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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Mar 16. 2018

칫솔모가 목에 걸려서 병원이에요

오랜만에 이비인후과에 갔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이비인후과에 가야 할지 고민했다. 목에 이물감이 너무 심하다. 어제 자기 전에 양치질을 하면서 칫솔모가 어마어마하게 빠졌는데, 그중 일부가 목에 걸린 느낌이다. 아픔보다 불편함 때문에 병원에 가기로 결심했다. 


집에서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이비인후과가 나온다. 병원에 들어와서 카운터에 접수를 하는데 처음 오는 건지 가물가물 하다. 내 이름을 말하니 생년월일을 불러주는 걸 보니 이미 방문한 적이 있다. 연말정산하면서 의료비 내역을 볼 때를 제외하고는 병원기록에 대해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 차례가 되자 기계음으로 내 이름이 불려진다. 환자 이름을 입력하면 알아서 나오는 시스템인가. 이전에 왔을 때도 내 이름이 기계를 통해 불렸을까.


의사는 좋은 첫인상을 가지고 있다. 구면이겠지만 기억이 초기화된 상황이니 처음이라고 하겠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와도 웃어줄 것 같은 인상이다. 싫어도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 사람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의사에게 어떻게 내 증상을 말할지 대략적인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어제 양치질을 하는데 칫솔로 왕복운동을 한 번 할 때마다 칫솔모가 우수수 떨어졌고요, 칫솔을 바로 버리긴 안 까워서 미련하게도 양치질을 계속해버려서 떨어진 칫솔모가 입 안쪽으로 갔나 봐요. 아무리 물로 헹궈도 안 빠져서 거울 앞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손가락으로 입 안을 살폈는데 칫솔모는 나오지 않았어요.


이렇게 정리는 해뒀으나 손가락을 쓴 이야기는 생략했다. 의사는 입을 크게 벌리고 '아' 소리를 내라고 했다. 입 안에 어떤 도구를 넣더니 착착착 입 안을 찍는다.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편도 쪽이 칫솔모에 긁힌 것 같다면서 너무 깊게 양치를 해서 그런 것 같다며 웃었다. 별 이상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 도움될 만한 가글을 처방해주겠다고 했다. 별 이상 없다는 말이 필수조건이고 가글이 선택조건으로 들려서 처방전은 버리기도 결심했다.


진료비를 내고 가려는데 이상한 기체가 나오는 기계 앞에 앉았다. 코와 입을 벌리고 이상한 기체를 2분 동안 맞았다. 기체의 정체를 궁금해하지만 핸드폰을 꺼내보긴 애매하고, 침을 삼킬 타이밍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 2분이 금방 지났다.


이물감은 여전하지만 별 일 아니라는 사실에 마음이 편하다. 병원에 가서 핀셋 같은 것으로 목 안쪽에 있는 칫솔모를 빼내고 통쾌해하는 상상을 했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별 생각 없이 병원에 갔는데 엄청나게 심각한 상황이었으면 어땠을까. 양치질을 하면서 떨어져 나간 칫솔모들이 누적되어서 발견된다던가. 


별 일 아니라는 위로가 나의 상황을 배려 없이 정리한다고 느끼곤 하는데, 병원에서 듣는 별 일 아니라는 말은 안도가 된다. 앞으로도 병원에서는 별 일 아니라는 말만 들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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