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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초 Jan 30. 2017

가난보다 가혹한 시선

불친절한 사회


  사회복지는 크게 잔여적 복지와 제도적 복지로 나뉜다. 잔여적 복지는 개인이나 가정, 시장경제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여 파생되는 문제를 일시적, 임시적으로 보완해주는 안전망의 개념이며 제도적 복지는 현대 사회에 발생하는 문제들이 개인이나 가족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사회를 유지하는데 복지가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틀 아래,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개념이다. 전자를 소극적 복지 후자를 적극적 복지라 부르기도 한다. 한국은 잔여적 복지의 개념이 강한 나라이며 OECD 국가 중 공공사회복지 지출 수준이 가장 낮은 나라이다.


 사회란 수많은 사람과 그들의 각기 다른 경험, 문화, 종교, 철학, 이념 등으로 이어져있어 복잡한 성질을 띨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사람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문제는 바로 그 '다름'이란 것이 자본주의를 만나게 되면서부터이다. 세상은 크게 노동력을 가진 사람과 그 노동력을 살 수 있는 사람으로 나뉘게 되었고 그것은 이내 경제력, 교육 수준 등의 차이를 낳게 되었다. 이 차이는 재생산의 반복으로 인해 개인 간의 차이에서 가족 간의, 계층 간의 차이가 되어버린지 아주 오래이다. 이 지독한 격차는 개인의 힘만으로는 좁힐 수 없기 때문에 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서비스의 마련과 타인의 친절한 관심이 필요하다.


 나는 사회복지 분야에 종사하지도 않고 남을 가르칠 수 있을 만큼의 전문 지식을 지녔다고 자부하지도 않지만 최근 원격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며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우리의 관심이 닿지 않는 곳에는 생리대 살 돈이 어 수건을 깔고 누워있는 아이, 생리대 대신 신발 깔창을 교복 안에 욱여넣는 아이,  급식비를 제때 내지 못 생수 허기달래는 아이, 제대로 된 운동화 한 켤레가 없어 체육 시간에 벌을 서는 아이가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관심의 사각지대에서 뒤를 돌면 대한민국 실세의 딸로 태어난 애가 "돈 없는 너희 부모를 탓하"라며 떠들고 있는 꼴을 볼 수 있다.


 노력할 기회 조차 주어지지 않는 사람과 노력 없이 모든 걸 다 가질 수 있는 사람, 이들 모두가 같은 나라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니 정말 거짓말 같은 일이다. 이런 뉴스를 아침저녁으로 보고 있자면 나의 10대 시절, 기초생활수급가정의 딸로 살면서 겪어야 했던 불안과 상처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무료급식 먹는 애는 손 들어"


 엄마가 처음 기초생활수급비를 받게 됐다고 말했을 때 난 그게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전혀 알지 못했다. 교육비와 생활비 일부를 지원받을 수 있다고 해서 "좋은 거네" 하고 짧게 답했을 뿐, 내가 학교 생활 내내 조사 대상이 되거나 차별 대상이 될 거라는 상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새 학년이 시작되고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교탁에 앞에 선 담임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료급식 먹는 애는 손 들어"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안 드는 건가 싶어 식은땀이 나려던 찰나 어떤 애가 작게 손을 들었고 그 뒤로 두어 명 정도 더 손을 들었다. 나는 내가 무료급식을 먹는 건지 아닌지 헷갈려서 망설이다가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엄마가 급식비 지원에 대한 말을 해주긴 했지만 늘 그렇듯 어른들끼리의 일이지 내가 자세히 알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흘려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담임 선생님은 왜 한 명이 비나며, 이름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손을 들었던 애들이 자기 이름에 대답을 마치고 곧 내 이름이 들렸다. 내가 대답을 하자 선생님 반 애들 대부분이 나를 쳐다봤다. "넌 왜 손 안 들어" "죄송합니다" 난 뭐가 죄송했던 걸까. 제 때 손을 들지 않아서? 아니면 무료급식을 먹어서? 확실한 건 그날 이후로 내 자존감이 완전히 무너졌단 거다.


