 느낀다면 병원에 가야 한다. 내가 하는 노동부터 취미까지 모두 다 결국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니까. 햄버거를 단숨에 한 입에 베어물고 싶으니까.
마우스피스처럼 생긴 걸 잘 때 끼고 자면서 치아에 가는 압박을 줄여주는 게 좋다고 한다. 설명을 듣는데 문득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서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으므로 마우스나 키보드 때문에 생긴 손목 통증이야 눈에 보이고 내가 의식하고 하니 그러려니 하는데, 나도 모르게 하는 이갈이 때문에 턱이 아프다니. 나도 모르는 내 습관이 나를 병들게 하다니. 무의식의 나도 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므로 내가 책임져야만 한다. 그리고 책임에는 비용이 든다.
"가격은 이러니까 참고하세요."
가격 안내를 받으면서 숫자 하나가 잘못 붙었나 싶었다. 예상 못한 지출이, 그것도 내 기준에서 꽤 큰 지출이 생겼다. 짧은 시간 동안 고민을 하다가 결정을 미룬다. 다른 병원들과 가격을 비교하고 결정하기로 한다. 물리치료까지 추가로 받아야 하는데, 병원 거리도 머니까 고민이 필요하다. 빠르게 합리화를 시작한다.
돈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서글퍼지니까, 돈이 아닌 다른 이유라고 생각해본다. 건강에 쓰는 비용 치고는 비싸지 않은 거라는 합리화도 더한다. 내 건강은 얼마짜리인데? 물어볼 전문가는 의사 선생님이 아니라 나 자신인데, 나는 내 건강의 가격을 모르겠다.
병원에서 나오니 비가 온다. 오랜만에 외출했는데 날씨가 마치 작년에 간 캄보디아 씨엠립 같아서 여행 온 기분이다. 코로나 때문인지 거리에 사람들이 없고, 각종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보인다. 씨엠립에서 툭툭을 타고 돌아다니다 보면 한국은행들 간판이 보였다. 씨엠립에도 있고 서울에도 있는 은행에 들어가서 그동안 모아둔 만 원짜리를 카드에 입금한다. 당분간 현금을 쓸 일이 없을 것 같다. 오락실을 가거나 길거리 음식을 사 먹는 일은 한동안 없을 테니까. 코로나가 끝날 때쯤 오락실과 길거리 음식이 남아있을까. 코로나 이전의 거리 사진이 귀해지는 상상을 해본다.
죽지도 않고 돌아온 1일 1 글
지금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유는 1일 1 글을 쓰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학교 선배와 하루에 한 문장이라고 쓰기로 했다. 예전에는 카톡창에 글을 남겼는데, 좀 더 공개된 채널에 남겨야 책임감이 생길 것 같아서 브런치에 짧게라도 매일 글을 쓰기로 했다. 선배와의 카톡창 공지사항을 '죽지도 않고 돌아온 1일 1 글'로 바꾼다. 예전에 1일 1 글을 함께 하다가 얼마 못 가 그만뒀는데 이번엔 제대로 되길 바라며 다시 시작한다. 이갈이보다 게으른 손을 해결하는 게 지금 당장은 더 급해보인다.
내가 의식하고 있지만 모른 척했던 습관이 몇 가지 있다. 이갈이처럼 아예 모르고 사는 것과 달리 게으름과 검열, 타인에 대한 의식 등이 그러하다. 욕심은 많은데 게으름도 만만치 않아서 늘 글 쓰는 걸 미뤄왔다. 막상 쓰려고 할 때는 각종 자기 검열로 시작도 못할 때도 많다. 타인에게 어떻게 내 글을 보여줄지만 생각하느라 내가 잘 반영되지 않아서 쓰다가 말 때가 많았다.
'제 욕심이 게으름을 이겼으면 좋겠어요'
1일 1 글을 함께 하는 선배에게 했던 말이자 나의 목표다. 주변에 부지런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말도 안 되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애초에 나와 종이 다르므로 별로 부럽지도 않은데, 부지런하게 글을 쓰는 사람들은 정말 부럽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부지런함은 재능과 달리 내 능력으로 가질 수 있을 것 같다는 거다.
당장 내일부터는 하루에 한 문장 쓰기도 버거워질지도 모른다. 짧게라도 매일 쓰려고 한다. 퇴고는 커녕 급하게 쓴 글을 발행하고 나중에 오타와 비문을 발견하고 좌절할 거다. 그래도 시작하고 문제들을 점점 수습해가는 게 내게는 더 맞을 듯하다. 용두사미 말고 세상에서 가장 긴 뱀이 되고 싶다. 거창한 거 말고 그저 꾸준하게. 그래서 결국에는 내 욕심이 게으름을 이겼다고 판정승을 거두고 싶다.
'될 일은 결국 그렇게 된다'
병원에 갔다가 영화 '테넷'을 보고 이 글을 쓴다. 테넷에 나오는 저 대사를 믿고 싶다. 어차피 쓸 글이니 부지런히 써보자.
*커버 이미지 : 영화 '테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