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차의 푸념
간단하게 독일 약대의 시스템을 설명하자면, 대학과정 4년 + 임상실습 1년을 합친 5년제 대학이다.
4년의 대학과정은 다시 Grundstudium(예과) 2년, Hauptstudium(본과) 2년으로 나뉘게 된다. 각 과정이 끝날 때마다 국가시험(Staatsexamen)을 치게되는데, 3번의 시험을 거치야만 비로소 약사 라이선스를 받을 수 있다.
만 3년정도 독일에서 약대를 다니고 있는 입장에서 주관적(+주변 사람들의 증언)으로 보자면, 학기 중 꾸준히 공부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 각 시험의 난이도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방대한 시험범위다. 학기당 시험이 적게는 3개에서 많게는 9개까지 있는데, 과목당 파워포인트 몇백장이 기본이다. 시간 안에 그 모든 정보를 이해하고 암기하기란 매우 힘들기에, 시험을 내는 교수님의 성향과 기출을 잘 파악하는 것이 제법 중요했다...
그리고 동기들과 교류하며 시험의 난이도를 파악해 시간분배를 적절히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이건 한국의 대학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 다른 문제는 시험과 실험일정이 시간상 꽤나 빡빡하다는 것. 사실 이게 약대를 특별히 어렵게 만드는 주요 요인인 것 같다.
각 학기마다 강의가 얼추 진행되면 2주간 실험실에서 진행되는 실험이 있는데, 그 실험이 끝나면 바로 시험기간이 시작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럼 실험을 하면서 시험공부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쉽지 않다. 실험을 준비하는데에도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다가,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 전후까지 꼼짝없이 랩에 갇혀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10시간 내내 실험실에서 서있으며 하루종일 실험을 하다 보면 녹초가 되어 공부를 할 여력이 없다.
실험을 끝내고 시험공부를 시작한다 가정했을 때, 각 시험마다 길게는 이주일에서 아주 짧게는 이틀정도밖에 시간이 남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는 1학년 때 이 사실을 간과했고, 이틀씩 한 시험씩 벼락치기를 해서 시험 3개를 가까스로 붙었던 경험이 있었다. 하루 18시간씩 공부하고 장렬히 침대에서 기절했다. 시험기간 때마다 이렇게 고등학교에서 공부했더라면 의대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 입학했을 때, 나랑 같은 동기생이 대략 150명 정도였다.
6학기가 지난 후, 나는 한학기 과정을 재수강 해야 했기 때문에(유급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현재 5학기 과정을 거치고 있다. 그런데도 나랑 같은 과정을 밟고있는 동기가 대략 30명-40명이나 된다. 한학기 위에 있는 동기들도 약 40명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2학기나 과정이 밀린 동기도 꽤나 많다.
이유는 시험의 낙제율이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모든 시험은 절대평가로 점수가 매겨지는데, 전체점수의 50%를 넘겨야만 재시험 없이 시험을 패스할 수가 있다.
50%을 못 넘기면? 예외없이 무조건 재시험이다. 만약 중요한 시험을(대부분 화학관련 과목) 학기 내에 통과하지 못하게 되면 다음학기에 재시험을 쳐야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한학기가 밀리게 된다.
그렇다고 재시험 일정이 있을 때마다 무조건 도전해보기에도 어렵다. 과목마다 재시험 횟수 한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 횟수는 대학마다 다른데, 많으면 6번까지 기회를 주는 대학도 있으나 3번 정도가 보통이다.
만약 한 과목에서 3번이상 낙제한다? 그럼 그 학생은 제적이 된다. 독일의 어느 약대에서도 약학을 배우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시험을 칠 때마다 붙을 수 있을지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
한국의 약대는 얼마나 어려운지 경험해보지 못해서 직접적인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독일 약대를 진학하고 싶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내가 약대에서 어렵게 느끼는 요소들을 정리해봤다.
만약 조금 힘들어보인다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내 동기들을 보면 가끔 도대체 어떻게 이 학년까지 올라올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인물들도 제법 있다.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여유롭게도 해낼 수 있는 만한 커리큘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