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필로소퍼 vol.6> "당신의 시간은 안녕하십니까?"
"시간에 대해 정의해보세요"
이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답을 해야 할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첫 번째 답변은 "시간이... 뭐.. 시간이지" 정도이다. 누군가는 현재시간을 이야기하거나, 과학적인 시간의 정의를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모두가 '시간'이란 개념이 생각보다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에는 동의할 것이다. 대체 시간이 뭘까. 시간이란 한 가지 개념에 대해 철학적으로 다양한 견해를 이야기해주는 잡지가 있다.
<뉴필로소퍼>라는 잡지는 이번 6호에서 "당신의 시간은 안녕하십니까?"라는 주제로 시간에 대한 철학적인 다양한 견해를 소개한다. 뉴필로소퍼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잡지는 기존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철학에 대한 이미지를 충족시키면서도, 묘하게 힙하다. 시간에 관련된 과거의 철학 '이론'을 수동적으로 소개한다기보다, 철학의 범주안에서 시간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들을 다양한 철학자(와 기자, 작가, 물리학자 등)의 입을 통해 직접 이야기한다.
나는 리뷰를 적을 때 내용을 그대로 소개하기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직접 소개한다는 마음으로 글을 적는다. 이 잡지는 2가지 관점에서 소개하고 싶다. '철학'잡지이면서 얼마나 '뉴-NEW'한 지, 그리고 잡지에 담긴 '시간'에 관한 넓고도 깊은 다양한 지식과 견해들이 얼마나 매력적인지에 대해 말이다.
철학에 박식하다곤 할 수 없지만, 철학과를 나온 나는 철학 관련 서적을 당연히도 많이 접했다.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도, 철학 서적을 읽으면서도 든 생각은 "학문을 위한 학문"이라는 이미지였다.
철학의 스펙트럼은 정말 방대하다. 철학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philosophy의 어원이 'philo(사랑하다)와 sophia(지혜)'가 합쳐진 단어인 만큼, '지혜를 사랑하다'라는 말에 걸맞게 과거 철학은 '지혜' 즉 거의 모든 학문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지금 철학과 상반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과학조차 독립적인 학문으로 철학에서 분리된 것은 철학이 시작되고 한참 후였다.
이렇게나 방대해서 그런 것일까, 내가 철학을 공부하며 지속적으로 받은 느낌은 지금 여기서 더 나아간다기보다 과거의 것을 답습하는 것에서 멈추는 학문이란 이미지였다. 이 이미지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대학교 내내 들었던 대부분의 철학 수업 방식이다. 간혹 정말 배울 점이 많은 교수님들의 -모든 교수님들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출중하지만- 학생 지향적 수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철학 수업은 철학 '이론'을 전달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철학 지식이 전제된 석사나 박사과정이 아닌 학부과정이기에, 단 하나의 이론조차 역사 속 천재들이 일생을 바쳐 사유한 결과물인 철학 이론을 그저 '전달'하는 식으로 (가끔 토론) 진행되는 수업은 어찌 보면 당연하고 효과적인 수업 방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쉬웠다. 철학은 방대한 만큼 매력적인 학문이다. 방대한 만큼 당연히 실제 우리의 일상에 접목될 여지도 많다. 예를 들어 사회철학, 정치철학, 윤리학 등은 관계에서 우리의 태도에 대한, 더 나아가 지금 우리 사회를 분석하고 흐름을 파악하는데 탁월한 시야를 제공한다. 누군가가 말하는 먹고사는데 필요한 '기술'은 아니지만, 적어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양분'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문제는 방대하고도 깊은 철학이란 학문을 우리의 일상과 연결시킬 수 있는 연결고리, 즉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학우들과 우리가 배운 철학을 실제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과 연결시켜 세상에 철학의 매력을 알리자는 취지에서 유튜브 페이지를 개설하기도 했었다. 페이지를 개설한 직후 바로 알았다. 단순히 철학을 공부하고 철학의 매력을 느끼는 것과 이걸 일상과 접목시켜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여담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렵게 여기는 철학을 쉽게 전달하려는 시도는 이미 여럿 있었다. 서점의 철학 코너를 가면 두꺼운 철학서적 말고도 만화나 일러스트로 이루어진 철학책들이 많다. 하지만 이 책들은 그저 보다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기 위한 책들이지, '일상'에 접목시킨 - '지금 여기의 철학'에 대한 책들이 아니다. 그런데 내가 찾던, 내가 꿈꾸던 것을 이 잡지가 바로 실현시킨 것이다.
당당하게 "일상을 철학하다"라고 적혀있는 이 잡지의 표지를 보며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뉴 필로소퍼>는 일상이라는 범주에 알맞게 철학을 학문을 위한 학문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현실에 접목하고, 일상 속에서 철학을 말한다. 물론 기존의 철학 서적 같이 "과거 철학자들의 이론"이 설명을 위해 자주 등장한다. 또 만화로 보는 철학 서적과 같이 "보다 이해하기 쉽게" 다양한 방법을 이용한다. 하지만 그것들'만'을 전달하지 않는다.
가장 매력적인 점은 현존하는 인물들이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주제-여기선 '시간'-를 가지고 다양한 생각과 의견과 지식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영화비평잡지 <필로> 리뷰에서도 적었던 말이지만, 글 쓰는 사람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글들은 보다 가깝고 자유롭고 다양하다. 고작 이게 뭐가 그렇게 반가운 일이냐고 묻고 싶다면 다음의 2 문장을 비교해보자.
