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est befor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초록 Aug 31. 2022

Best before?

삶을 가졌으니까,


고양이에게 줄 캔을 하나 사서 유통기한을 살펴보다가 멍하니 정신을 놓았던 날이 있다. 흔하게 보던 단어인데, 왜 유독 두 단어에 홀리듯 했는지 모르겠다. ‘Best before:’ 베스트 비포. 말인즉슨 ‘~하기 전에 ~하는 것이 가장 좋다’라는 건데, 어쩐지 그날따라 흔한 유통기한 표기 단어일 뿐인 그것들이 심금을 울리는 것만 같았다. 마음 속에 커다란 종이 하나 있는 것처럼, 댕댕댕.


내 인생에도 누가 best before 를 정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언제까지 무엇을 하고야 마는 것이 좋다고. 인간이란 앞날을 모른 채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뿐이라 아무리 계획을 하고 소망하고 꿈을 꾸고 시간을 쪼개어 열심히 쓴대도 놓치고 마는 것들이 있고 되돌릴 수 없는 일들이 있고 후회와 절망과 한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다. 기한이 있는 일들의 기한을 모르고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종종 두렵다.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간다는 사실은 모래를 쥐었을 때부터 이미 아는 사실이지만 이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은, 사랑하는 이들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은, 어떤 꿈과 기회는 나를 영원히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사실 같은 것은 도망치는 모래보다도 더 선명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까먹고 만다. 두렵기 때문에 까먹는지, 까먹고야 말아서 두려운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느날의 통조림 한 캔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던 것은, 마음 속 어딘가 걸려 있을 종이 한참이나 시끄럽게 울고 만 것은 그 두려움을 어째야 하는지 여전히 모르는 서른넷의 삶이 버거워서였던 것 같다.


Best before. 누가 써주지 않을 것이 자명하니까, 내가 써보자고 결심했다. 결심이라고까지 하기는 좀 거창한가? 별 건 아니고, ‘더 늦기 전에 무엇을 해보자, 하자,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면 좋을 거야’ 같은. 시시콜콜한 것들도 있겠고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종을 울리는 것도 있겠다. 쓴다고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내 손으로 여기 쓴 것들만큼은 언젠가(이 기획에다가 언젠가라는 말을 쓰면 어떡하나요) 꼭 전부 직접 하고 싶다. 열 개가 나올지 백 개가 나올지 천 개가 나올지 모르겠다. 계속 쓰고 쌓아서 한 권의 책으로도 만들겠다. 그리고 머리맡에 놓아두고 살아야지. 오래도록 이 삶을 소중히 여기고 내 삶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살아오며 품은 푸른 꿈들을 잊지 말아야지. 그런 마음으로 시리즈를 시작하려고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