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장소에는 타인이 없다
‘i 성향의 집순이는 모두 자신의 방을 제일 좋아한다.’ 신빙성 있는 말인 것처럼 들리지 않는가? 그냥 사실인 듯 말해본 예상일뿐이다. 모두까지는 아닐지라도, 일단 나는 제일 좋아하는 장소가 ‘내 방’이 맞다. 내향적인 성격, 예민함, 높은 불안도 이런 특징들의 덩어리인 나는 장소에 민감하다. 단지 집순이라서 내 방이 좋은 걸까? 가장 큰 이유는 아니다. 집순이를 뺀 나머지 특징들이 크게 작용한 것 같고, 몇 가지 다른 이유들도 있다. 나의 성향, 특징들이 모두 어우러져서 좋아하는 장소가 ‘내 방’ 일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를 뺀 내 방은 어떤 곳일까. 남들이 보기에는 정말 매력 없는 방 일 것 같다. 이 집에서 제일 작은 방. 룸메이트로 강아지 순대가 있다. 귀여운 강아지의 존재는 플러스 요소일 수도 있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이 방의 문은 일주일 중 총 4시간 정도 제외하고 항상 열려있다. 강아지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사람의 사생활 보호는 휴지 쪼가리 취급이다. 최소한의 보호로 문에 천을 하나 달아두기는 했다. 그리고 불행히도 이 방의 주인은 맥시멀 리스트다. 작은 방에 물건 욕심 있는 맥시멀 리스트라니. 내가 생각해도 참 좋은 게 드문 방인데, 난 왜 내 방이 제일 좋은 걸까.
방이 작고, 사생활 보호가 안되더라도 그건 다 내 선택이다. 내 강아지가 혹시나 자주 짖을까 일부러 옆집에서 가장 먼 방을 택했다. 그 전의 나는 첫째라는 이유로 항상 동생보다 큰 방을 차지했었다. 조금 아쉬워도 내가 선택한 이번 집 내 방. 크기를 택하는 것보다 내 마음이 편한 쪽을 택하는 게 정답인 것 같았다. 문을 항상 열어두는 것도 좀 힘든 선택이지만 강아지가 화장실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어야지 어쩌겠는가. 나가고 싶다고, 들어오고 싶다고 짖는 소리를 수시로 듣느니 열어두는 게 맞다. 나만 쓰는 방이 아니다. 내가 선택했기에, 안 좋은 점들을 감수할 수 있다. 반대의 선택을 했다고 해도 좋지 않았을거다. 순대랑 같이 쓰지 않는 큰 방. 나에겐 매력이 덜 하다. 어떤 선택이든 아쉬운 점은 존재한다. 조금 덜 아쉬운 선택을 내가 했기에 난 괜찮다.
내가 선택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내 성향, 성격은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예민해서 눈치도 잘 보고, 불안감 역시 높은 나는 익숙한 곳을 매우 선호한다. 2년 전 집에서 5분 거리 작업실을 사용한 적이 있다. 혼자만의 작업실은 아니고 다른 2명의 선생님들과 같이 사용을 했는데 너무 불편했다. 다른 분들은 자주 오시는 게 아니라 거의 혼자 썼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왜 그리 적응이 안 되던지. 타인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사실, 그래서 추한 몰골로는 있을 수 없고, 인간 형상은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나에게는 결국 내 방뿐인 걸까? 인간이 덜 된 느낌으로 살아도 나를 사랑해 주는 강아지랑 오래 살아서인가, 타인의 존재는 그 공간에 있는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나는 큰 변화가 없이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는 게 편한 사람이다. 예측 가능하고 대처하기 쉬운 환경이 편하지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 같은 건 심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그런 나에게는 정말 집, 내 방만 큼 편한 곳이 없는 것 같다. 이쁘고 새로운 장소보다는 편안한 장소가 더 우선이다. 좋아하는 물건, 취향들은 많은데 마음에 남아있는 장소가 너무 없는듯 해서 아쉽다. 나에게 새로운 장소들이 생겼으면 좋겠다. 오래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장소. 나의 성향, 특징을 제외하고도 단지 장소 하나의 힘으로 내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그런 곳. 물론 그런 장소들이 생기려면 약간의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편함만을 추구하다가는 나이 들어서 인생이 아쉽지 않을까? 스트레스 받는다고 피하면 난 평생 익숙한 곳에만 머무르고 있을 것이다. 이미 편한 장소에만 안주하려고 하지 말고, 넓히려고 노력하며 살아가도록 해봐야겠다.
- 깊은 숲에 '서' 이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