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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초 Jan 08. 2020

두 번 죽는 순간, 염.

염 하는 것을 처음으로 보다.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급하게 연락을 받고 아침 기차로 시골에 내려가 상복을 입었다.


이튿날 오전에 장례 업체 매니저가 시키는 대로 모든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시체를 염한다고 했는데 그 말의 정확한 뜻을 찾아본다는 게 여태 깜빡했다. 아무튼 외할아버지의 죽은 모습을 아주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7년전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난 고작 열 세살이어서 엄마는 내게 견디기 힘들면 굳이 아빠의 시체를 볼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난 아빠를 염 하는 걸 보지 않았다. 그러니 누군가의 죽은 몸을 모는 건 처음이었다.


그 장면은 꽤나 큰 충격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아주 평온한 얼굴로 곧게 누워계셨으므로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았지만 그 뒤, 그의 육체에 행해진 일은 보는 이가 고통스러웠다. 기다란 천으로 얼굴을 돌돌 감싸고 봉투 같기도한 천을 또 씌운다. 두 명의 장정이 함께 시체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아주 조심스러운 손길로 온몸을 꽁꽁 싼다. 아주 강하게, 물건을 묶어도 저렇게 세게 묶진 않을텐데 싶을 만큼 세게. 양 팔을 옆구리에 바짝 붙이게 하고 천천으로 돌돌 감쌀 때, 나는 염 한다는 행위 자체가 진짜 사람이 죽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이미 죽은 몸을 그렇게 하는 것이지만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방금 전까진 그저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는 나의 외할아버지였는데 이젠 천쪼가리에 꽁꽁 묶여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는, 한 덩어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보다 그 장면이 내겐 더 슬프고 비현실적이었다. 사람을 최소한으로 축소 시키는 듯한 행위를 바라보면서 여행 가방에 무리해서 물건을 구겨 넣는 장면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문득 열세 살의 내가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않은 건 잘한 선택이라고 여겨졌다. 그 당시 한 이모께서 내게 "그래도 네 아빠인데 가서 보지 않고." 라는 말을 한 게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었는데 이제서야 확신이 든다. 보지 않기를 잘 했다. 내 아버지가 천에 꽁꽁 쌓여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버리는 과정을 나는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열세 살의 내가 감당 할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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