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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Dec 13. 2020

여행지에서 만난 친구와 연락하고 지내나요?

친구의 탄생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 사귀는 게 힘들게 느껴진다. 격식을 갖추고 업무로 만나는 관계라면 얼마든지 능숙한 척하겠지만, 오히려 마음 터놓을 친구를 만드는 건 갈수록 더 어렵다. 새롭게 사랑을 시작하는 일보다도 새로운 우정을 시작하는 게 더 어렵게 느껴질 정도다. 어떻게 친구를 사귀나요, 아이였을 때 했던 질문을 하고 싶을 정도다. 아는 게 없던 시절이나, 쓸데없이 아는 게 많은 시절이나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 중에 연락하는 사람 있어요?"


얼마 전에 이런 질문을 받고 생각해보니, 운 좋게도 그런 친구가 존재한다. 늘 혼자 여행을 간 덕분인지, 여행지에서 새로운 인연이 생기곤 한다. 


몇 년 전 포르투갈에 여행을 갔을 때도 우연히 알게 된 친구가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묶어서 여행 중이었고,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세비야를 거쳐서 리스본으로 왔다. 리스본에 도착하고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한국인이 말을 걸어왔다.


"저랑 동선이 겹치시는 것 같아요. 도시마다 계속 마주쳤거든요."


말을 걸어준 B는 알고 보니 나와 동선이 겹쳤고 숙소까지도 겹쳤다고 한다. 주변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나는 B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타지에서 말을 걸어주니 고마웠다. 그렇게 B와 리스본에서 동행을 하게 되었다. B는 리스본으로 넘어오면서 알게 된 사람이 있다면서, 그 사람도 함께 돌아다니자고 했다. 그렇게 A까지 합류해서 셋이서 리스본을 돌아다녔다.


함께 리스본 벨렝탑부터 근교 신트라의 페나성까지, 포르투갈 리스본 여행자들이 갈법한 곳들을 둘러보았다. 서로 사진도 찍어주면서, 때로는 각자의 사진에 서로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각자의 일정이 있기에 오래는 못 보았지만, 혼자 간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여행을 다니는 건 신기한 경험이었다. 여행지가 아니었다면 못 봤을 사람을 거다. 접점이 없는 이들이 여행을 통해 마나는 건, 여행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정작 말을 걸어준 건 B이지만, 여행 후에도 연락이 이어진 건 A이다. B가 아니었다면 A와 알지도 못했을 텐데. 문득 영화 '가족의 탄생'이 떠올랐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준 매개체 역할을 해준 사람은 사라져도, 이미 시작된 인연은 지속되는 풍경. 


A는 외국에 계속 있는 상황이어서, 다음 해에 이탈리아 여행 때도 만났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만나고, 다음에 만난 장소가 이탈리아 피렌체라는 것도 신기했다. 이후 서울에서 만나면서, 내가 한 사람을 서로 다른 세 국가에서 만날 일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다. 이런 특별한 추억은 인연을 더 단단하게 해 준다.


A와 늘 연락하는 건 아니다. 가끔 안부를 묻고, 생일이나 새해에 연락하는 정도의 사이. 다만 그 정도의 인연이어도, 내 삶에 긴 시간 남아있는 인연은 많지 않으니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힘든 요즘 들어서, 여러 우연이 겹쳐서 만난 이러한 우연이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연락하고 지내느냐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만드는 인연이 내게도 있다는 게, 곱씹을수록 신기하다.


누군가를 새로 만날 일도 적고, 만나더라도 마음을 여는 게 힘들 거다. 내가 여행을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는, 여행지에서의 여유와 더해져서 낯선 사람에게도 마음을 열 틈이 생겨서가 아니었을까. 불가능해진 여행과 점점 닫히는 마음을 돌아보다가, 여행지에서의 인연이 더욱 고맙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커버 이미지 : 포르투갈 신트라, 페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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