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지 못한듯 안녕하신 투잡 인생
나는 돈버는 앵무새다. ‘안녕하세요’를 반복하고 자잘한 일까지 하는 수퍼 앵무새. 그 앵무새는 투잡을 시작하면서 탄생했다. 집에 있는게 제일 좋고, 사람은 하루에 10명 이상 보고 싶지 않은 집순이였는데 이게 무슨 일일까. 내가 내 발로 나가 일을 잡았다. 그것도 두가지를. 하필이면 사람을 오지게 많이 보는 일이다. 두 일 모두 인포데스크에 앉아서 사람을 상대한다. 하루에 적게는 50명, 많으면 100명 이상을 보게된다.
사람은 그만보고 싶지만 돈을 벌고 싶으니 어쩔 수 없다. 일을 하며 인간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생각해 보는 시간까지 덤으로 얻게 됐다. 체력적으로 분명히 힘이 드는 날들이지만, 돈 말고도 얻을 것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앵무새가 돈벌며 인간 공부까지 하다니, 좋은 일.. 맞겠지?
왜 좋은 일일까. 그건 바로 사람에게 느끼는 ‘호감’이라는 감정이 아주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남의 눈치를 엄청 보면서 살던 과거가 있어서일까. 나는 남들에게 항상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끊임없이 주위를 살폈다. 호감이라는 단어에 너무 사로잡혀있던게 아니였을까.
지금이야 남의 눈보다 나에게 더 집중하는 30대가 되었지만 그때는 그랬다. 하지만 사람을 많이 겪고 상대하는 지금, 호감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관계에서 호감이라는 감정을 살짝 심어주는 건 간단하다. 웃으면서 인사하기. 대단한것도 아니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안녕하세요’ 그 한마디가 별 것 아니면서도 대단하다. 일하는 사람으로서 인사는 절대로 빼먹을 수가 없다. 나는 한마리의 앵무새가 되어,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마치 그 말 하나는 자신있게 익혔다고 자랑하듯이 말이다. 그에 돌아오는 반응이 참 제각각이다.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는 사람, 고개만 끄덕이는 사람, 무표정으로 받아주는 사람. 그리고 웃으면서 인사를 받아주는 사람. 정말 다양하다.
꼭 인사를 받아줄 필요는 없다. 무시하고 지나쳐도 괜찮다. 앵무새는 딱히 상처받지도 않는다. 하지만 웃으면서 돌려주는 그 말들은 기억에 남는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얼굴과 감정이 나에게 자리하게 된다. 그 순간이 나를 앵무새에서 사람으로 돌려놔주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물론 뱉을 수 있는 사람도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상대방이 웃으면 나도 덩달아 웃게 된다. 이번에는 앵무새가 아닌 강아지가 된듯이 말이다. 눈으로 귀로 받은 그 인사는 내 가슴에 저장이 된다. 그분들이 어떤 문의를 한다거나 부탁을 나에게 하게 된다면 난 더 친절하게 응대를 하게 될 것이다. 의도한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사람은 그렇게 된다.
딱딱한 분들에게는 조심스러워지고 다정하신 분들에게는 나도 다정해진다. 주는 대로 받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물건만이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단지 말로 끝나는 게 아니라 마음과 같이 전해지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주변사람들에게 어떤 말과 감정을 건냈을까.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기억할까. 되돌아 생각해 보면 인사는 안 빼먹고 하지만 웃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성적이고 소심했던 과거의 나는 그랬다. 조금 더 웃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서른이 넘어서야 미숙했던 내 어린 시절이 눈에 보인다.
낯가림이 심해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편히 있을 수 없었다. 말을 하지 않을 뿐 불편하다는 표현을 온몸으로 하고 있는 어린아이였다. 소심하지만 기분을 숨기지 못했던 10대와 20대 시절을 보냈었다. 안쓰럽기도 하고 흑역사인 것 같기도 한 그런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30대의 나는 웃으면서 인사를 건넬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일을 하다보면 소리 내 인사를 하는 게 부담스러운 아이들을 자주 본다. 나의 과거와 닮은 아이들이 수줍게 인사하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인다. 아이들의 그 노력을 알아차릴 수 있는 어른이고 싶다. 전하는 말과 감정도 중요하지만 받는 사람으로서 오해 없이 잘 받아주고 싶다.
목소리가 작아도 괜찮다. 소리의 크기보다 거기에 함께하는 감정이 더 크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좋은 점수를 얻게 되듯, 마음을 담아 계속 전하다 보면 감정도 더 잘 전달된다. 이제는 어쩔수 없이 하게 된 인간 공부가 아니다. 돈만 보고 투잡하는 앵무새에서 벗어나 다정한 인간으로서 이 공부를 이어나가고자 한다. 마음에는 마음으로 답할 수 있는 인간이고 싶다.
-깊은 숲에 '서' 이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