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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Feb 15. 2021

저는 딱히 전문가가 되고 싶지는 않은걸요

전문가를 바라지 않는 삶

나는 '전문'이라는 말이 두렵다. 어딘가에서 내가 이런 걸 전문했다고 말하는 건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전문가란 그 분야에 대해 굉장히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자신의 높은 경지를 뽐내면서 높은 권위를 획득한 사람도 있고, 은둔의 고수처럼 자신의 내공을 소박하게 알리는데 만족하는 사람도 있다.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허술한 부분이 많지만 자신을 전문가라고 칭하고, 그 수식어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이런 기준의 차이는 아마도 전문가에 대한 기준이 모두 다르기 때문일 거다.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했다는 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지만, 대학에서 4년 동안 어떤 전공을 했다고 해서 그 전공의 전문가가 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4년 동안 공부한 절대적인 시간을 합해보면 그리 많은 시간도 아니다. 만약에 대학에서 어떤 전공을 했다고 전문가가 된다면, 어떤 사람이 대학에서 전공하지 않은 분야에 대해서, 전공자들이 쏟았을 시간만큼 공부한다면 그 사람은 바로 전문가가 되는 걸까. 


많은 시간을 쏟고도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껴서 전문가로 불리는 걸 꺼리는 사람도 존재할 거고, 물리적으로 투자한 시간이 적어도 자신이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각 분야마다 전문가로 불리기 위한 기준점은 다를 거니까. 다만 모르는 분야에 대해 알아볼 때는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이 그 분야에 쏟은 시간을 유추할 수 있는 경력 등의 단서를 살펴보게 된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내 분야에 대해 말하는 게 부끄럽다. 한편으로는 과연 몇 년이나 일해야 '전문가'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싶다. 회사에서 하는 일뿐만 아니라 퇴근 후에 쓰는 글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서 영화 글을 쓰지만 내가 본 영화의 편수는 영화평론가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몇 편이나 봐야지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까. 단순히 많이 본다고 전문가도 아닐 텐데. 


어떤 분야에서 어떤 직무로 일한다고 하면 '그쪽으로 잘 알겠네요'라는 답이 돌아올 때가 많다. 잘리지 않고 월급을 받는다는 건 그래도 1인분의 일은 해낸다는 뜻일 텐데, '잘 안다'라는 말은 2인분 정도는 거뜬히 해야만 할 것 같은 말로 들린다. 솔직히 말하면 딱히 어떤 분야의 전문가로 불리고 싶은 욕심도 없다. 그저 그 분야에서 1인분만 할 수 있어서 좋겠다. 전문가는 아니어도, 전문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사람. 


'전문성을 길러야 합니다!'


주변에서 흔하게 보는 광고문구이지만, 전문가는 애초에 희소하니까 전문가 아니겠는가. 굳이 나까지 전문가가 될 필요가 있을까라는 합리화를 해본다. 1인분만 해내도 삶은 충분히 바쁘고 벅차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나 글을 쓸 때나 전문가인 척해야 하는 순간은 자주 찾아온다. 내가 이렇게 부족한데 있는 척해야 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진짜 전문가가 되려면 무지막지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니, 전문가는 타고나기를 엄청난 사람이 어마 무시한 노력을 통해서만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넘쳐나는 '전문성을 길러라'는 말을 남일처럼 보고 지나가 수 있을 테니까.


전문가가 될 수 있다면 그저 생존 전문가가 되고 싶다. 엄청난 걸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큰 문제없이 회사를 다닌 사람이나 역사에 남을 글을 쓰지는 않지만 공감하는 사람이 몇 명 있는 글을 쓴 사람 정도만 되어도, 얇고 오래갈 수 있다면 괜찮은 생존 전문가 아닐까. 나의 꿈은 생존 전문가. 눈에 띄지 않지만 길게 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커버 이미지 : Johann Hamza 'The Blacksmith’s For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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