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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초 Jul 11. 2019

그냥, 이라는 말의 무게

이렇게 무거울 줄이야

어릴 적 학교에서 돌아와 힘들어하는 나에게 엄마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그냥, 이라고만 답했다. 엄마는 그 단어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그래도 나는 계속 그냥, 그냥. 이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한숨을 내쉬고 돌아서는 엄마에게 해줄 말이 딱히 없었다.


그땐 알지 못했다. 그냥, 이라는 말의 무게를. 십 수년이 흐르고서야 나는 깨닫는다. 그냥은 가벼운 말이 아니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생각해서 별 일 아니라는 듯, 작은 돌멩이 하나 톡 던진 거지만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바위에 가슴이 짓눌린다. 소중한 사람이 전혀 괜찮지 않은 모습으로 내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려 할 때 그 바위는 산이 된다.


그냥. 이 세상에 정말 '그냥 한 일'이라는 건 없다. 머리가 시켰거나 가슴이 시켰거나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시켜서 하는 일이다. 그러니 소중한 이가 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니? 왜 이런 짓을 했어?라고 물어올 땐, 그냥이라는 말 보다 나도 모르겠어.라는 말을 하는 게 낫다. 차라리 그게 낫다.





오늘 아주 소중한 사람의 신체에서 자해 흔적을 발견했고 그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전부 '그냥'이었습니다. 저도 한 때는 그런 충동을 느낀 적이 있었기에 더 깊게 캐묻지는 않았으나 제가 신경을 많이 못 써줬다는 죄책감에 마음이 좋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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