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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인간관계로 힘들었던 당신에게

난 부실공사로 세워진 건물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by 서이은




인간관계, 중요하고 버겁기도 한 그 무거운 단어. 20대 전에는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만날 약속을 하지 않아도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비슷한 관심사, 비슷한 목표를 가진 공동체 안에서 작은 사회생활을 경험한다. 그 안에서의 인간관계는 사람들마다 다양하게 작용한다. 누구는 즐거운 교우 관계를, 누구는 매일매일이 괴로운 관계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적당’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마냥 즐겁지도, 마냥 괴롭지도 않은 적당한 정도의 인간관계를 유지했었다.


어찌 보면 다행이었던 적당함. 그게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20대 중후반쯤부터였던 것 같다. 서로의 스케줄이 다르고 생활하는 지역이 다르다. 성인이 되어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친구들. 친구들과의 인간관계가 힘들다고 느끼기 시작한 건 그들이 ‘밥벌이’를 하는 시기부터였다.


내가 20대 중반쯤이었을 때, 몸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또 그 후에 우울증까지 생겼었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때다. 그 시절 단톡방에 만나자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속이 답답해졌다. 나의 내면에서 조금씩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나의 한숨이기도 했고, ‘카톡’하고 울리는 알림 소리에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소리이기도 했다.

난 부실공사로 세워진 건물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그 건물의 골조는 ‘자신감’이었을까? 아니면 ‘자존심’이었을까. 아마 자존심인 것 같다. 거기에 금이 가니 인간관계부터 모든 게 다 어려웠다. 친구들과 같은 길을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시작도 못하고 있었으니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힘들고 우울한 그 마음을 난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 ‘난 아직 아무것도 없어’ 텅 빈 상태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입을 닫을 수밖에.


난 단지 친구들의 말을 듣고 있는 걸 택했다. 직장 생활을 경험한 적이 없으니 공감도 못하지만 그냥 들었다. 그게 최대한의 노력이었다. 내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 하지만 그 노력은 금을 메우지 못했다. 노력이 아니라 회피였던 걸까.


노력도 회피도 다 포함해서, 나는 금이 간 그 건물의 보수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어느덧 30대가 넘어선 나는 조금은 더 튼튼한 건물이 되어가고 있다. 회사의 명함도 직급도 없어서 작아지는 20대의 나는 없다. 그런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어도 괜찮다. 작년에 잠깐 일했던 곳에서 올해도 같이 일하지 않겠냐고 연락을 주는 사람이 있다.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고 무엇보다 내가 나를 인정하고 수긍하기 시작했다. 그게 중요하다. 인생을 걸어가는 속도도 방향도 다 다른 법이다. 20대의 나는 그걸 무시하고 친구들과 내 상황을 비교만 했으니 메울 수 없는 금이 생긴 거겠지.


‘인간관계’라고 하면 ‘사람과 사람, 나와 다른 사람’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내 관점으로 말하자면 나보다 다른 사람에게 조금 더 초점이 갔던 것 같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볼지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이제는 아니다. 인간관계 그 이전에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를 잘 돌봐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내가 나로 있지 못할 때 타인과의 관계는 어렵고 괴로운 법이다.


앞으로는 어느 정도 단단하게 메꿔진 나로서 인간관계를 이어나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또 금이 갈 수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난 나란 건물을 보수할 수 있는 유일한 건물주이니까.



깊은 숲에 '서' 이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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