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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Mar 09. 2018

시간으로부터 돌려 깎임 당하다

점심시간에 압구정 성형외과를 지나다

점심시간이 되면 압구정에 있는 식당을 찾아다닌다. 성형외과가 많아서 밥을 먹을 때마다 다양한 병원 간판을 본다. 병원마다 눈, 안면윤곽, 코 등 각 자신 있는 부위를 내세운다. 김치찌개, 순댓국, 쌀국수 등 가게 간판에 적힌 말과 몇몇 블로그의 평가가 식당 선택의 기준인 것처럼 성형외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물론 결과가 실망스럽다면 후회의 강도는 밥 한 끼보다는 수술이 더 강할 거다.


오늘 먹은 메뉴는 김치찌개다. 신김치로 만든 진한 맛을 기대했지만 단숨에 단맛이 느껴지고 끝맛은 짜서 자극만 남고 깊은 맛은 느낄 수 없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뒤에 팀원들과 함께 '맛있어 보이는 게 유일한 장점'이라고 평했다.


건너편 성형외과에서 사람이 나온다. 자기 얼굴의 장단점을 듣고 왔나온걸까. 내가 들어가면 얼굴의 장단점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할까. 자극적이지만 깊이가 없다고 하면 칭찬으로 받아들이면 될까. 아직도 입 안에 뒷맛이 남은 김치찌개처럼 내 얼굴도 맛볼 수 있다면 편할 텐데. 혀가 얼굴에 닿지 않는 게 아쉽다.


병원 홍보문구에서 보는 단어 중 가장 자극적인 단어는 '돌려 깎기'다. 얼굴 전체를 사과 깎듯이 돌려가면서 깎는 모습을 상상한다. 얼굴에 삶이 묻어난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하는데, 사과껍질처럼 얼굴에서 안 좋았던 삶의 순간이 잘려나간다면 병원에는 더 많은 이들이 방문할 것이다. 기억하고 싶은 일부와 지우고 싶은 팔 할로 이루어진 게 삶일 테니까.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한다. 돌려 깎는다는 말이 입에서 맴돌아서 그런지 칫솔로 치아를 깎아내는 것만 같다. 더 넓게 보자면 거울 속 나는 시간으로부터 돌려 깎이고 있다. 출근을 하고, 김치찌개를 먹고, 양치질을 하는 모든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거울에 비친 나도, 회사에서 만드는 서비스도, 지금 쓰고 있는 글도 시간에 깎이고 있는 내가 만든 결과물이다.


양치를 마치고 책상에 앉는다. 시간으로부터 돌려 깎이고 있다고 생각하니 안면근육이 당긴다. 다양한 표정을 지어보며 얼굴 근육을 풀고 오후 업무를 시작한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며 성형외과에 들어가는 사람처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시간으로부터 돌려 깎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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