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히피 로드> 800일간의 남미 방랑
'세상'에 수를 메길 수 있다면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수만큼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세상은 도시이고, 누군가의 세상은 자연일 것이다. 누군가의 세상은 서류 작업이고 누군가의 세상은 예술일 테다. 살아온 흔적이 쌓이며 한 사람의 세상을 만든다. 가령 나의 세상은 한국 그중에서도 내가 자라왔고 살고 있는 도시, 그리고 서울, 집, 사랑하는 사람들, 학교쯤이 되겠다. 아마 우리 가족과 함께한 지 얼마 안 된 고양이 리온이는 우리 집이 세상의 전부일 테지.
<남미 히피 로드>란 책을 쓴 노동효 작가의 세상은 나보다, 아마 많은 사람들보다, 넓다. 그의 세상에 수식어를 붙인다면 '지구'라는 표현이 그나마 어울릴 것이다. 동시에, 한국을 떠나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도 대선 부재자 투표를 하기 위해 10일에 걸쳐 도착한 페루 대한민국 대사관에 가 투표를 하며, "이 세계 어디에 있든, 모국어로 생각하기 때문"에 투표를 한다던 그의 여행은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하는 대부분의 우리의 여행과는 조금 다르다.
<남미 히피 로드>는 여느 여행 정보 책과는 결이 다른 책이다. 보통의 여행정보책에는 '사실'들이 있다면 그의 책에는 '경험'과 '삶'이 있다. 예를 들어 여행 정보 책이 "아마존강의 노을은 아름답다"라며 정보를 알려준다면, 그는 아마존강의 노을을 이렇게 말한다.
"해질 무렵이 되자 강물 색이 변했다, 바다처럼. 맑은 날, 해질 무렵 바다는 거울처럼 변한다. 새파란 하늘이 수면에 내려앉으면 푸른 액체 금속처럼 번들거린다. 그 푸른빛을 나는 무척 사랑했다. 그 빛을 아마존에서 보게 될 줄이야. 하늘도 강도 파랗게 변했다. 가운데 초록띠 같은 밀림이 길게 이어질 뿐. 그러다가 부욱, 성냥을 긋듯 번지는 황홀한 일몰."
'나의 세상'에 큰 흔적을 남기는 인상적인 순간은 그 순간의 '사실'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눈앞의 풍경이 '사실'이라 하면, 풍경을 바라 보고 마음속에 퍼지는 그 느낌. 그 순간의 분위기, 냄새, 옆에 있는 사람들, 소리 등, '나'라는 창을 통해 전해지는 모든 것이 어우러져 나의 '세상'에 한 폭의 그림이 되어 걸린다. 누구나 동감할 수 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이 순간을 작가는 생생하고 솔직하게 전달한다. 그리고 그의 순간이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로 흘러들어온다.
자신의 순간을 생생하게 전달하는데 탁월한 그의 문체는 그의 여행이 향하는 것들과 만나 시너지를 발휘한다. 이는 여행을 좋아한다라는 표현보다 '다른 곳에서의 삶'을 사랑한다는 그의 가치관과 연결된다. 그의 여행은 단순히 다른 곳에 가 새로운 것을 보고 겪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 새로운 곳에 가 그곳의 문화를 배우고, 녹아들고, 그곳의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그곳의 삶을 사는 것. 그의 여행에서 줄 곧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는 그가 살고 있는 바로 그 '여러 겹의 삶'을 마치 우리가 직접 거기에서 그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느끼도록 생생하게 전달한다.
사람들은 내가 여행을 좋아할 거라고 여긴다. 그러나 내가 진정 사랑하는 건 언제나 '다른 곳에서의 삶'이었다. 여행을 하든, 관광을 하든, '다른 곳으로 가는 길'은 늘 존재하지만 '다른 곳에서의 삶'이 늘 존재하는 건 아니다. -(중략)- 내게 여행이란 단 한 번의 인생에서 여러 겹의 생을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살아보는 것'만큼 완벽한 경험이 또 있을까. 그래서 그런지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의 모습은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의 한 장면 속 영화의 주인공인 월터 같았다.
영화의 말미 주인공 월터가 그에게 글로만 존재하던 단어인 '작은 거인', '라즈퀴위', '워로드'라는 단어를 직접 경험하는 장면이 있다. 꿈꾸고 상상하는 것 대신 직접 몸에 새기고 겪는 것이 얼마나 값진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상상만 하던 것들을 내 삶으로 가져와 직접 겪을 때의 그 생동감과 생명력 그리고 감흥이 담긴 장면. 나로 하여금 부러움과 로망을 담아 영화의 주인공 월터에 스스로를 대입해 여행을 가 새로운 경험을 하는 상상을 하게 했던 장면.
