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모든 이를 위한 작품 <톤코하우스 애니메이션展>
톤코하우스 애니메이션展
<톤코하우스 애니메이션전>의 첫인상으로는 설레는 마음으로 전시장소를 찾으니 무슨무슨 전시관이 아니라 빌딩이라고 적혀있어 신기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도에 장소를 검색해 찾아간 톤코하우스 전시장은 외관부터 동심을 자극하며 우리를 맞이했다. 노오란 나비떼가 바닥으로 이어지며 돌들을 물들이는듯한 모습을 보며 전시에 대한 기대는 한껏 더 부풀어 올랐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빌딩의 1층 2층에 구성된 이번 전시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이나 다른 큰 전시관에 비해선 비교적 작은 규모의 전시이다. 하지만 공간이 제약에도 불구하고 전시의 콘텐츠가 단조롭다고 느끼진 못했는데, 아무래도 그 이유는 톤코하우스라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매력을 이번 전시에서 충분히 다방면으로 담았기 때문인 듯하다.
톤코하우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픽사에서 활동했던 로버트 콘도(Robert Kondo)와 다이스케 ‘다이스’ 츠츠미(Daisuke ‘Dice’ Tsutsumi)가 2014년 설립한 복합 미디어 회사이다. 전시장에 처음 들어가는 순간 톤코하우스의 대표작인 댐 키퍼 속 주인공들의 일러스트와 함께 톤코하우스의 설립자인 로버트와 다이스의 소개가 가장 먼저 관객을 맞이한다.
로버트와 다이스가 참여했던 작품은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관심이 없는 사람도 누구나 다 알만한 작품들이 많았다. 특히 나는 나의 최애 애니메이션인 <라따뚜이>와 <월.E>라는 작품에서 활약한 인물이라니! 가끔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그런 상상을 한 적이 있지 않은가. 이 영화는-애니메이션을 어떻게 만들어질까. 누가 만들까. 그런데 내가 정말 좋아했던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한 인물들이 이 사람들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로버트와 다이스는 픽사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토이스토리 3> <월-E> <몬스터 대학교> <카2> <라따뚜이> 등의 작품에서 활약했으며 픽사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자신들만의 스토리를 보여주기 위해 2014년 톤코하우스를 설립, 2D, 3D 영화를 비롯하여 TV 시리즈, 도서, 게임, 교육 자료 및 전시회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복합 미디어 회사를 지향하고 있다.
이쯤에서 눈치챈 분들이 있을 텐데, <톤코하우스 애니메이션展>은 다른 전시와 조금 다르다. 보통 전시가 작품의 (사진이 되었든 사람이 되었든 그림이 되었든) 전시에 집중하는 느낌이라면, 이번 전시는 '톤코하우스'라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소개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전시에서 보여주는 것들은 단순히 톤코하우스가 제작했던 애니메이션뿐만이 아니라, 톤코하우스가 지향하는 것, 앞으로 나아갈 방향, 그리고 톤코하우스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보여준다. 그래서 그런지 뭔가 브랜드 팝업스토어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굿즈 파는 공간은 아주 작았지만) 그리고 나는 그게 좋았다!
1층은 톤코하우스가 제작했던 애니메이션들을 소개하고, 그 제작과정이나 스케치 등을 보여주는 전시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설립한 지 얼마 안 된 스튜디오이기 때문에, 톤코하우스의 대표작인 <댐 키퍼> 관련 전시물들이 대부분이었다. <뭄>이라는 단편 애니메이션에 관한 전시물도 잠깐 구경할 수 있었다. 주로 제작과정에서 쓰였던 모형과 스케치, 실제 제작과정을 표현한 영상과 설명들, 그리고 다양한 일러스트를 즐길 수 있다. 아직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았음에도 애니메이션 제작과정에 대한 설명과 캐릭터들은 흥미롭고 매력 있었다. 특히 <댐키퍼>의 주인공 '피그'의 귀여움이란...!
2층은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전시를 즐길 수 있다. 전시의 입구에서 안내하시는 분이 "앱스토어나 구글스토어에서 'Tonko house'라는 어플을 검색해서 받아 재밌는 게임을 해보라!"라고 해서 (영어로 검색해야 한다) 이런 건 말을 참 잘 듣는 나는 바로 어플을 받았었다. 2층에서는 어플을 이용하여 벽면 곳곳에 숨겨진 일러스트 태그를 찾고, 직접 그림을 그려 전시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림 열심히 그렸습니다!) 동시에 톤코하우스 멤버들을 소개하며, 현재 진행 중인-제작 중인 다양한 톤코하우스의 애니메이션도 같이 소개한다.
