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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초 Oct 30. 2020

네가 좀 이해해

이해하는 사람 따로 있나요



내 지인 중에 아마 큰 일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평생을 알고 지내야할 중년의 남자가 한 명 있다. 그야말로 피할 수 없는 사람. 그와 나는 서로 맞춰가야 하는 사이이다. 안 맞춰도 그만이긴 하지만, 난 정말 그가 나에게 맞추지 않아도 되고 나 또한 맞추려는 노력을 하고 싶지 않지만 그가 강력하게 원한다. 서로에게 맞춰 끈끈해지기를. 톱니바퀴처럼 우리 사이가 딱딱 맞아떨어지기를. 그러기 위해서는 결코 남발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난 그 말을 "네가 좀 이해해." 라고 생각한다.


이해. 


상대방이 해주면 고마운거고 아니면 안 해주면 그냥 그렇구나 하면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만의 생각인 것 같다. 하긴, 사람들 하는 생각이 다 다르니까.


하지만 그는 늘 입에 달고 산다. 나는 옛날 사람이라 이렇다. 네가 이해를 해라. 나는 원래 모든 주변인들에게 그렇게 한다. 그러니 너도 이해를 해라. 나도 아는데 그게 잘 안 고쳐진다. 네가 이해를 좀 해라. 


같이 맞춰가기를 원하는 사람의 태도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아마 본인은 모를 것이다. 나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것을. 강요하지 마시라 말을 하면 뭐라고 대답할지 뻔하다.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노력하자는 얘기였다고. 절대 강요가 아니라고. 내 표현 방식이 널 오해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지만 그건 네가 좀 이해하라고.


나는 공동체 생활이 싫다. 규칙을 따르는 건 좋다. 공동체를 위해 제 몫을 다 하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지 않는 것 또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타고난 성향, 유지하고자하는 외형, 나름의 신념 등에 대해서는 고치려 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을 고치려드는 행동은 공동체를 위함이 아니라 그저 자신을 위한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이고 이기적인 사고다.


이해라는 단어를 상대방에게만 적용시킬 줄 아는 사람은 위험하다. 가까이 두기 곤란하고 껄끄럽다. 자신이 요구하는 이해는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이 요구하는 이해는 억지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나는 피할 수 없는 이 중년의 남자가 이해라는 단어를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시킬 수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내가 이해해야지. 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적어도 지금은 확실히 아니란 걸 알겠지만. 살면서 그 어떠한 것도 강요 받고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를 참 뻔뻔하게도 여기저기에 들먹인다. 본인에게만 제외하고.


이 사람을 앞으로도 곁에 둬야한다는 사실이 가슴을 콱 막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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