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여성의 지우고 싶은 토요일
종이 구기듯 얼굴을 구겼다. 얼굴 뿐 아니라 모든게 구겨진것 같았다. 잠을 너무 잔걸까. 내 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디 나사 하나 빠진 로봇처럼, 뭔가 삐그덕거렸다. 평일의 피로감을 풀기 위해 알람까지 끄고 잤었다. 하지만 토요일 아침의 내 몸은 오히려 피로를 더 얹은 느낌이었다. 무거운 몸과 가라앉은 기분으로 동네 단골 카페에 갈 준비를 했다. 토요일이라고 마냥 늘어지고 싶은 마음은 없다. 블로그에 올릴 글도 써야 하고, 그림도 그려야 한다. 평일에 일하느라 뭐 하나 한 게 없으니 쉬는 날 해야 했다. 순간 쉬는 날이 맞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뭐, 돈 버는 날이 아니면 쉬는 날인 거겠지.
집을 나와 3분 거리의 카페로 향했다. 날씨마저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살짝 먹색이 낀 하늘이 토요일의 나와 닮은 듯했다. 100보도 안 갔을 때였다. 평일, 일하러 갈 때 드는 가방이 아닌, 다른 가방을 챙기면 난 종종 안경을 빼먹고는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는 신경 써서 안경집을 챙겼다. 하지만 문득 생각나는 한 가지. ‘나 마우스 안 챙겼네’ 그나마 빨리 깨달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 챙겼다. 이게 전조였을까. 아니면 아침에 일어난 후 내 몸 상태부터가 시작이었던 걸까? 삐그덕대는 나의 하루는 이제 시작이었다.
조금 더 걸으면 좋지, 뭐.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며 도착한 단골 카페는 사람이 꽤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자리에는 먼저 온 손님이 앉아 있었다. 난 남은 자리 중에 그나마 편해보이는 자리로 갔다. 테이블이 약간 작았지만 등 뒤가 막혀있어 집중하기 좋아 보였다.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하나 둘 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노트북과 마우스, 그리고 안경집. 안경집을 열었을 때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안경이 없었다. 텅 빈 안경집을 보며 허탈했고 살짝 짜증도 났다. 마우스 때문에 이미 한번 집에 돌아갔다가 나온 상황이지 않은가. 그때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집에 다녀와야 하나’ 1초 생각하고 접었다. 세상이 조금 흐릿하게 보여서 생기는 불편함보다 나의 귀찮음이 더 강했다. 사실 짜증이나서 움직이기도 싫었다. 안경 놓고 다니는게 처음도 아니고 나름의 대책도 있었다. 멀리 있는 것을 봐야 할 때는 핸드폰 카메라를 켜고 줌을 최대한 당기면 된다. 모니터에 글이 흐릿해서 힘들면 글씨를 키우면 그만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도 있듯이, 없으면 없는 대로 적당히 타협하고 살아야 한다. 아침부터 계속해서 삐그덕 하는 하루를 어떻게든 진정시켜야 했다. 그게 하루인지 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금방 나온 커피가 나를 진정시켰다. 빨대를 타고 진하고 시원한 라떼가 내 입으로 넘어왔다. 내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던 하루 중 유일하게 예상했던 대로의 맛이었다. 일어나자마자 빈속으로 나왔기에 ‘피넛버터 초코 쿠키’도 하나 같이 시켰다. 그래, 나에게는 당이 필요했다. 초콜릿의 달콤하고 묵직한 맛과 피넛 버터의 고소함이 나를 위로했다. 이제서야 다른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루 종일 삐그덕대고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지만,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마음을 가다듬고 글을 쓸 준비를 했다. 커피와 쿠키를 한쪽으로 치우고 노트북을 열고 마우스 자리도 잡았다. 그렇지만 가다듬은 마음이 다시 한번 어그러졌다. ‘좁아디지겠네’ 고운 말이 나가지 않았다. 이 자리는 너무 좁았다. 마우스를 사용하는 내 모습이 너무 우스워 보일 게 뻔했다. 어깨 한쪽을 완전히 접은은 채 마우스를 사용해야만 했다. 토요일, 카페에 앉아 안경을 쓰고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 모습은 없다. 거북목인 채로 흐릿하게 보이는 글자를 보려 인상 찌푸린 30대 여성이 있을 뿐이다. 여러모로 기분 나빠 보이는 한 여성이 우중충하게 카페에 자리하고 있었다.
내 하루가 왜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 걸까. 이번 토요일은 마치 어제 시켜 먹은 배달 음식과도 같았다. 가게에서 음식을 담은 비닐봉지를 어찌나 꽁꽁 묶어뒀던지. 내 손으로 도무지 풀 수가 없었다. 비닐봉지를 재사용 할 생각이었는데, 풀지 못해 가위를 들었다. 싹둑. 비닐봉지는 쉽게 잘렸고 재사용하기 어려운 형태가 됐다. 내 하루도 잘라야 하나. 어떻게든 풀어봐야 하나. 고민해봤다. 키보드와 나의 뇌를 같이 두드렸다. 하지만 그 어느것도 나에게 답을 주지 않았다. 안경이 없어서 일까, 뇌까지도 흐릿해진 느낌이었다. 키보드에 백스페이스 키만 눌렀다. 하지만 내 하루는 그럴수가 없다. 에라이. 나한테도 가위가 필요했다.
- 깊은 숲에 '서' 이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