그리고 톤코하우스 작품을 직접 감상할 수 있는 스크리닝 룸이 있어 1층에 소개된 '톤코하우스'의 애니메이션과 메이킹 필름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다. 상영시간은 꽤 길다. 단편 애니메이션인 <댐 키퍼>도 20분 남짓이며, 메이킹 필름까지 합하면 훨씬 길다. <댐 키퍼> 말고도, <THE DAM KEEPER POEMS>라는 <댐 키퍼>의 등장인물들로 이루어진 짧은 호흡을 가진 애니메이션 여러 편을 한 번에 보여준다. (한편당 5분 정도) 이 애니메이션들 말고도 1층에서 소개되었던 <moom>이라는 단편 애니메이션도 감상할 수 있다.
좁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전시가 단조롭지 않다고 느꼈던 점은 관객들로 하여금 전시에 참여할 수 있게 유도하고 흥미를 유발하게 하는 노력이 여기저기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좋았던 점은 전시에서 소개된 애니메이션들을 실제로 모두 감상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보통 전시에서 사용되는 영상의 길이는 길어봤자 20분을 넘기지 않는데 비해, <톤코하우스 애니메이션展>은 다 합치면 몇 시간이 된다. 단순히 전시의 구성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 영상매체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상영관'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포인트는 그 상영관에서 보여주는 톤코하우스가 만든 애니메이션들 자체가 너무 좋은 작품들이었다는 것이다. 가장 진정성 있고 강력한 전시의 매력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아무래도 톤코 하우스의 대표작이 <댐 키퍼 (THE DAM KEEPER)>인 만큼 댐 키퍼에 대한 나의 감상을 남기고 싶지만, 그전에 인상 깊었던 다른 점을 언급하고 싶다. 애니메이션을 감상하기 위해 상영관에 들어가 있을 때, 애니메이션 제작과정이 담긴 메이킹 필름을 참 많이 보게 되었다. 메이킹 필름 속에서 보이는 톤코하우스 애니메이션의 제작과정이 인상 깊었던 것은 완벽하고 순탄하게 흘러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고 어떤 사람들이 그 과정을 극복하고 함께했는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메이킹 필름에는 <댐 키퍼> 뿐만 아니라 톤코하우스에서 함께하고 있는 모든 이들이 등장한다. 비중은 다를 수 있으나 그들이 겪었던 어려움, 그리고 그걸 함께 이겨낸 후에 얻었던 성취감이 너무 잘 담겨있었다.
완성된 작품을 접하는 나로서 하나의 애니메이션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 엿보는 것은 역시나 정말 흥미롭다. 게다가 <톤코하우스 애니메이션展>에 등장한 톤코하우스 멤버들의 모습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새로운 길로 도전하는 사람들 특유의 열정과 생동감이 가득 담겨있었다.
메이킹 필름 속에서 그들은 하나 같이 이런 식의 말을 한다. 내가 참여한 작품이 아니라, 우리가 해낸 작품이라는 식의 말들 말이다. 여러 사람이 <댐 키퍼>라는 애니메이션 하나를 바라보며, 주인공 피그에 감정을 이입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며 만들어낸 작품. 배경음악, 참고용 모형제작자 등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하나의 작품을 위해 모이고 협동하는 모습은 인상 깊었다. 그들을 보고 감상한 <댐 키퍼>는 새삼 더 크게 와 닿았다. <댐 키퍼>와 여기서 본 모든 애니메이션은 1+1은 2가 아니라, 1+1=∞(무한)이라는 공식이 적용된 결과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였기에 가능했던 작품들.
톤코하우스의 대표작이자 이번 전시에서 가장 많이 다뤄진 <댐 키퍼>에 관한 감상을 적지 않을 수가 없다. 톤코하우스의 첫 작품 <댐키퍼 (The Dam Keeper)>는 2015년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었었고, <댐키퍼: 피그 이야기 (Pig: The Dam Keeper Poems)>는 2018년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대상 작품이라는 이력을 가지고 있다. 우선 <Pig: The Dam Keeper Poems>보다 톤코하우스의 대표작이자 그 시작을 함께한 <댐키퍼>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먼저 말을 꺼내자면 전시의 초반부의 있던 톤코하우스의 미션을 잘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이 아닐까 한다.
