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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초 Nov 02. 2020

칭찬은 유전이다.

엄마의 김밥



얼마 전 몸이 심하게 아팠던 나는 엄마에게 김밥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엄마의 김밥은 투박하고 간이 안 맞는다. 언제는 짜고 언제는 싱겁다. 참기름을 바르거나 깨를 뿌리는 마지막 의식은 쿨하게 생략하신다. 요즘 프렌차이즈 분식에서 파는 5천원짜리 김밥에 비하면 맛도 모양도 떨어지지만 나는 엄마의 김밥을 좋아한다.


엄마는 나를 위해 김밥을 만들었다. 언제나 열 줄. 그것들은 적당한 두께로 썰려 쟁반 가득 쌓였다. 아침에도 먹고 점심에도 먹었다. 하지만 꽤 많이 남아버려서 엄마는 그것들을 가지고 할머니 댁에 갔다. 할머니 댁엔 이모 두 분과 삼촌이 계셨는데 모두 엄마와 판박이다. 얼굴도 성격도 말투도. 


그들은 모두 칭찬을 할 줄 모른다. 


하나 둘 김밥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거리더니 목구멍으로 넘기기도 전에 평가를 늘어놓았다. 너무 싱겁다. 뻣뻣하다. 밥에 간이 하나도 안 됐다. 밥을 더 고슬고슬하게 지었어야한다. 이건 완전히 잘못 만들었다. 누구 하나 잘먹었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출출했는데 네 덕분에 간식 거리가 생겼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웃긴 건 그 세 분이서 엄마의 김밥을 몽땅 먹어치우셨다는 것이다. 쟁반에 붙은 밥풀 한 알까지 손가락으로 뜯어 먹을 거라면 적어도 먹다보니 맛있네, 한 마디는 정도는 할 수 있었을텐데.


그런 남매들이다. 우리 엄마는 7남매 중 다섯째인데 집안 내력처럼 모두가 칭찬에 인색하다. 그런 엄마의 손에 자란 나라고 다를까. 난 밥상머리에서 맛있다 라는 소리를 해본 적이 별로 없다. 맛있긴한데 굳이 말 할 필요를 못느낀다. 내가 남기지 않고 다 먹는 것으로 이미 맛있다는 소리를 한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 김밥 사건 (사건이라고 말하긴 좀 그렇지만 아무튼)으로 인해 나는 조금 달라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실제로 세 분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건 제 추억의 김밥이예요."

"뭐가 추억의 김밥이야?"

"어렸을때부터 먹던 김밥이라고요."

"아, 그럼 네 엄마가 이번에만 잘못 만든 게 아니고 원래 이 실력이야?"

"전 이 김밥이 맛있어요. 가끔 엄청나게 그립다고요."


내 말은 이모들과 삼촌의 웃음 소리 사이로 흩어져버렸지만 엄마 앞에서 엄마의 음식이 맛있다고 말 한 건 거의 처음이었다. 추억의 음식, 이 음식이 그립다는 말을 늘 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뱉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엄마의 얼굴을 살피지도 않았고, 살폈다고한들 엄마가 감동의 눈물을 흘릴 리도 없었겠지만 나 스스로 굉장히 뿌듯한 순간이었다. 


엄마에게 칭찬을 자주 해줘야지. 엄마가 하는 어설프고 투박한 일들을, 그 결과물들을 감사히 여기고 기쁘게 받아들여야지.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벌써 엄마의 김밥이 또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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