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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Sep 20. 2020

그냥 해, 일과 사랑을

무엇이든 '그냥' 하기

그냥 하는 일


눈을 뜬다. 이젠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진다. 재택근무이긴 하지만 일은 일이다. 매일매일 해야만 하는, 주어진 일이 있다. 뉴스들을 살펴보다 보면 애사심과 주인의식에 대해 쓴 글도 발견한다. 댓글에는 갑론을박이 오간다. 대표만큼의 월급이나 주식을 가진 것도 아닌데 어떻게 같은 생각으로 일을 하냐는 의견도 있다. 일을 열심히 하면 결국 자신에게 돌아올 거라는 식으로 말하는 이들도 많다. 일로 자기만족을 할 수 있는 사람도 분명 존재하니까.


그냥 한다. 회사는 냉정한 곳이다. 매달 일을 하고 별 탈 없이 월급을 받았다면 내 몫을 한 거라고 믿는다. 난 그저 내 일에 대해, 내가 받는 월급과 계약관계에 책임을 다할 뿐이다. 평생 나를 책임질 곳도 아닌데 그곳에 내가 얼마나 의지할 수 있겠는가.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생각과 당장 버려지지 않을 거라는 불안과 안정감 사이의 묘한 균형감 사이를 유지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나는 '그냥' 해야만 한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숨을 쉬듯이, 거창한 계획 없이.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짜치는 일'인지 따지는 게 아니라 그냥 한다. 번아웃도 되지 않고, 도태되지도 않기 위해 적절한 균형을 맞추려는 방법은 오직 하나다. 주어진 일을 그냥 해내는 것.



그냥 하는 사랑


꽤 오랜 시간 연애를 하지 않았다. 한 때는 의무감을 가지고 사랑을 하려고 했다. 다들 바쁜 와중에도 사랑을 한다. 거의 대부분의 노래와 드라마는 사랑을 외친다. 사랑을 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를 따라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된다고 사랑이 쉽지는 않다. 사랑을 하지 못하는 자신이 도태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해 안 되는 사랑 영화를 수십 번 돌려본 적이 있고, 동하지 않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믿어본 적도 있다.


그냥 한다. 한편으로는 내게 가슴 뛰는 사랑은 쉽게 안 오는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확실한 건 어릴 적 봐온 '멋진 사랑'이란 허상이다. 몇 번의 연애에서 배운 건, 사랑은 구질구질하고 유치하다는 거다.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할 수 없는 순간들이 훨씬 많다. 모든 종류의 환상을 버려야만 가능한 게 사랑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그냥' 하기로 한다. 많은 걸 바라지 않고, 솔직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사랑을.



있는 그대로의 내가 하는 


회사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대로 드러낸다면, 나는 게으르므로 당장 쫓겨날 거다. 회사가 원하는 걸 하지만 최소한의 마지노선이라는 걸 정한다. 내 자존감의 한계선을 정하고, 회사가 그걸 넘기게 하면 인연이 끝난 거로 생각하기로 한다.


그냥 하는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낼 수 있느냐다. 나를 감추고 연기하고 싶지 않다. 이미 연기는 회사에서도 열심히 하고 있다. '좋은 사람'을 연기하려고 노력했으나, 완벽한 연기도 힘들고, 나름대로 꽤 괜찮은 연기를 해도 공허함이 찾아온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사랑에 성공할 수 있을까. 사랑에서 성공은 무엇인가. 


사회의 적응할수록 '있는 그대로의 나'가 어떤 모습인지 헷갈린다. 그 모습을 완전히 잊게 되면 나는 내가 아니게 된다. 아무 계획도 생각도 없이 '그냥' 하는 순간이 필요하다. 동기부여와 목표의식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냥'에는 한계가 없다. 


그러므로 오늘도 '그냥' 한다. 글도 그냥 쓰고, 하루하루 그냥 산다. 이게 내가 아는 제일 속 편한 방법이므로, 그냥 한다.




*커버 이미지 : 뭉크 '창 옆에서의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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