전에 <월.E>라는 애니메이션의 리뷰를 쓰며 이런 말을 적은 적이 있다. 애니메이션은 어린이들만을 위한 작품이 아니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을 위한 작품이라고. 모든 사람을 위한 애니메이션들에는 때론 어두운 주제도 담겨있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표면 위로 떠올리는 것을 싫어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 한구석에 어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 공감하기 어렵지 않은 어둠들, 그것들이 애니메이션에서 다루는 '어둠'이다. 그 어둠은 어린이들 혹은 어른들에 한계를 두지 않는다. 애니메이션의 장점은 '어둠'을 마냥 잔혹하고 끔찍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둠'임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 특유의 몽글하고 부드러운 그리고 포근한 방식으로 어둠을 표현해낸다. 그리고 그런 부드럽게 순화된 어둠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어둠을 마음에 품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된다. 작품마다 다르겠지만, 실제 현실에서 우리가 힘들 때 어떤 방법이 진짜 위로가 될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왜 그런지 답이 나온다. 우리는 어둠을 해결하기 위한 답을 얻을 때만큼이나, 나의 어둠을 마음 깊은 곳에서 끌어올려 그저 나도 그렇다며 공감해주고 안아주는 이가 있을 때 위로를 받는다.
<댐키퍼> 역시 어둠을 가지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그 어둠을 표현해내는 방식이 다른 영화들처럼 잔혹하거나 이렇게 해결하라며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지만, '피그'라는 캐릭터는 어둠에서 시작된다. 실제 스모그 같은 모습의 오염물질 구름을 막기 위해 매번 시간에 맞춰 풍차의 태엽을 감는 '피그', 피그의 아버지는 어디론가 없어져있고, 아직 어린 피그는 학교를 다니면서도 댐키퍼로서 도시를 지키긱 위해 풍차의 태엽을 감는 중요한 댐키퍼 역할을 해내고 있지만, 다른 이들은 그런 피그가 더럽다며 (풍차의 태엽을 감으며 매번 검댕 같은 것이 묻는다) 피한다.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하고, 어른들도 '피그'를 피한다. 그런 피그에게 새로 온 전학생 '폭스'가 나타나 여태까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대하기 시작한다. 검댕이 묻은 피그를 놀리지 않고, 자신의 얼굴에 같이 검댕을 묻히며, 그저 피그를 있는 그대로 대해준다. 중간에 위험이 있긴 하지만, '피그'의 옆에 있어주는 '폭스'의 존재로 영화는 평화롭게 마무리된다. 인생의 많은 질문들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가장 단순하고 뻔할 때가 많은 것처럼, <댐 키퍼>도 많은 어둠을 다룬 애니메이션처럼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가장 단순하지만 강력한 누구나 공감할만한 가치로 그 어둠을 풀어낸다.
나는 개인적으로 <댐 키퍼>만큼이나 <THE DAMKEEPER POEMS>이 마음에 들었는데, 일단 <댐 키퍼>도 가뜩이나 '피그'가 귀여웠는데, <댐 키퍼 포엠>에서는 정말 충격적으로 귀여웠다. (저어어엉말 충격적으로 귀엽다...) 조금 더 가볍고 귀여운 그림체를 가졌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더 서정적이고 부드럽지만, <댐 키퍼 포엠> 시리즈에서도 역시 같은 주제를 전해준다. 가족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 책임감과 이타 정신, 환경보호와 같은 주제를 톤코 하우스만의 색체로 전달한다.
▼ The Dam Keeper Poems 시리즈의 트레일러 영상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한번 꼭 보세요ㅠ)
전시에 가게 된다면 꼭 여유로운 일정에 갔으면 좋겠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톤코하우스의 작품들을 모두 감상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몇 시간) 하지만 하나같이 다 좋은 작품들이고, 게다가 작품 중간중간에 메이킹 필름 역시도 톤코하우스가 지향하고자 하는 바와 열정 분위기 등을 잘 느낄 수 있어 꼭 다 감상했으면 좋겠다.
톤코하우스의 <댐키퍼> 시리즈는 환경 오염, 미세먼지, 학교 내에서의 따돌림과 같은 사회 이슈를 다룬다. 친숙한 동물 캐릭터를 바탕으로 탄탄한 스토리, 따뜻한 색감과 빛을 활용하여 다소 무거운 주제를 서정적으로 풀어나간다. 그 속에서 가족의 사랑과 친구와의 우정, 책임감과 이타 정신, 환경 보호에 대한 톤코하우스 작품 주제를 전달한다.
전시관람팁을 마지막으로 정리해서 적자면
톤코하우스라는 회사의 애니메이션을 향한 열정, 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을 같이 느껴보기
'피그'와 다른 캐릭터들의 귀여움을 만끽하기
여유로운 일정에 방문하여 톤코하우스 작품들을 모두 감상하기
전시를 감상하기 전 어플을 받아 다양한 방법으로 전시에 참여하기
+별도의 오디오 가이드는 없으며, 굿즈 판매 공간은 있으나 작은 편이다. (더 다양한 종류의 일러스트 엽서나 스티커가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지갑이 안 털렸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겠다.)
writer 심록원
문화예술플랫폼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입니다
전시를 관람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