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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행복 : 탄수화물 섭취와 쇼핑

지금 당장 행복하고 싶을 때 하는 선택

by 김승

행복은 어려워


행복을 멀리서 찾지 마. 행복은 가까이에 있어. 행복은 쉽게 얻을 수 있어야 해.


행복과 관련해서 들어본 말들이 많다. 이론과 실전은 다르기에, 머리로는 아는데 실천하기 힘든 분야 중 하나가 행복이 아닐까 싶다. 오늘 출퇴근길에 읽은 책에는 행복이 목적이 되는 순간 행복에 닿기 더 힘들어진다는 구절도 나왔다. 결국 행복하자고 하는 짓인데 궁극적인 행복이 뭔가 싶고, 인생의 목표씩이나 되는 행복이면 굉장히 고차원적인 게 아닐까 싶다.


행복을 잘게 쪼개서 힘든 순간마다 섭취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침에 일어나면 각종 영양제를 10개 정도 먹는데, 이 중에는 우울을 완화시켜준다고 알려진 영양제도 있다. 아직까지는 효과가 미미해 보인다. 약을 너무 여러 개 먹어서 그런 걸까.


우울과 불안이 늘 곁은 맴돈다. 그럴 때는 당장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어쩌면 '자극'에 좀 더 가까울 수 있는 걸 찾는다. 금방 휘발하더라도 행복에 가까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게 '탄수화물 섭취'와 '쇼핑'이 아닐까 싶다.



쉬운 행복 1. 탄수화물 섭취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좋아하는 음식을 나열하라고 하면 대부분 탄수화물이고, 특히 떡볶이를 정말 좋아해서 일주일에 한 번은 먹는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즉석떡볶이를 먹으러 다니겠지만, 애석하게도 집에서 배달로 먹는데 만족하고 있다.


지인들과 약속이 있을 때도 즉석 떡볶이를 먹으러 갈 때가 많다. 즉석떡볶이를 달달한 소스에 찍어먹는 감자튀김과 함께 먹고, 주문할 때 라면을 비롯해서 각종 사리를 추가한다. 먹고 나서 나의 위가 한계에 도달했다고 느낄지라도 볶음밥을 주문한다. 눈앞에 있으면 어떻게든 먹게 된다. 앞에 있는 음식을 못 남기는 버릇이 이런 순간에도 발휘된다.


먹은 것들을 돌아본다. 떡볶이, 감자튀김, 라면, 볶음밥까지 탄수화물의 총집합이다. 늘 살을 빼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만 입안에 탄수화물이 돌아다니는 동안 느끼는 행복은 달콤하다. 몇 달을 준비한 시험을 붙는 등 장기간 준비한 일이 성공했을 때 행복이 클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한 가장 큰 행복은 탄수화물 섭취다. 섭취하기 쉽다는 면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주문하고 먹으면 된다.


오늘은 집에 오는 길에 편의점 택배를 보내면서 옆에 진열된 계란 샌드위치를 발견했다. 간신히 참아냈지만, 그 순간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놓치는 기분이 들었다. 살이 찌면 불행해지는 나의 속성과 탄수화물을 먹으면 행복해지는 진리 사이에서 늘 고민한다.



쉬운 행복 2. 쇼핑


쇼핑을 썩 즐기진 않는다. 아마 작년까지 경제적으로 위태로운 프리랜서로 지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직장에 돌아오자마자 쇼핑을 통해 얻는 행복을 다시 회복했다. 정리를 좋아하는 미니멀리즘 추구자이기에 쇼핑의 스펙트럼이 그리 넓진 않다. 최근에 가장 많이 산 건 각종 영양제이고, 유일하게 중독에 가까울 만큼 쇼핑하게 되는 건 '책'이다. 가계부 어플을 확인하면 늘 도서 항목이 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책을 좋아하는 것도 나의 가장 근본적인 기질 중 하나인 '있어 보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사둔 책의 10%도 못 봤지만 구매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보관 공간이다. 보관할 곳이 없어서 책장에 무리하게 책을 쌓아서, 책장의 단 하나가 무너졌다. 이 추세로 가면 책장을 새로 사야 할 것 같고, 궁극적으로 좀 더 넓은 방을 구해야 할 것 같다.


책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책장에 꽂혀있는 것만 봐도 다 읽고 똑똑해진 기분이 든다. 지적 허영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독서라고 해봐야 지하철에서만 책을 읽는 편협한 독서를 하는데, 과연 죽기 전에 내가 소유한 책의 얼마나 읽을 수 있을까. 그래도 도서 구매 사이트에 들어가서 장바구니에 읽고 싶은 책을 넣어두고 구매하는 순간이 좋다. 클릭 몇 번으로 행복에 닿을 수 있다는 건 여러모로 편리하다. 그래서 오늘도 사고 싶은 책을 고른다.



어려운 행복 말고 쉬운 행복


떡볶이를 먹으면서 사고 싶은 책을 고르고 결제를 한다. 탄수화물 섭취와 쇼핑이 동시에 이뤄진다. 건강, 다이어트, 절약 등 탄수화물 섭취와 쇼핑을 자제해야만 하는 이유를 말하라면 수십 개도 댈 수 있다. 어쩌면 그걸 다 알면서도 참을 수 없기에, 혹은 참을 수 있지만 굳이 참지 않을 만큼 달콤하기에 이걸 행복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긴 하루였고 힘들었으므로 오늘도 행복을 찾아본다. 내가 아는 선에서 가장 쉬운 행복을.



*커버 이미지 : 르누아르 '선상 파티의 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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