 새 학년, 매 학기마다 반복되는 무료 급식 수혜자 조사 때문에 친구들은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 그래도 나는 가난하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썼다. 친구들과 함께일 땐 되도록이면 선생님을 피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였다. 중학교의 마지막 방학식을 앞둔 어느날, 친구와 함께 복도를 걷고 있었는데 담임 선생님이 날 붙잡고 학비 지원이 어쩌고 하는 말을 꺼내신 적이 있다. 난 그때 선생님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거의 도망치다시피 자리를 떠버렸다. 선생님은 고등학교는 중학교와 달리 수업료가 있으니 동사무소에 잘 알아보라고 일러주시려던 거였다. 하지만 난 어린 마음에 자존심이 앞섰다. 죄송한 마음이 없던 것도 아니지만 '조용히 불러서 얘기하면 안 되는 걸까'하는 불만이 훨씬 컸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급식비며 수업비를 지원받았다. 정확히 기억하건대 고등학교 2학년 때 수업비 지원받는 애들을 모아놓고 감사 편지를 쓰게 하는 일도 있었다. 편지를 받게 될 사람이 누구인지도 몰랐고, 그저 편지를 잘 쓰면 학교 홈페이지에 게시해주겠다고 했다. 편지를 제대로 써서 낸 애들은 서너 명뿐이 되지 않았고 나를 포함한 열몇 명의 애들은 편지를 쓰지 않았다. 그 애들은 무슨 마음으로 편지를 썼고 또 무슨 마음으로 쓰지 않았던 걸까? 문득 궁금해진다. 그때의 나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찜찜함과 서러움으로 뒤엉켜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우리에게 편지 쓰기를 시켰던 선생님의 얼굴도 밝지만은 않았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편지를 써야 했을까.  



 앞서 언급했듯 한국은 잔여적 복지 형태의 나라이다. 특정된 사람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그 특정인은 무리 안에서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나는 그 점이 싫었다. 눈에 띄지 않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는 없는 건가? 나는 그저 약간의 배려가 필요한 10대였을 뿐인데, 가난은 나의 선택이 아니었는데, '넌 지금 남의 세금으로 밥 먹는 거'라던 반장 엄마의 말이 가슴에 박혀 죄인처럼 학교를 다녔다. 지금 생각해도 전혀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얼마 전 학교 급식실에서 '식사 카드'를 찍었다가 급식비가 미납되었다는 경고음이 울밥을 먹지  학생의 이야기를 기사로 접했다. 내 카드에 돈이 없는 건 나만 알면 되는 일이지 굳이 경고음까지 울리게 해서 어린 학생에게 망신 줄 필요는 없었다. 만약 같은 자리에서 가난한 집 아이과 부잣집 아이가 동시에 미납 경고음을 들었다면 어떨까? 그 당혹감의 무게가 같을까? 게다가 그곳에 모여있던 다른 애들이 두 아이의 경제 상황을 다 알고 있다면? 과연 그 둘을 바라보는 시선이 같을까?물론 그럴 의도로 단말기 설 한 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에는 편리함보다 다른 걸 우선시해야 하는 순간이 존재한다. 때로는 적극적 조치보다 소극적 조치가 필요한 것이다.


 한국은 앞으로도 아주 오랜 시간 잔여적 복지의 형태로 운영될 것이다. 잔여적 복지와 제도적 복지 중 절대적으로 좋기만 한쪽은 없다. 어떤 사회적 시스템을 갖추는가 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인식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사회적 시스템에 분노한 게 아니라 무신경한 어른들에게 분노한 것이다. 공개적으로 무료 급식 먹는 애과 그렇지 않은 애들을 구분하고, 그런 애들만 따로 모아 억지로 감사 편지를 쓰게 하고, 소풍 때 선생님 김밥을 싸왔던 내 친구에게 "이것도 정부미로 싼 거니?"라고 묻는 어른들에게 분노했던 것이다.


 우린 단순히 무료 급식이 아니라 죄책감이나 부끄러움 없이 밥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고, 가난이 자랑스러울 리 없는 사춘기 학생을 다독여주는 선생님의 친절이 필요했다.


 우리는 그저, 약간의 배려가 필요했을 뿐이다.

 지금 자라고 있는 아이들 또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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