책 속에서 노동효라는 한국 이름보다 전 세계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로'라는 이름을 쓰는 그는 나의 상상 속에 존재하던 것을 자신의 지금으로 가져와 겪고 있었다. 세계의 여러 곳에서 '여러 겹의 삶'을 직접 살아보면서 말이다.
<남미 히피 로드> 곳곳에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살아 본 사람들 특유의 편견 없는 시선이 스며들어있다. 내가 자란 문화만이 옳은 것이 아니고, 너와 나의 경계를 보는 것이 아닌, 그저 여기에 같이 있는 우리를 보고, 공통점을 찾고, 새로운 것을 반기는 태도 말이다.
국경이란 경계로 나뉘는 문화가 개인에게 주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어떻게 보면 정체성이지만, 때때로 이 '경계'는 울타리가 되고, 편견이 되어, 그 밖에 있는 사람들을 재단하게 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다양한 문화권을 겪어본 사람들이 이 경계를 인지하고 넘어서는 경향이 있다. 그저 다양한 '삶' 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머리가 아닌 몸과 마음으로 겪었기에 생긴 태도라고나 할까. <남미 히피 로드> 속 노동효 작가의 모습에서도 이 태도를 자주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걸 대표적으로 보여 준 이야기가 "우린 모두 지구인, 우주에서 왔을 뿐이지"라는 제목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이야기이다.
스페인령과 프랑스령으로 나뉘었지만 독자적인 문화를 가진 바스크에서 온 사내에게 "프랑스도 아니고 스페인도 아니면 바스크는 아예 없는 거야"라고 말하는 프랑스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린 모두 지구인이고, 모두 우주에서 왔을 뿐이야!"라고.
이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광활한 우주를 기준으로 인간들을 보면 고작 지구라는 별에 살고 있는 인간이라는 종이라는 것이 전부일 텐데, 그중에서도 어떻게든 너와 나의 '다름'을 찾아내며 경계에 집착하는 우리의 모습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경계'를 경계하는 그의 태도 때문인지 그의 글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좋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들 역시 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다름'이 아닌 '같음'을 보는 태도.
동시에 인상 깊은 것은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그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책에는 개인이 아닌 한국인으로서 그들의 문화를 바라보는 모습도 자주 등장한다. 인상적이었다. 방랑과 히피를 사랑하는 그는 히피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모든 곳 그러니깐 지구와 자연이 자신의 집인 것처럼 살아가는-마치 구름과 같이 떠다니는 삶이 히피라면, 그는 뿌리를 한국에 두고 지구를 돌아다니는 느낌이었다. 확고한 정체성은 쉽게 편견의 양분이 되어버릴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편견이 없다니. 참 부럽다.
동시에 그가 여행을 하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이유도 이것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단단한 정체성과 편견 없는 태도. 다음은 책의 마지막에 삽입되어있던 작가와의 인터뷰 중 인상 깊었던 내용이다.
"나의 친구들은 한결같이 착했다. 그건 운 때문은 아니다. 상대를 선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면, 인간은 누구나 양면성을 갖고 있다. 상대를 선하게 여기고 그를 대하면 그는 선한 면을 보여준다. 상대를 악하게 여기고 그를 대하면 그는 악한 면을 보여준다. 느닷없는 강도 떼는 예외지만 대부분의 경우, 내가 만나는 인간은 내가 만든다. 그리고 마음의 문을 여는 폭만큼,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온다."
<남미 히피 로드>를 읽다 보면 제목이 참 적절하다고 느껴진다. 전 세계의 모든 길을 가보는 것이 목표이며, '현지에선 최대한 현지인에 가깝게!'라는 원칙을 고수하는 그의 책 곳곳에는 '방랑의 삶'과 '히피'에 대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사회가 규정한 기준과 정적인 도시의 삶을 떠나, 자연을 사랑하며, 준비된 돈이 아닌 돈 벌 수단 몇 가지 만을 가지고 (수공예 기술, 음악, 기예 등) 자유롭게 방랑하는 히피들의 모습은 묘하게 노동효 작가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그의 책은 정말 자유롭다. 내 언어의 한계가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딱 이것뿐이다. "자유롭다." 세상을 보고 사람을 대하는 그의 태도만큼이나, 그가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사람들도 자유로웠다. 히피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남미 특유의 자유로운 문화도 이 분위기에 한 몫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아르헨티나인에게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종사하는 일' 대신 '자신이 마냥 좋아서 하는 일' 같은 것을 대곤 한다"는 사실이었다. 또 이념 대신 음악 때문에 (한 옥타브를 올리거나 내려라고 하는) 옥신각신 사소한 싸움을 하는 쿠바의 노인들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작가의 표현을 빌려 왔다.)
