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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Sep 18. 2020

집안은 불교, 유치원은 천주교, 학교는 기독교

나의 종교를 찾아서

종교와 이야기는 함부로 하지 말라고 배웠다. 정답이 없는 분야이고, 관련해서 신념이 강한 이들도 많다 보니 여러모로 조심스럽다. 어쨌거나 종교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순간이 존재한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질문 중 하나도 종교에 관한 거다. 


"혹시 종교가 어떻게 되세요?"


나는 '무교'다. 늘 무교였고, 높은 확률로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무작정 무교를 고집하는 건 아니고 살면서 여러 종교를 접할 수 있었고, 내 마음이 갈 만큼 결정적인 순간은 없었다. 


나의 '종교적인 순간'이란 영적 체험의 순간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인 순간'이다. 내겐 늘 사람이 가장 최우선이다 보니, 종교와 관련해서도 사람이 보인다. 나는 상대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은 나를 전도의 대상으로 봤던 경우도 있다. 애석하게도 신의 눈치는 안 보아도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는 내겐 그런 의도가 잘 보였다. 



집안은 불교


무교이지만 가장 가까운 종교는 불교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우리 집안은 불교였다. 어머니는 지금도 열심히 절에 가신다. 어머니가 절에 가서 하는 기도의 대상이 우리 가족이라는 알고 있다. 절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는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곤 한다. 


명절에 친척집은 가기 싫어해도 절에 가는 데는 별 부담감이 없다. 친척들은 내 삶을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거대한 키워드를 거침없이 던지지만, 절에서는 그 누구도 내 삶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님이 내 커리어와 결혼에 별 관심 없다는 게 속 편하다. 그저 어머니를 따라 불경 좀 따라 읽다가, 내 입맛에도 딱 맞는 절밥을 먹는다.



유치원은 천주교


집안은 불교이지만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다녔다. 집 앞에 있는 성당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이었는데, 당시 사진을 보면 매번 하얀 스타킹을 신고 등원을 했다. 지금 내가 이 몸에 하얀 스타킹을 신고 출근을 한다면 인사팀에서 없는 규정이라도 만들어서 징계를 내리지 않을까. 


어쨌거나 당시에 수녀님들을 매일매일 봤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스님과 수녀님이 비슷한 존재로 느껴졌다. 언제 가도 반겨주고 웃어주는 사람. 



중고등학교는 기독교


내 삶에서 의도와 상관없이 가장 오랜 기간 시간을 보낸 종교는 기독교다. 집과 가까워서 배정된 중, 고등학교가 모두 미션스쿨이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마다 주기도문, 사도신경을 외우고,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 말씀을 읽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강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종교 과목도 일주일에 한 번씩 들었다. 덕분에 지금도 가사를 다 외우고 있는 몇 안 되는 노래가 '빛의 사자들이여', '새벽부터 우리' 같은 찬송가다. 


아예 작정하고 믿어보려고 학교 선생님 추천을 받아서 집에서 왕복 두 시간 거리에 있는 교회를 몇 달 동안 다닌 적도 있다. 아마 당시에 좋은 목사님을 만났으면 내 종교가 기독교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교회에서 다른 종교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점점 떠났다. 내가 아침마다 강제로 읽은 성경에는 분명 포용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중 기독교인 사람들이 많기에, 그들이 믿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 한다. 성경도 보고, 주변 사람들의 믿음을 보면서 하나님이 참 좋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을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고 나쁜 목적으로 이용해 먹는 사람들이 싫은 거지, 교복을 입는 동안 하나님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열심히 할 자신이 없어서 무교



종교를 믿는 이들의 일상을 보면 종교에 일정 이상 시간을 투자한다. 그리고 믿음의 대상이 존재한다. 나는 일단 뭐 하나 꼼꼼하게 못 하는 내 일상에 종교를 추가해서 감당할 자신도 없고, 그 누구도 잘 믿지 못하는 내가 과연 어떤 존재에게 무한한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싶다.


오히려 내가 종교를 가진다면, 그 이유는 너무 힘들어서 무작정 의지할 존재가 필요해서 일 거다. 신이나 성인조차도 무작정 모든 존재를 예뻐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만큼 뭔가 노력을 해야 의지할 품을 내줄 거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도둑놈 심보로 조건 없는 사랑을 원하지 않을까. 


절대자가 박애주의자일지라도, 그 종교를 둘러싼 많은 이들이 요구하는 사항도 분명 있을 테니까. 신은 죄가 없다, 늘 신을 핑계로 욕심을 채우는 사람이 문제지. 만약 가지게 된다면 종교를 가지고 싶지, 종교집단의 사람들에게 휘둘리고 싶지는 않다. 그러므로 어느 날 종교가 생긴다면 주말마다 어딘가를 간다는 뜻이 아니라, 내 마음에 누군가 들어왔다는 뜻일 거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영 찜찜하다. 종교란 그만큼 예민한 부분이니까. 마음 같아서는 그냥 덥석 믿고 의지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 옆에 있는 사람 믿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종교가 생기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머리가 아프므로 오늘도 나는 무교로서 하루를 마무리하기로 한다.



*커버 이미지 : 바스키아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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