'존재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무엇임'과 '이것'을 의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질이나 분량, 또는 그런 식으로 술어가 되는 것 중 어느 하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재하는 것'이 이처럼 일정한 수의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긴 하지만, 그 가운데서 제일가는 [의미로] '존재하는 것'은 분명히 '무엇임'이고, 이것은 실체를 의미한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본문 중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대개의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을 무시하거나, 기껏해야 아주 가끔 최상의 시나리오에 기반해서 남은 시간을 계산해볼 뿐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지금 내 나이는 56세인데, 앞으로 보통 수준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기간은 최대 30년 정도일 것이다.
- <뉴필로소퍼> 중 나이젤 워버튼의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죠?" 도입부
분명 2번째 인용문이 잘 읽히지 않는가. 우리와 같은 시대에 산다는 공통점을 가진 사람이 이 시대의 언어로 적은 글은 "잘 읽힌다." 일상의 언어로, 일상 속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어떤 것에 대해, 철학이 담긴 글을 읽을 수 있는 경험은 나에게 어렵고 깊이 있는 철학 서적을 읽는 것보다 익숙하지 않은 경험이다. 이 잡지는 한결 같이 "일상을 철학하다"라는 주제의식에 벗어나지 않으려는 의지가 강하다. 그리고 그게 너무 반갑다. 그리고 좋았다.
고작 두음 절의 단어인 '시간'에 대해 이토록 다양한 사유와 이론이 존재한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당연히 '안다고 생각하며' 흘려보내는 개념들은 상당히 많다. '존재', '생명', '인간성', '도덕'등의 단어 뒤에 "~란 무엇인가"라는 말을 붙이면 한없이 심오해진다. '시간'도 언제나 우리가 알고 있다고, 그리고 우리 곁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시간에 대해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당연하고 친숙한 단어를 분석하는 것은 마치 항상 가까이 있기에 소중함이 무뎌진 관계에서(가족 혹은 오래된 연인), 문득 혹은 어떤 사건에 의해 그 관계가 정말 소중하고 의미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경험과 비슷하다.
시간에 관한 다양한 담론과 이론은 시간이 얼마나 큰 개념인지, 그 대단한 시간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값진지 알려주고, 동시에 그런 시간을 막연히 흘려보내기 일쑤인 우리를 돌아보게 해 준다.
잡지에 담겨있는 지식들은 정말 흥미롭다. 기술의 변화가 시대의 시간에 어떻게 개입하는지를 보며 시간의 절대성이 덧없음을 깨달았고, 시간의 방향성(과거>현재>미래를 향하는 방향성)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이론은 명백한 사실이라 여겨지던 통념을 깨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길어봤자 40~50억 년 안에 태양이 팽창하며 지구를 흡수해 세계가 종말 할 것이라는 사실을 보고서는 인간의 시간이 참 짧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우리가 기준으로 삼는 시간이 고작 '인간의 시간'에 맞춰줘 있음과, 종에 따라 행성에 따라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의 상대성이 새삼 와 닿기도 했다.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켜줄 다양한 지식과 더불어 가장 마음에 남았던 것은 이런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제대로 사용하라는 메시지였다. 잡지의 시작에 있는 <뉴필로소퍼> 편집장의 글에서 발견한 구절이 잡지를 덥고 나서도 기억에 남는다.
"인색하게 굴 가치가 있는
유일한 자원인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예기치 못한 시점에 끝나버릴
그 자원을 지키기 위해 더욱 노력하라"
처음부터 끝까지 눈길을 끌고 읽기 편안한 일러스트와 편집 디자인을 가지고 있는 잡지이다. 말 그대로 철학 잡지이다 보니 학술잡지의 성격을 띠는 내용이지만, 편집 디자인이 그 무게감을 환기시켜준다. 게다가 이미지가 주객전도가 되거나, 가독성이 떨어지지 않는다. 가독성을 1순위로 잊지 않고 디자인된 듯한, '표지 디자인-용지의 색-삽입된 일러스트들' 모두가 통일성을 가지고 '하나의 디자인'으로 갈무리된다.
좋았던 점은 콘텐츠 중간중간에 이해를 위해 삽입된 도형이나 표도 보다 보기 쉽고 자연스럽게 일러스트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쉬어가는 코너처럼 시간에 관한 다양한 '사실-간단 상식'들을 소개하는 페이지도 일러스트화 시켜 흥미를 더욱 돋운다.
시간이란 주제에 관하여 철학 칼럼식의 글 말고도, 실존주의 방문판매라는 만화, 시간 관련 고전 소설, 시간에 관련된 과학적인 이론들도 담겨있다. 역시 멋진 디자인과 일러스트들과 함께 말이다.
이 잡지에 대해 인터넷 서칭을 하다가 정말 '잡지'같다며 깊이가 없어서 아쉽다는 글의 리뷰를 봤다. 하지만 철학이란 분야에서 깊이 있는 서적은 이미 정말 정말 정말 많다. 철학에 대한 관심과 학구열이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그런 책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잡지가 매력적인 이유는 '잡지다워서'다. '일상'과 '철학' 둘 다를 잊지 않았기에, '철학만을' 이야기하지 않았기에, 그리고 '잡지다움'을 잃지 않았기에 <뉴 필로소퍼>는 더 빛을 발한다.
writer 심록원
문화예술플랫폼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입니다.
책(잡지)을 읽고 적은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