단순히 히피들 그리고 방랑의 자유만이 이 책을 자유롭게 만든 것이 아니다. 내가 이 책에서 자유로움을 느낀 것은 바로 이런 문화적 차이들이다. 생계형 일자리 말고 자신의 취미를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고, 그것을 자신이 '하는 일'이라며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 내가 즐기고 싶은 것을 즐길 줄 아는 문화와 마음의 여유, 그리고 사회의 분위기가 묘한 자유로움을 느끼게 했다. 이런 자유로움은 내가 한국인인지라 어쩔 수 없이 한국과 비교가 되었고, 실제로 책에 가끔 등장하는 작가가 타지에서 만난 몇몇 한국인들의 말은 그 '자유'와 대비되어 나에게 씁쓸함을 불러일으켰다.
국민소득은 우리보다 낮지만 행복지수는 우리보다 높은 (한국 58위, 우루과이 29위) 우루과이로 이민 온 어르신이 '사람들이 고용주를 존중할 줄 모른다.'며 불평을 늘어놓는 모습. 바지가 헤져 바느질을 열심히 했던 무용담을 늘어놓으니 다짜고짜 '당신 가난하잖아'를 외치며 신세한탄을 늘어놓던 한국인 민박집주인.
이들의 모습이 마냥 남의 일같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물질에 찌든 한국이 싫어 멀리 왔지만, 자신이 떠나온 곳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 있지 않았다는 작가의 말이 참 마음에 오래 남았다. 이 책의 작가처럼, 영화 속 월터처럼, 여행을 떠나서 세상을 직접 겪어보고 싶다는 로망을 가졌음에도, 내심 나의 작고 좁은 세상에 안주하고 싶어 하는 내 마음도 새삼 잘 보였다.
이 책은 자유를 갈망하게 만든다. 히피처럼 훌쩍 떠나서 세상과 직접 부딪치고 조율하는 여행의 매력을 만끽하고 싶게 만든다. 동시에 생생하게 전달되는 이 자유와 자유에 대한 열망이 내가 알고 있는 '내 세상의 기준'과 너무 달라 두려움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이 남긴 자유가 유독 마음의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단지 여행과 방랑의 자유가 담겨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당장 책을 쓴 저자나 히피처럼 떠난다면 다른 나라로 훌쩍 가버린다면 나는 정말 그들처럼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나의 답은 "아니다"이다.
그들의 삶에서 엿본 자유가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단순히 먼 곳으로 여행을 갔기에', '방랑을 하고 있기에'가 아니라,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그리고 인생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에 있다. 경계 없이 세상을 보고, 틀없이 인생을 살아가고, 자신에게 솔직하며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자유로운 태도. 동시에 그들의 자유가 나에게 다른 종류의 '두려움'을 일으키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세워놓고 그 안에 들어가 이미 안주해버린 나의 요새, 스스로도 이것을 '틀'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 밖을 넘어서는 것이 막연해져 버린 내 세상의 한계. 이것을 그들의 삶에서는 한결같이 찾아볼 수 없기에 두렵다. 이 요새 안이 편안하다며 안주해온 여태까지의 내 삶과 태도를 너는 그저 틀 안에서 살았을 뿐이라며 그것만이 답이 아니라며 확인 사살하는 느낌. 우물 안 개구리들은 우물 밖을 봐도 대부분 바깥세상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여태까지 우물 안이 세상의 전부라고 여겨왔던 자신의 삶을 부정하기 싫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이 책의 저자는 정확히 알고 있다. 책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작가가 차용한 영화 <이지 라이더>의 대사를 마지막으로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우리가 그렇게 위협적인가? 그래 봤자 머리 좀 기른 것뿐이잖아?"
"아니. 그들은 네게서 '자유'를 본 거야."
writer 심록원
문화예술플랫폼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입니다
책을 읽고 개인적인 견해를 담은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