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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Dec 20. 2017

끝까지 부를 수 없는 노래

언니네이발관 '아름다운 것'

문소리와 이선균이 나왔던 강이관 감독의 영화 '사과'는 언니네이발관의 '아름다운 것'의 뮤직비디오기도 하다. 이 곡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사과'는 달콤한 맛이 큰 로맨틱코미디 영화로 기억되었고, 언니네이발관의 밝은 곡인 '나를 잊었나요'를 가장 좋아하는 내게 '아름다운 것'은 밋밋한 곡으로 기억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사과'는 달콤한 줄 알았으나 속이 곪은 사과 같은 영화였고, 언니네이발관의 '아름다운 것'은 끝까지 따라부를 수도 없는 절절한 곡이었다. 


처음으로 설정했던 카카오톡 프로필사진은 언니네이발관의 앨범커버사진이다. 이때까지도 '아름다운 것'을 즐겨 듣지는 않았다. 다만 앨범커버가 심플하고 예뻐서 저장해두었을 뿐. 당시에 내 프로필사진이 언니네이발관라는 이유만으로 가까워진 이가 있었다. 언니네이발관을 비롯해서 다양한 밴드를 좋아하는 그 사람 덕분에 언니네이발관부터 시작해서 자연스럽게 다른 밴드들의 음악을 함께 듣고, 제비다방에서 공연을 보기도 했다. 


때로는 사람보다 음악이 더 선명해서, 그 사람의 이목구비보다 함께 듣던 음악들의 멜로디가 더 뚜렷하게 떠오르곤 한다. 언니네이발관의 '아름다운 것'이 좋냐고 물으면 많은 이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별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별 감흥 없다고 낙인 찍고 딱히 다시 들을 생각도 하지 않던 때였다.


결론적으로 그때의 끄덕임은 유효했다. 지금의 내게 '아름다운 것'은 특별한 곡이 되었다. 외국에 여행을 갈 때마다 챙겨가는 몇 안 되는 곡 중 하나다. 모국어가 그리운 순간에, 유독 듣고 싶은 가사가 이 곡 안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사랑했다는 말 난 싫은데 
아름다운 것을 버려야 하네

전주부터 시작해서 '아름다운 것'을 흥얼거려 본다. 분명 아무런 생각없이 흥얼거리는데 이 가사가 나올 때쯤 무너진다. 음의 높낮이 때문이 아니라 가사를 따라 차곡차곡 쌓인 감정이 목 위까지 턱하고 차오르기 때문이다. 이 곡의 가사를 감당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라는 생각으로 오늘도 이 노래의 후렴구를 마음으로 따라부르고 곡의 후주를 듣는다.


별 감흥 없던 곡이 특별한 곡이 되었다. 곡은 변하지 않았고 나는 변했다. 몇몇 부분에 있어서는 지난날의 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바뀌었다. 다시 본 영화 '사과' 속 달달한 연애의 순간보다 권태기의 무기력함에 더 마음이 가고, 제비다방의 공연소식보다 집에만 있을 수 있는 주말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계속해서 바뀔 것이다. 바뀌고 바뀌다 보면 언젠가는 이 노래를 아무렇지 않게 끝까지 부를 수 있는 날이 올까. 언젠가 이 곡도 사랑했었다고 과거형으로 무심하게 말하고, 아름답지만 버릴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하며 담담하게  따라부를 날이 올까.




출처 : https://youtu.be/526GtZF4MQw


그대의 익숙함이 항상 미쳐버릴 듯이 난 힘들어
당신은 내 귓가에 소근대길 멈추지 않지만
하고 싶은 말이 없어질때까지 난 기다려
그 어떤 말도 이젠 우릴 스쳐가

앞서간 나의 모습 뒤로 너는 미련 품고 서 있어
언젠가 내가 먼저 너의 맘 속에 들어가
하고 싶은 말이 없어지지 않을 거라 했지
그랬던 내가 이젠 너를 잊어가

사랑했다는 말 난 싫은데 아름다운 것을 버려야 하네
넌 말이 없었지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슬픔이 나를 데려가 데려가

나는 너를 보고 서 있어 그 어떤 말도 내 귓가에
이젠 머물지 않지만
하고 싶은 말이 없어질 때까지만이라도
서로가 전부였던 그때로 돌아가
넌 믿지 않겠지만

사랑했다는 말 난 싫은데 아름다운 것을 버려야 하네
난 나를 지켰지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그동안의 진심 어디엔가 버려둔 채

사랑했었나요 살아 있나요 잊어버릴까 얼마만에
넌 말이 없는 나에게서 무엇을 더 바라는 가
슬픔이 나를 데려가 데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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